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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14:1~7 세상을 움직이는 두 원리(기둥)
    구약 강해/시가서 2022. 8. 28. 15:37


    시14:1-7 세상을 움직이는 두 원리(두 기둥) 무신론과 유신론, 남들과 다르게 삽시다!
    신학교 조직신학에서 신존재증명에 대한 공부를 하는데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일반계시, 자연을 통하여, 이성과 경험을 통하여, 그리고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공부를 합니다. 하나님 존재에 대한 사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계시다라는 유신론과 하나님은 없다고 하는 무신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전제하여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구분하지만, 교회밖 세상에 나가면 하나님이 계시다고 그러면 하나님을 보여봐라!는 무신론자들의 논쟁과 맞닥뜨립니다. 어떤 모임에서 하나님이 계신다 아니다의 열띤 논쟁이 벌어질 때, 한 중년 남자가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하나님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없지요? 그럼, 내가 5분 내에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하면서 날선 칼을 꺼내면서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5분내로 여기있는 칼로 저를 죽이십시오! 그러나 5분내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1분,…5분이 되었습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의기양양하게 큰 소리로 이것보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죽었거나 아예 없는겁니다. 말일 예수쟁이들이 말한대로 하나님이 존재하고 살아계시다면 나같은 신성모독한 사람을 그냥 두겠습니까? 잠잠한 이 때, 할머니 한 분이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여보시오 젊은이, 당신에게 자녀들이 있습니까? 지금 당신이 잡고 있는 칼로 자녀들이 나를 죽이십시오 한다면 그 아들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내 아들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있습니까? 그것보세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당신에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당신을 바라보시며 울고 계실지 모릅니다. 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안계신것이 아닙니다. 그러나,세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안 믿는 것이 상식이고 정상,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이런 무신론자들을 향하여 어리석은 일이며 어리석은자라고 합니다. 이런 어리석은 자와 함께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는 은혜의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누가 어리석은 자인가?
    상식이 부족하여 사람들 앞에서 자기 체면이나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 자기 할 일은 하지 아니하고 남의 일에만 관심하는 사람, 받은 바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고도 고된 일을 하는 사람, 수지를 맞출 줄 모르는 사람, 손해만 보는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 편에 서서 혜택을 받지 아니하고 권력의 부정부패를 지적하다가 벌을 받는 사람, 시세 대로 영리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정의니 양심이니 하면서 의롭게 가난하게 괴복게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런 사람을 세상에서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 무신론의 사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곧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그 사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1절에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다는 말의 히브리어단어를 어디서 들어본 기억이 있을겁니다. 삼상25장 다윗이 사울왕에게 쫒겨 광야생활할때에 마온에 부유한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이 사람의 이름이 나발입니다. 나발…이 뜻이 어리석은, 미련한, 무감각한, 분별없는 입니다. 나발, 어리석은 사람, 결국 몸이 돌덩이처럼 굳어 죽고 말았잖아요? 어리석은 사람, 세상사람의 특징, 삶의 원리가 무엇인가?
    1)하나님이 없다는 원리가 모든 삶의 중심입니다. 그러니까 1절, 부패하고 행실이 가증하고 선을 행하지 않는겁니다. 부패하다 완전히 썩은 사과같은 모습이잖아요. 악취만 풍기는 겁니다. 그러니 모든 삶의 모습이 무자비 무정 무질서한겁니다. 성경속에 이런 시대, 모델이 있습니다. 창6장의 노아시대입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 좋지 않는 더러움이 충만한 모습이잖아요. 창18장 소돔과 고모라는 어때요?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결국 노아시대는 홍수로 쓸어버리시고, 소돔과 고모라는 타는 유황불로 태워버리시잖아요. 신약시대도 어리석은자의 샘플이 있습니다. 눅12:16~21절에 보면 한 부자가 쌓아둘 곳이 없을 정도로 풍성한 소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쌓아둘 곳이 없어 어찌할꼬 어찌할꼬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쌓아야지하는 사람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영혼준비는 하나도 하지 않고 물질만 쌓아둔 사람을 향하여 무슨 사람이라고요? 어리석은 사람이라…신구약을 통틀어 어리석은 사람의 특징은 그의 마음에 하나님은 없다하면서 물질세계속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는 자들입니다. 세상것은 쌓을줄 알면서 주님을 알려고 하는 마음,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 영혼에 대한 영적 준비가 없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두번째 특징은
