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강해(18) 고전1:1~3, 12:12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성도의 연합과 교제)
거룩한 공회, 보편적 교회를 믿습니다라고 우리는 고백을 했습니다. 교회가 거룩한 이유는 거룩한 성령을 통하여,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구성원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 교인 곧 신자, 성도 아닙니까? 왜 성도, 거룩한 무리라고 하는가? 역시 주를 믿는 신앙이 바로 성령님이 주셨기에 가능합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예수님을 주라 고백하지 못합니다. 고전12:3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을 주라 고백하는 신앙, 성령님이 주셨기에, 이들을 거룩한 신자, 성도라고 하는 겁니다. 오늘 사도신경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말씀을 깨닫고 우리의 정체성을 깨닫는 귀한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성도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지난 주 살펴본 것처럼 교회는 에클레시아라 세상으로부터 불러낸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에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출애굽할 때를 상상해보세요. 애굽에서 비참한 노예살이 당하면서 착취와 학대를 당했습니다. 이때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스데반은 이때를 광야교회라고 했지요. 신약의 교회는 어때요? 마16:16절,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의 고백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셨지요. 한마디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했습니다. 이 모임, 교회의 구성원을 거룩한 무리, 성도, 신자라고 합니다. 그럼, 믿는 자들 이 다 거룩해요? 고린도교회를 보십시오. 문제많은 교회, 문제 백화점같은 사람들이 모인곳이 고린도교회입니다. 음행, 파당, 다툼, 은사 자랑, 투기 등 사람사는 세상에 모든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모습을 보면, 손가락질을 하면서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뭐 저래, 하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고전1:2절을 보십시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사도바울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문제많은 이들을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성도, 우리의 관점으로는 성령충만하고 예언하고 방언하며 세상 세속과 구별되어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성도라고 할 것 같은데, 사도바울은 예수를 주시라 고백하며 하나님의 교회안에 있는 자들을 향하여 성도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너무나 우리의 주관적 관점과 내 생각으로 사람을 판단하며 정죄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너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과 교회가 모독을 받는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나 역시 그렇게 거룩하게 살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관점은 어때요? 성도라고 합니다. 이 관점이 필요합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예수, 예수이름을 믿고 영접한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니…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특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아직 성화되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하고, 삶이 뒤따르지 못할지라도…우리의 신분은 거룩한 신자 성도가 된 것입니다. 미성숙하여 넘어지고 자빠지지만 이제 거룩의 삶에 동참하며, 성령의 이끌림에 예민하려고 하고, 말씀중심의 삶을 살려고 힘쓰지 않습니까? 어린이가 어떻게 곧바로 청년 어른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자녀, 성도임을 스스로 기억하시고 선포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다. 나는 하늘에 앉힌자이다. 하나님의 상속자이다. 이제 노예처럼 살지 말고, 거지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처럼 당당하게 사시기를 바라고, 믿는 자를 바라볼 때, 성도로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2. 서로 교통하는것이 무슨 뜻인가? 성도의 연합, 성도의 교제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것에는 반드시 상대가 있습니다. 서로 교통…나와 너라는 상대가 있지요. 그런데 교통이라는 코이오니아라는 말은 교제, 친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교제 친교의 대상은 먼저 수직적인 관점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요한1서 1:3절,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여기 나오는 사귐이 고제코이오니아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누리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요15:1절 이하 포도나무 비유를 보면,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9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이것이 바로 교제요 사귐이요 누림입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붙어 있는 자, 붙어서 사랑을 고백하는 자, 사랑받고 사랑하는 그런 관계 …라는 것입니다. 요17장에서는 더 확실하게 보여주시는데요. 17:21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23절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예수님과 사귀면 예수 안에 있고, 하나님아버지와 당연히 교제한다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교제와 우리의 모습을 엡2: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골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너무 신나지 않습니까? 먼저 교제, 교통, 사귐하면…수직적 관계에서 예수님과의 사귐, 자연히 당연히 아빠 아버지인 하나님과의 사귐…이 안에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 이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사귐 그러면, 선교사로 가라, 네것을 다 팔아 바쳐라 …이런것만 생각해서 하나님께 친밀히 나가는 것을 주저하는 분들이 많은데,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친밀한 교제를 원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을 믿고 나아가면 하나님과의 담이 다 무너져서 화평케 되는 겁니다. 의무가 무겁게 다가오시는 분들은 더 십자가 주의 보혈의 효력을 고백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문제, 죄를 보시지 않으십니다. 더 가까이 친밀히 하나님과 교제하여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주의 영광을 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 성도간의 서로 교제가 있는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는 뭐니뭐니해도 초대 예루살렘교회 아니겠습니까? 행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4절 이하에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성도의 교제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내 것을 내놓아 떡을 떼며…초대교회의 떡을 뗀다는 것은 성만찬을 의미합니다. 성만찬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이것은 내 몸이니, 이 잔은 내 피로 새운 새 언약이니 하면서 주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먹고 마시고 등산가고 취미 교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기념하는 십자가가 중심입니다. 십자가 없는 교제는 앙꼬없는 찐빵입니다. 십자가 없는 교제는 결국 꽹꽈리 소리처럼 다툼의 소리 분열의 아픔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중심인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떡을 떼며 나누며 교제하는 아름다운 모습, 세상 사람이 보고 칭찬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십자가 중심의 교제는 고전1:10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도간의 교제의 첫번째가 십자가 중심이라면, 두번째는 한 몸 공동체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포도나무비유에서처럼 우리는 모두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잖아요. 고전12장에 보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우리는 한 몸 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는 당연히 그리스도이고, 우리는 각각의 한 지체라는 것입니다. 몸의 여러 지체가 각각 하는 일이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역할도 다릅니다. 이처럼 성도 각 개인 개인은 하는 일도 다르고, 역할도 다르고, 은사도 다릅니다. 그렇다고 서로 비판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그런 위치라는 것입니다. 누가 좋아보여서 하나님 저 사람은 저렇게 해주시고 나는 왜 이모양 이렇게 해주셨어요? 하고 토기장이인 주님께 항변할 수가 없습니다. 고전12:18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그러므로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가 없다하거나,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한 몸 각 지체는 서로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손가락 어느 한 부분이 아프면 온 몸이 아파합니다. 발가락 하나 다치면, 어디 가고 싶어도 못갑니다. 그래서 각 지체의 각 부분은 소중합니다. 고전12:22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여 요긴하고…더군다나 24절 말씀은 가히 혁명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복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이 모습이 바로 성도의 교제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공동체에 약한 자가 있고, 부족한 자가 있으면 더 귀히 여기고, 그 부족함을 채워줘야 하는 것 …진정한 교제입니다. 강한 자, 있는 자는 더 겸손하여서 더 섬기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하나님이 강하게 하신 이유입니다. 이 한 몸 공동체를 모르고, 이 섬김과 교제를 모르니까…나는 아는것이 하나도 없어, 가진 것도 없어 하면서 늘 패배주의에 빠져서 불만이 쌓이고, 나보다 잘난 사람이 없네 하면서 뽐내고 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세상 사람들 입방아에 교회와 교인들이 오르내립니까? 왜 손가락질을 당합니까? 진정한 하나님과의 교제, 성도간의 교제가 없으니까 무시를 당하는 겁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어요? 주님 안에서 은혜를 누리고, 이 기쁨으로 성도를 섬기는 것 내 가진 것을 섬기라고 주셨으니 아낌없이 내놓는 것…이런 공동체가 진정한 교회요 거룩한 성도인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