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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6:19~31 부자와 거지 나사로신약 강해/4복음서 2021. 9. 6. 17:56
눅16:19~31 부자와 거지 나사로(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지는 결정적인 이유)
누가복음 15장, 16장을 강해하면서 예수님은 참 직설적이시다는 것입니다. 비유로 완곡어법을 사용하시는 것 같지만, 굉장히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양 백 마리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찾을 때까지 그 험산준령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찾겠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찾아서는 벗과 이웃을 불러모아 대잔치를 연다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지만, 이 말씀의 배경을 보면 예수님의 의도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눅15:1절,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 가까이 몰려나오니 예수님은 이들과 가까이 하면서 교제하십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네 하면서 수군수근거립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잃은 양이 바로 너희들이 손가락질하는 세리와 여자와 죄인들이다. 나는 이런 자들을 찾으러 왔노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피력하고, 더 나아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아 아버지의 마음으
로 잃은 자들, 죄인들을 찾아 품어라…탕자의 비유에서 형처럼 돌아온 동생을 손가락질하지 말고 품어야 하지 않겠느냐?…지난 주에 말씀드린 불의한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는 어때요? 죽었다가 살아난 아들아, 하나님이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그러면, 세상 물질을 섬기지 말고, 그 물질로 죽어가는 영혼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이 비유를 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보십시오. 눅16:14절 후반절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아니 주인의 돈을 낭비하고, 더군다나 차용증서를 고쳐써 주인에게 더 큰 피해를 저지른 자를 처벌을 해야지 오히려 해고 이후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잘했다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서 비웃습니다. 예수님께서 옳지 않은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시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그 돈을 쌓아놓지 말고, 그 돈으로 이웃을 섬김으로 누구를 더 중히 여기고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돈을 더 사랑하느냐? 하나님을 더 섬기느냐? 인생의 목적 방향성이 돈 세상 물질이냐? 하나님이냐? 이 비유가 바로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말씀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입니다. 부자가 죽어서 들어간 음부는 지옥을 말하잖아요. 불꽃가운데서 괴로워하는 곳…반대로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이 있는 곳, 천국을 말합니다. 이 두 사람이 나누어지는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고 나는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지 깨닫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1. 부자와 나사로의 삶을. 비교해봅시다.
부자의 모습과 삶을 보십시오. 19절,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다=귀족이나 제사장, 지위가 높은 상류층이라는 겁니다. 요즘으로 보면 최고급 명품 메이커라는거죠. 이에반하여 나사로는 볼품없는 옷이라 소개도 하지 않습니다. 그의 몸은 헌테 투성이다. 버려졌다, 개들이 와서 헌데를 핧았다 ㅠ 피부병으로 흉측한 모습, 자기 힘으로 걸어다니기 힘들어서 버려진모습입니다. 생활상을 보세요. 부자는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날마다 잔치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모습을 돈을 좋아하고 돈을 사랑하는 바리새인의 관점으로 보면 어떨까요? 부자는 성공한 사람, 여기서 성공이란 자기들의 잣대로 신앙 영적 성공도 포함합니다. 반대로 나사로는 실패한 인생입니다. 오늘날도 이와 비슷한 잣대로 평가할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그런데 말입니다. 이 두사람의 대조에서 부자는 이름이 있습니까? 19절 한 부자, 이름이 없어요. 반대로 거지같은 버려진 사람은 어때요? 20절에 나사로=하나님이 돕다라는 특별한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비교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둘 다 죽습니다. 현세에서는 같은 하늘아래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있는 환경이 다르지만 같은 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죽어서 가는 곳은 전혀 달라요. 나사로는 22절에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이 땅에서 호화롭게 살았던 어떤 부자는 23절 고통당하는 음부에서 괴로워하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나누어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부자는 지옥가고 가난한 자는 천국갑니까? 건강한 자는 지옥가고, 병든 자는 천국갑니까? 궁금하시죠?
