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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0:45~21:6 가난한 과부의 헌금(헌금의 목적)신약 강해/4복음서 2021. 9. 13. 22:56
눅20:45~21:1~6 가난한 과부의 헌금, 헌금의 목적
신앙생활해오면서 헌금 잘 해서 큰 복을 받았다는 간증을 많이 듣습니다. 자신이 가진 전부를 드렸더니… 집문서를 드렸드니…등등 그래서 자녀들이 잘 되고, 사업이 성공하고,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더 후하게 주셨다. 심는대로 거둔다고 많이 심으면 많은 열매를 주신다는 간증과 설교 말입니다. 헌금에 대한 대표적인 구절이 오늘의 말씀, 가난한 과부가 가진 전부를 드린 사건과, 고후9:6절 이하에 보면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하면서 많이 심도록 유도를 하지요. 과연 이렇게 설교하는 것이 맞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헌금, 주님이 원하시는 헌금의 목적이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헌금드리는 자의 자세 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금이 무엇인가?
예수님시대 예루살렘성전입구에 나팔 모양의 헌금함이 13개 놓여있었다고 합니다. 성전에 들어오면서 자유롭게 연보궤라고도 하는 헌금함에 십일조와 성전유지비등을 넣는것인데, 주변에 관리하는 제사장들이 있고, 누가 헌금을 많이하나 관심있게 보는 군중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연보궤가 놋쇠로 만든 나팔모양이기 때문에 동전을 넣으면 소리로 인하여 대략 얼마정도를 헌금하는지 짐작이 된다는 것입니다. 500원짜리 동전100개를 쏟아넣으면 소리가 웅장하겠지요? 10원짜리 동전 2어개 넣으면 딸랑 하겠지요? 이때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을 향해서 나아옵니다.
어떻게 가난한것을 알 수 있을까요? 프코케라는 가난한 단어는 구걸하다는 뜻으로 옷입은 행색이 마치 구걸해서 사는 사람처럼 보인것입니다. 행색부터 초라한 더군다나 과부인 분이 오셔서, 두렙돈을 넣는 것입니다. 요즘돈으로 환산하면 2~3천원정도인데요…이 돈을 넣는 이 여인의 마음 또는 행동이 어땠을까요? 주변 시선도 있지요, 헌금액수는 너무 작지요, 그런데 이 동전을 넣으면 딸랑 소리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알겠지요…그래서 아마도 고개를 푹 숙이고 조심스럽게 살짝 넣고는 황급히 나와야하는 그런 모습 아닐까요? 이 모습을 부자들도 보고, 예수님도 보셨지요.
이때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1:3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누구보다 앞서서 헌금한 부자들보다 많이 넣었도다! 왜냐하면 4절, 부자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이 여인이 헌금할 때 마음이 어떤지 아시겠지요? 주님이 이 여인의 마음을 아시잖아요? 가진 전부, 생활비 전부…전부를 드린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금액과 주님이 생각하시는 금액이 달라요? 우리는 금액 숫자, 연보궤 나팔소리가 우렁찬데에 관심있지만, 주님은 금액, 소리로 판단하시지 않고 마음으로 판단하신다는 겁니다. 어떤 마음으로 그 사람이 가진 가치를 보고 판단하시지요.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드릴 때, 쉽게 표현하면, 엘리사선지자시대에 마지막 남은 것 전부를 드린 사렙다 과부의 떡 하나…이런 것을 주님이 기뻐하시며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 자신의 전부를드릴 수 있는 큰 믿음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 반대로 부자들의 금액을 적게 보신 이유가 무엇일까?
