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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51:1~11 어려움을 극복하는 비결구약 강해/대선지서 2021. 2. 4. 08:32
사51:1~11 어려움을 극복하는 비결
사람은 너무나 쉽게 잊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은 잊지 않기 위해서 자기만의 특별한 방법을 연구하
기도 합니다. 옛날 철학자는 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지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긴다. 마음에 좋지 않는 것들, 부정적인 것 들을 마음에 품게 되면, 더 힘들어집니다. 더군다나
부정적인 것이 지배하면 한발자욱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패배의식에 무기력하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말씀은 바베론에 짓밟혀 노예생활, 포로생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무기력한가운데 패배와 절망가운데 소망없이 사는 자를 벌떡 일어서게 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경제위기 가운데에서 무력감에 빠진 이들에게 주시는 소망의 메시지
이며 많은 이들이 교회를 손가락질하고 폄하하지만 그래도 소망은 교회에 있음을 알게 하는 메시지입니다.
이사야51~52장을 통하여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인드가 무엇인지 깨닫고
무기력과 어려움을 이기는 힘을 받는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1. 왜 이런 어려움이 왔는가?
51:1절, 너희를 떠낸 반석,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힘들지요.
반석이 자리를 잡아 굳게 서 있습니다. 진흙덩이가 산자락에 다지고 다져진 상태에서 평안히 있습니다.
그런데 포크레인이 갑자기 오더니 반석을 푹 파서 실고 갑니다. 진흙덩이를 파헤치고 푹 파서 실고 갑니다.
여기에서 반석과 진흙덩이는 갑작스럽게 당한 이 일에 황당하기 그지 없지요. 어찌할 바 모릅니다. 왜 이런일이
갑자기 닥쳤는지, 불안하고 두렵고 캄캄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더 기가막힌 것은 반석을 쪼이고 쪼이고
진흙을 이기고 이겨서 그들에겐 견딜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 계속됩니다. 이 고통이 언제까지일까???
이들을 힘들게 하는 이가 바로 석공이고, 도예공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자신을 괴롭히던 고통이 끝나는 날
새롭게 재탄생된 자신들의 모습, 예술품이 되어, 아름다운 도자기가 되어...값을 따질 수 없는 진품이 되었습
니다. 이것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51:1절 생각하여 보라, 바라보라, 고정하여 주시하여 보라....
이런 고통이 없었을때의 반석과 진흙덩이는 그저 그런 아무 볼품없는 모습이었으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과 아픔과 절망과 어려움을 이겨낸 후엔 화려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탄생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모델로 제시합니다. 2절,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과 사라가 갈대아 우르에서 평범하게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의 조상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가 쉽습니까?
고향땅, 어느정도 기반을 잡고 사는 땅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것이 푹떠낸 돌덩이같고, 진흙같은 존재
그런 모습아닙니까? 그리고 가나안에서의 모진 고난, 이런 고난 후에 주신 하나님의 복은 달랑 이삭 한 명....
창성한 복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그러나, 이 하나가 진품 명품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또 이것도 생각, 기억해 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좋지 않은
것도 잊지 말라고 합니다. 52:4절,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내 백성이 까닭없이 잡혀갔으니...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430년동안 종살이 한 적이 있습니다.
또, 앗수르에 짓밟히고 바벨론에 멸망당하여 포로생활 가운데 있습니다. 이런 아픔이 왜 일어났습니까?
좋지 않는 이런 일이 왜 일어났습니까? 성경은 특이한 단어를 쓰고 있는데요...까닭없이 잡혀갔다고 합니다.
까닭없이 이유없이 공연히 일어난 일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일이지만, 괴롭히는 그들에게는
공연히 이유없이 까닭없이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당하는 사람은 처절한데, 고통을 주는 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겁니다. 학교 폭력이 이런것이고, 약자와 강자의 관계가 이렇습니다.
지금, 51장과 52장에서 선명하게 주시는 두 장면의 이미지가 있지요? 하나의 이미지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해
보라, 우묵한 파낸 돌덩이와 진흙덩이/ 또 하나의 이미지는 이유없이 당하는 아픔, 종살이와 포로생활/
어떤 이는 말씀에 순종하여 갔더니 원석이 진흙덩어리가 걸작품이 되었고, 어떤 이는 주인을 잃어버리고 자기
멋대로 살다가 이유없이 당하여 걸작품이 훼손되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유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말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예비된 복이 있는데 51:3절,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같게 하여싼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에덴처럼, 여호와의 동산처럼 만들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우울함가운데 아픔가운데 소망없는 절망속에 있는 자에게
이런 복은 꿈같은 복입니다. 이 꿈같은 복이 현실, 실제가 되게 하려면...