부자를 생각해보세요. 16:1~13절의 비유를 통해서 재물을 섬기지 말고, 12:13~21 밭에 소출이 풍성할 때 쌓아놓을 곳간 지을 생각하지 말고, 16:14 돈을 좋아하지 말고…뭐하라고요? 나누라고요. 베풀라고요. 이웃을 섬기라고요. 그런데 이 부자는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고만 있습니다. 그 많은 재물을 자기만을 위해서 탕진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율법에 일점일획도 떨어짐이 없다는 그 율법의 말씀,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 자가 되어 결국 고통당하는 불못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부자라서 음부에 간 것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목적이 자기 배 불리는 것이었다는 겁니다. 20절 후반절 보세요. 나사로가 버려진 채 자기 대문에 있었어요. 이 단어가 과거완료수동태입니다. 오래전부터 반복적으로 계속적으로 있었다는 겁니다. 나는 못봤어요 라고 항변할 수 없다는겁니다. 그런데도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를 돌아본 것은 개 밖에 없었노라입니다. 여러분, 부자도 말입니다. 장학재단을 만들고, 사회재단을 만들어 기부하고 선행하는 부자들 많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당연히 구별되어야지요. 여러분, 어떤 부자가 되고 싶으세요. 베푸는 그런 부자 기부하는 부자가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반대로 나사로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어떻게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 믿는 자가 가는 곳, 낙원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부자가 그를 돌봤다면 부자를 의지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돕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돕다”라는 자기 이름처럼 나사로야 나사로야…나를 돕는 이는 하나님 밖에 없다!
이 모습은 15장에서 유산을 가지고 타국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탕진하여 돼지쥐엄열매를 먹는 둘째아들의 이미지가 보이지 않습니까? 둘째아들이 그대로 죽었다면 실패한 인생이지만, 그 비참한 자리에서 아버지집을 기억하고 아버지에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인생의 반전이 시작된겁니다. 시121편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로다. 주님밖에 없습니다.나를 돕는 자 주님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서 돕는 이 아무도 없었지만, 주님만 바라는 그 사람, 주님께서 품어주신다는 겁니다. 이 두사람이 나누어지는 결정적 이유 그것은 재물만 바라고, 자기배만 불렸느냐? 주님만 바라보았느냐의 차이입니다. 가난한 사람도 누가 도와줄까하면서 사람만 붙잡는 사람은 이 땅에서도 실패하고, 저 나라에서도 구함받지 못하는 비참한 자가 됩니다.
2.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통하여 죽어서 가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
이 땅은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은 삶이요. 이 땅의 모든 사람은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죽음 이후 무저갱, 불못, 음부, 지옥이라는 심판의 곳과 아브라함의 품, 낙원, 천국의 상급의 곳이 있다는 겁니다. 음부의 고통이 어떠한지에 대한 부자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16:24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손가락 끝에 찍어 줄 물 한방울이 절실합니다. 죽어도 죽을수없는 고통의 곳이 있다!
3.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1)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아는 당신!-주님을 더 사랑하십시오. 구원자 우리 주 예수밖에 없습니다!
2)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모른 자를 위하여-부자가 음부에서 간청하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28절,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하소서! 부자의 형제들 역시 자기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데 죽은 나사로를 보내면 삶을 돌이키지 않겠습니까? 이에 대한 답변,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과거나 현재나 다 똑같습니다. 죽은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밖에 없다!
예수님이 얼마나 많은 기적을 보여줬습니까? 요11장에서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다고 다 믿던가요? 출애굽할 때 10가지의 놀라운 기적과 홍해바다가 갈라지고 만나와 메추라기가 떨어지는 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던가요? 기적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모세와 선지자…곧 모세와 선지자가 기록한 율법, 성경을 말합니다. 말씀이 이미 주어졌느니라. 이 말씀의 중심은 다른 것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라. 오직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밖에 없느니라. 지옥을 향하여 가는 이들을 향하여 우리가 외칠 수 있는 것, 예수믿으십시오! 입니다.'신약 강해 > 4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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