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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52:13~53:3 고난의 종(그리스도인의 형통이란)구약 강해/대선지서 2021. 2. 5. 11:54
사52:13~53:3 고난의 종(그리스도인의 형통이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연을 보고 크게 놀라고 떠나지 않는 이미지가 둘 있습니다. 첫째는, 2008년도쯤 브라질에
갔었을때 대서양바다에서 머리위에 있는듯한 태양을 보고 놀랐었고, 또한번은 작년에 네팔에 갔었을때,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 에베레스트산을 비행기로 투어한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 그 모습이 생생합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웅장함, 위대함, 아름다움... 우뚝우뚝 솟아오른 얼음봉오리들...
그래서 산악인들은 그 산봉오리 정상에 오르려고 생명을 걸고 오르지 않습니까?
이사야서의 중요한 부분을 살펴보면서 52장, 53장까지 왔는데요. 여기가 바로 이사야서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고, 성경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성경의 최고봉...신앙의 아름다움,...그것은 성공, 형통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다른 고난, 수난, 멸시, 조롱, 핍박이며...메시야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고난의 종, 메시야의 고난을 살펴보면서 믿음의 사람들이 진정 추구하며 나아가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은혜
가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고난의 종의 모습을 보십시오. 우리는 무엇에 놀랍니까?
여러분, 예수님의 얼굴, 보고 싶으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한 얼굴은 이세상에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은 예수님의 진정한 얼굴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의 이미지가 그동안 생각해 왔던
이미지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사야선지자가 오래전에 예언해 놓은 메시야 고난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1)메시야 그리스도를 왜 알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고, 믿지 못했을까?
이사야선지자는 메시야를 예언할 때, 이런 표현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메시야는 여호와의 싹이다. 다윗의 마른 줄기
같은 데서 이새의 싹이 나올 것이다. 큰 나무로 오신것이 아니라, 연한 순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에서 가난하게 태어나셨잖아요. 멸시받던 나사렛 목수의 집에서 자라나셨잖아요. 더군다나 예수님의
공생애기간동안 신체적인 모습은 다른 여느 유대인들과 전혀 다를바가 없어서 큰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학식, 배움, 인물, 배경, 권력,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사53:2절,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한마디로 모습을 표현해보면 유약하며 평범하다!
요즘 아이돌처럼, 액션배우처럼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그러니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특별한 사람을 찾으려
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의 눈에 들어올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메시야의 평범함에 놀랍니다.
2) 메시야의 상한 모습을 보고 놀랍니다.
52:14절,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
니와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상하고 상하였다, 놀라고 놀랐다. 매맞고 피흘린 모습이 너무 추하고 손상되어서 사람들이 거기에 서 있는 것이 사람
이라고 알아볼수없을 정돡 되었다 또는 그의 얼굴이 너무 추하게 손상되어서 사람같지가 않아서 어안이 벙벙하면서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다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고난당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메시야,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셔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육체적으로 겪으신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죄도 없으신 상태에서 잡히셨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박탈당하셨고, 유대인시민대우는 커녕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셨습니다. 요18:22절, 안나스앞에서 심문을 받았을때, 하속하나가 예수님을 손으로 때렸다, 마26:67절에서는
가야바 앞에서 심문을 받는 동안 예수님에게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렸다. 빌라도는 그를 채찍질하였
고 그의 부하들은 손바닥으로 때렸다.
사50:6절,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
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대로 그대로 맡기셨고, 그들은 이 일을 하나님의 아들에게 자행했던
것입니다.사53:3절,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나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멸시를 당했다:무시당하는 거잖아요. 경멸, 업신여김
-버림받았다:싫어 버린 바 되었다. 쓰레기처럼 버려지는것, 배신당하는것
-간고를 많이 겪었다:간고=슬픔, 비통, 근심, 눈물입니다.