1)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회복해야 합니다.
51:4 내 백성이여, 내 나라여, 내 공의, 내 구원, 내 팔, ... 내것이 아니라, 주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내것이라고 살아왔습니다. 호2:5절, 우상을 따라가면서 우상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면서 따라갔었다.
사무엘상25장에 나발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나발을 소개하기를 25:2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마리요 염소가
천마리이므로...이렇게 평안하게 목축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광야에서 다윗이 도적들을 막아주었기 때문
다윗의 군인들이 식량을 구할 때, 삼상25: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
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결국 하나님의 치심으로 돌같이 되어 죽고 말았지요.
내것 내것 내것이 어디있습니까? 내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금요일 상추쌈을 맛있게 먹다가 순간 작은 돌이 있었는지
왁 소리가 나더니 어금니가 깨져버렸어요. 이 단단한 이 하나도 이렇게 부서져 버립니다.
내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사 51장 4~5절 처럼 하나님께서 내 백성, 내 나라, 내 공의 내 팔, 내 구원이라고 하시잖아요
다 주의 것입니다. 주인의식이 확실한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16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주님의 손으로 우리를
덮어 주시니 낮의 해가 우리를 상하지 못하고 밤의 달도 해치 못하리로다.
52:12절,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앞에서 이끌어 주시고
뒤에서 밀어주시는 하나님의 이미지가 보이지 않습니까?
이런 은혜를 누구에게 주신다고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하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하나님의복은 다른것이 아닙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임마누엘의 복입니다.
2)말씀을 채우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51: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의를 아는 자와 율법이 있는 자는 같은 의미입니다.
율법이 있는자는 당연히 하나님의공의를 아는 자이니까요. 그렇다면 마음에 율법이 있다는 말은 율법, 곧 말씀
복음이 마음에 담겨 있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시편119편에서 말씀은, 율법은 양약이요 꿀송이보다 더 달다고
표현합니다. 또 말씀은 생명의 양식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날마다 가까이, 그리고 마음에 채우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말씀은 힘이요 능력입니다. 그들의 비방에, 그들의 조롱에, 그들의 공격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있는 자, 복음안에 있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51:8절, 옷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같이 좀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로다.
우리를 공격하며 힘들게 하는 대적 좀과 좀벌레가 소리소문도 없이 움직여 어느날 무너뜨리듯이 그렇게 무너질
것이며, 주님을 바라며 주의 말씀을 친근히 하며 늘 가까이 하는 자에게 공의는 영원하고, 구원은 세세에 대대로
미치게 될 것이라. 영원할 것이라. 그러므로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놀라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말씀이 있는 자 결코 목마르
지 않으며,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세상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에 더 집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마지막으로 우리의 할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 말씀을 채우는 자, 주와 함께 동행하는 자는
파수꾼이며 나팔수입니다. 이 사명이 있습니다.
52:7절,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놀라운 말씀입니다. 좋은 소식, 평화, 복된 좋은 소식, 구원...한 마디로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고 공포하고
가져오며 공포하는 일...이 사명이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바울은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인생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이렇게 복된소식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통치하신다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나님은 왕이시며,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시고 이 땅을 통치하십니다. 이 땅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소식을 아는 자는 그냥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박차고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바라던 소망이 실제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가 일본의 통치아래있을때, 독립을 얼마나 바맀습니까? 그리고 1945년 8월15일
일본천황이 항복한다는 방송이 발표되고, 우리나라 백성은 환호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뛰쳐나갔습니다.
그 기쁨과 환호...모든 것을 얻은 기분 아니었을까요? 말씀이 이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며, 포로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시는 메시지이며, 더 주님께 붙어있을수밖에 없으며, 불안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며
우리의 대적, 영적 대적 ...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믿음으로 한 주간 힘든 세상가운데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왕이신 주님이 우리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아멘'구약 강해 > 대선지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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