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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눅23:44~56 십자가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
    신약 강해/4복음서 2021. 9. 15. 16:31

    눅23:44~56 십자가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상사병)

    아는 분 이야기인데요. 중학교 다니는 따님이 자해 안먹고 안자고…그러다 가출해서 경찰서에서 위치추적해서 찾아오고, 어젯밤에는 혼자있게 해달라고 해서 부모는 나와서 차안에서 망보고 있고…이런 상황을 기도해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고작 한다는 말이 그래도 부모는 믿어주고, 품어주고, 사랑해줘야 하는데 참 어렵지요? 부모 역할하기가 참 힘들어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묵상하게 되었는데요.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죽어가는 독생자 사랑하는 아들을 하나님아버지는 어떻게 보셨을까? 사랑하는 아들을 힘들게한 온 세상을 입김 한번으로, 손짓한번으로 다 심판하실 수 있으신데…어떻게 하셨을까? 그저 뒤돌아서 마지막의 신음소리를 다 듣고 계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때, 온 세상이 캄캄했던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하나님께서 끝까지 참으신 것이 바로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십자가 그 사랑을 깨닫는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이루신 사건 두 가지를 살펴볼려고 하는데요. 
    1. 성소의 휘장이 한 가운데 찢어진 사건입니다.
    성막을 재현해놓는곳에서 휘장을 본 적이 있는데요.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는 휘장이 가로 세로 높이 10규빗, 4.5미터인데, 예수님시대 휘장은 높이만 해도 대략 15미터정도라고 합니다. 휘장은 청색 자색 홍색 자는베실로 짠 천인데 두께가 대략 10센티정도라고 하니까 삼손이 찢는다고 해도 찢을 수  없는 것이지요. 이 휘장의 기능은 거룩한 곳에 죄인이 들어갈 수 없도록 생명보호차원에서 막아놓은 것입니다. 단, 1년 한번 대속죄일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들어가 속죄의 제를 드리러 들어가는 것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곳은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가 있는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휘장에 천사의 그룹이 수놓아 있어 천사가 지키고 있는 것이고, 창세기2:24 하나님이 죄지은 아담과 하와를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막은 것 처럼 이 역할이 바로 휘장인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바로 이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갈라져 둘이 된것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누구든지,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나오는 사람 누구든지…거룩하나 하나님이 계신 곳,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이 길을 히10:20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이 바로 휘장을 갈라놓으신 것이요, 이 길을 통과하는 자만이 사는 자, 영생의 문을 여는 자라고 말씀하고 계신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죽으신 큰 뜻입니다. 자신을 따르는 모든 자를 지성소, 하나님의 보좌, 하나님의 나라로 합당하게 이끄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 모습을 바라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모습은 어떨까요? 눅22:44 때가 제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오늘날 우리 시간으로 정오부터 오후3시까지 온 땅이 캄캄했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어떤 사람은 일식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3시간이나 캄캄함은 있을수가 없습니다.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은 부분일식이 시작되어 일식이 완전히 끝날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1시간정도이고, 그 가운데 개기일식은 대략 2분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세시간이나 개기일식이 아닌 칠흑같은 캄캄함은 과학으로 해석할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모습을 창조주이신 하나님아버지께서 태양을 가리고 뒤돌아서서 온 땅, 온 나라가 캄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독생자의 죽음을 차마 보지 못하시고 뒤돌아서셨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이 사랑한 자녀들을 주님도 사랑하셨기 때문에 독생자를 죽이시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뒤돌아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극한 하나님의 상사병같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표현으로 휘장을 갈라주신것입니다. 그래, 이 피를 힘입어 오는 자, 다 받아주겠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서 정당하게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2. 가상 칠언이라고 해서 십자가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인데요. 누가복음에서 마지막말씀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입니다. 이 말씀처럼 영혼을 맡아주시는 분이 계시다!