21:1절에 보면 부자들도 헌금팜에 헌금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보실 때에 이 금액이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보다 작다는 겁니다. 부자는 많이 넣어서 주변인들에게 와~~역시, 대단해~ 하는 소리를 듣고, 존경을 받는데 우리 주님은 왜 이렇게 평가절하실까? 이들은 연보궤에 동전을 넣는 마음이 어떠했을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과시하기위해서…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간에, 자랑스럽게 던져넣었다는 겁니다. 부자에게 있어 이 금액은 얼마되지 않는 푼돈에 불과했겠지만, 일반인이 볼때는 엄청난 금액으로 다가왔겠지요? 주님이 비교하시잖아요? 부자들이 낸 돈은 두 렙돈의 가치도 안되느니라! 당시대 부자들이 헌금을 얼마나 했겠어요? 눅18:18절 이하에 부자 관리가 어떤행동을 하던가요? 성경 율법을 다 지켰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예수님께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초청했을때,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면서 예수님을 등지고 자기 돈을 향해서 떠나가잖아요! 이것이 바로 부자들의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드리는 헌금은 자기 만족의 헌금, 자기 형식의 헌금, 자기 안위의 헌금일 뿐이다.
3. 가난한 과부의헌금을 통하여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메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헌금의 목적이 무엇인가?
헌금이야기 전후 문맥을 보십시오. 20:46~47절 말씀을 보면, 긴 옷을 입고 다니는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종교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심판이야기를 끄집어내십니다. 그리고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헌금 다음엔 21:5~6절,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성전심판, 성전파괴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당시대 종교지도자들이 가난한 과부의 가산을 삼켰다는 것은 이런 이야기입니다. 성전을 아름답게 세우는데, 교회를 건축하는데 전부를 드리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눈을 감게 하고 손을 들게 하고, 작정하게 하고…그래서 주변 분위기에 휩싸여 드리겠나이다 드리겠나이다!!! 쥐어짜서 받은 헌금으로 성전을 아름답게 가꾸었다는 겁니다.치장했다는 겁니다. 이런 성전을 주님이 기뻐하시겠는가 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높임받기 위해서 헌금하고, 자랑하기 위해서 길게 기도하고, 그래서 백성들로부터 인정받는 모습이지만, 정녕 율법에서 말하는 바 의와 인과 신은 저버리고 율법의 마침인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저버린 이들에게 심판은 마땅하지 않겠어요?
헌금함이라는 것이 원래는 연보궤입니다. 율법은 가난한 자들과 과부와 아이들과 저는 자들을 위해서 같이 사는 땅에서 한맺힌 사람이 없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연보궤에서 돈을 풀어서 가난한 자들을 도와 그들의 마음속에 한을 풀어주고 그래도 하나님 사랑이 있다는 것과 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공동체라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이런것은 부자들이 나서고, 종교지도자들 서기관들이 나서야 하는데 나서기는 커녕 오히려 가난한 자들의 마음을 자극해서 전부를 바치게 하고 그것으로 성전을 꾸미는 이런 모습을 보시고, 성전도 파괴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는가? 예수님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교회에 던지는 메세지 아닙니까?
이 구절은 가진 전부를 바치라는 헌금 설교가 목적이 아닙니다. 과연 하나님의 돈을 가지고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종교지도자들의 배를 불리고 있는가? 건물인 교회당을 짓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가? 가난한 이웃과 고통받고 있는 동남아 아프리카의 선교지는 보이지 않는가? 예수님께서 심판을 외치는 이 심판과 다 허물어 버리신다는 성전의 경고를 다시한번 새겨듣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 십자가를 앞두고 우리에게 헌금 많이 하라고 이 말씀을 주셨겠습니까? 주님과 같은 사람이 여러분 주변에 있는지 자세히 보라는 것입니다. 마25장 양과 염소를 나누는 기준을 보십시오. 내가 주릴 때, 헐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먹을 것을 주고 옷을 입혀주고 돌보지 않았느냐? 저는 그런적이 없는데요? 마25:4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가난한 과부를 등장시킨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그 사람의 생활비 전부를 바치게 하는 것이 목회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목회를 잘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신약 강해 > 4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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