-질고를 아는 자라=질병, 연약의 체험입니다. 항상 병을 짊어지고 살았다는 겁니다
이런 모습을 다윗은 시22: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3)높이 들림을 보고 놀랍니다.
사52:13절, 높이 들려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종은 고난을 당하고 그리고 높이 들렸습니다.
고난을 당하여 십자가에 높이 들리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택하신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해보라고 하면서
조롱하고 군인들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고 희롱했습니다. 높이 들린 종의 모습은 더 비참했습니다
제자들 역시, 따르던 여인들 역시 이런 모습을 보고 고개를 흔들며 떠나갔습니다.
십자가에 높이 들리신 메시야, 마지막에 무슨 큰 행동을 할 줄 기대했지만, 군인들이 찌른 창에 물과 피를 다 쏟을 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높이 들림...이라는 말은, 십자가에 들리심 외에 높은 자리에 오름도 포함됩니다.
그리스도의 신분을 말할 때, 비천과 승귀라는 말이 있는데...비천함은 낮아짐, 고난, 십자가 종의 모습입니다.
이 과정후에 들리심은 승귀라는 말인데 높아지심입니다. 높아짐은 낮아짐을 통과하지 않고는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하여 메시야의 승귀, 높아지심,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로 복귀, 인정되심을 봐야 합니다.
이것을 바울은 빌2장에서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비천, 십자가들림
9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자들과
땅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모두 무릎꿇게 하셨잖아요. 이런 높아지심은 바로 종의 마음으로 오셨고, 종의 고난을 당하셨으며, 십자가에 높이
들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아버지께서 모두를 무릎꿇게 하시고 예수를 높여주신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메시야의 당하신 모습만 보고 고개를 돌리고 돌아섰습니다.
고난뒤에 영광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 종의 메시지를 기억하십시오.
사52:15절,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개역한글성경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것이며
야째라는 히브리어=뿌리다라는 라는 의미로 쓰여진 단어입니다.
사용례, 레14:7 문둥병자에게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번 뿌려 정하다 하고...물을 뿌린다는 단어가 야째
레14:14 우편 손가락으로 좌편 손에 기름을 찍어 그 손가락으로 그것을 여호와앞에 일곱번 뿌릴것이며
기름을 뿌려 /그러니까 열방에 피를 뿌리며...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럼, 수난, 고난, 십자가에 들려짐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십자가 보혈을 뿌려, 죄로 오염된 영혼들을 깨끗하게
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를 듣고 사람들은 왜 놀라게 됩니까?
열방이 왕들이 왜 놀라고 입을 봉합니까? 이 메시지를 듣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메시지의 핵심은
너희들이 정죄하고, 너희들이 멸시하고, 너희들이 무시하고, 너희들이 죽인 그 종...메시야가 바로 너희를 위해서
죽었노라. 우슬초로 정해진것처럼 그의 십자가의 피를 받아야 구원을 받느니라. 라는 십자가의 도, 복음의 메시지
앞에 입을 가리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할 복음입니다.
성경의 최고봉, 그것은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 예수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를 이성적, 합리적으로 믿을
만한 무엇이 없습니다. 내세울것이 하나도 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딱 한가지 그것은 우리죄를 대신해서 십자가
에 죽으셨다는 것...십자가죽음입니다. 그 피를 믿는자는 죽음에서 살리라
또하나 오늘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복이라는 것...형통이라는것
그것은 믿는자로서 당하는 고난, 멸시, 천대, 십자가, 낮아짐을 통과한 자에게 주시는 보너스일뿐이지
형통이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가 형통입니다
요즘, 교회가 너무나 멸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맞서면 안됩니다. 우리가 정당하게 했는데도 비난하던가요?
그래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멸시를 당하였고,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거든요.
다만 기억하십시오. 사람에게 높임, 칭찬받으려 하지 말고, 주님이 아시지요? 주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의 최고봉에 이르는 지름길입니다. 아멘'구약 강해 > 대선지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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