    마태복음에 보면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처절한 외침이 기록되어 있는데 누가복음엔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니이다 하고 큰 소리로 외치셨다고 합니다. 큰 소리로 외쳤다는 것은 무리들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죄를 짏어지고 죽으신 그 죽음앞에서 이런 처절함도 있고, 이런 죄를 다 받아주시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버지! 나는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받아주시는 아버지
    가 계시다 아버지 나의 영혼을 받아주십시오! 라는 의탁의 부르짖음이 나오는것이지요. 
    이것을 아는 사람은 예수 십자가를 통하여 생명과 영혼을 되찾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 자녀의 직분 신분이 주어졌다는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이 선포가 바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한다는 것은 지금 죽지만 영혼을 다시 주십시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확증을 바로 부활로 증거하신겁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영혼을 주님이 받아주셔서 하나님나라에서 그대로 이어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영혼을 맡기시고, 다시 부활로 증거하셔서 본을 보여주신것처럼 말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자, 어떻게 살아야 할까? 두 가지를 드릴려고 하는데요. 십자가 증인들아 
    첫번째, 주님을 고백하라!
    47절,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막15:39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지신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방했습니다. 이런 모든 사형집행의 현장책임자가 바로 백부장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죽이라고 한 사람들의 대표성을 가진 자가 바로 이 사람인것이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십자가아래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사람은 의인이었도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대부분의 사람들, 구경꾼들, 비난하는 자들…대부분 뿔뿔히 흩어지는데, 그저 가슴을 치면서 돌아가는데, 이 사람은 주님을 바로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뜻을 아는 자입니다. 주님을 십자가에서 붙잡은 한 강도처럼 말입니다. 죄의 경중의 무게를 따지자면 십자가위에 있는 강도,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로마군병, 백부장입니다. 그런데 죄의 무게가 가장 무겁다고 한 이들이 주님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고백하는 자는, 주님을 아는 자는, 십자가를 의미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자는…자기의 죄가 이처럼 크게 고백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나는 죄인중에 괴수라고 고백한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자…그는 곧바로 이런 고백이 터져나오는 것이지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다 뿔뿔히 흩어지는데 백부장이 고백하는 것처럼 군중 무리에 휩쓸리지 말고…누가 뭐라고 해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고백하고 선포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 우리의 할일은 예수님을 장사한 요셉과 니고데모처럼 삶 가운데서 드러내는 제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판받으시고 죽으실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죽음에 찬성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죽음의 현장까지 따라온 여자들도 나서지 못하고 바라만 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무서운 때에 예수님을 장례하겠다고 나선 담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50절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요19: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입니다. 이분들은 공회 의원으로 당시대 종교지도자요 기득권자들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편드는 이 하나로 평생동안 쌓아올렸던 모든 덕망과 기득권을 다 잃어버릴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당하게 나섰다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권력, 경제, 다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한때는 예수님을 찾는 것이 소문날까봐, 알려질까봐 밤에 찾아왔었지요. 한때는 예수님이 재판받으실때 당당하게 나서서 죄가 없다고 나서지 못했었지요. 그런데 십자가에서 죽으신 다음…당당하게 나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동안 숨은 제자처럼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이때 짠 하고 드러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십자가가 경험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진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예수님을 자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우리 가진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왜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교회를 자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교회를 비방할 때 나서서 변호하지 못할까?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많이 막혀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어서 그런것입니다. 십자가의 체험이 없다보니까 죄사함의 감격이 무디어져서 그런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담대한 신앙, 용기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십자가 믿음에서 나옵니다. 주님이 계신다. 나의 죄를 다 짊어지셨다. 나의 질병을 맡아주셨다. 그 주님이 나의 영혼을 맡아 주신다. 그러면, 거칠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가 다시 회복된 이유, 예수 믿는 자를 대적했던 바
    울이 극렬 예수 신봉, 전하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십자가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십자가 그 은혜를 다시 한번 기억하시고 백부장같이 고백하고, 요셉과 니고데모처럼 담대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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