    2)약한자를 짓밟는 강자의 마음입니다. 4절,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6절,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여기에 나오는 '무지하뇨'라는 동사는 완료형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악인들의 무지가 단회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계속된 반복적인 행위라는 겁니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이렇게 할까요? 내 백성을 먹으면서…백성들 특히 가련한 자들을 매우 괴롭힌 악인들의 악행을 반복한다는겁니다. 떡 먹듯이 이들의 삶의 원리, 행동이 이렇다…여러분, 죄짓는 사람들 교도소 갔다오면 선한 사람으로 바뀌어질까요? 오히려 학교라고 하면서 잡히지 않는 방법등을 배워서 나온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겁니다. 떡먹듯이 밥먹듯이 약한 자를 짓밟는 것이 행동양식입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장관 후보자들을 검증하는 청문회의 모습을 봤지 않습니까? 왜 과거 잘못된 행동들을 끄집어 내면서 검증할까요? 과거에 잘못된 행동들이 권세를 잡으면 똑같이 아니 더 부릴것을 알기 때문에 청문회를 하는 겁니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어리석은 자들은 왜 이렇게 변하지 않을까요? 더 강하게 심하게 잘못된 행동들을 할까요?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이 중심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며, 마음이 부패하여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악한 행동이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지금은 자기마음대로 살지만 결국 자기가 행한대로 보응받고 심판받는 때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리석은 자 = 나발과, 노아시대, 소돔과 고모라시대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주인되어 살아가던 이들의 심판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없이 사는 이들의 영혼구원을 향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2. 어리석은 자와 반대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유신론, 믿음의 사람은 세상의 공격을 늘 받아왔습니다. 성경속에서 노아와 롯이 그러했으며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 역시 세상의 핍박속에 늘 손해보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모습을 오늘 본문 6절 말씀에 가난한자라고 표현합니다. 가난한 자, 약한 자, 소외된 자는 무신론자들, 진화론자들이 행세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하나님을 더 찾아야 합니다. 2절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하신즉…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 보려하신다는 겁니다. 4절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하나님! 하면서 부르는 자, 하나님 하면서 하나님을 찾는 자를 하나님이 찾으신다고 합니다. 어린이날 에버랜드같은 곳에서 부모님을 잊은 어린아이를 생각해보십시오. 부모를 찾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노는 일에 집중하는 아이가 있다면, 부모가 쉽게 찾을 수 있겠어요? 엄마, 아빠 하면서 울고불고 찾아다녀야 발견이 되지요. 이런 것처럼 무신론자들과 같이 휩쓸려 동조하면서 살아가면 세상과 동화되면 찾을 수가 없는겁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역류하는 몸부림…하나님을 찾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마7:7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것이니라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히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두드리고 구하고 찾는 것이 바로 이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역류하는 길이며 하나님께 발견되는 비결입니다.
    2)여호와만, 오직 여호와만 피난처라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6절 말씀에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라는 말씀을 교회에 대비하면 여호와는 가난한 교회의 피난처이시다! 더 노골적으로 해석하면, 가난한 사람과 가난한 교회만이 여호와 하나님을 피난처로 경험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메시지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요17장의 기도의 핵심이 이런것입니다. 요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안에 있게 하사…23절에는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아버지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우리는 주 안에 있게 해달라는 예수님의 기도이며, 갈2:20절에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 하나님이 가난한 자의 피난처라는 말은 가난한 우리가 부자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만 나의 피난처이시고 하나님만 나를 도울 수 있는 분이시며 하나님에게만 희망 소망을 품는다는 겁니다. 왜 이런 고백을 할까요? 하나님이 계시고, 살아계시고, 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2절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 어떤 사람요? 하나님만 우리의 피난처라고 하면서 하나님만 찾는 이…이런 믿음의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마지막절인데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언제까지 강한 자에게, 권세있는 자에게, 힘있는 자에게 속박당하며 고통당하며 압제당하며 살게 하지 않으시고, 돌이키게 하실 때, 회복시키실 때, 구원시키실 때가 반드시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 세상사람으로부터 당하는 왕따 손가락질에 좌절, 믿음을 포기하며 사망의 잠을 자려고 하지말고 역류하듯 거스려 나아가고, 하나님만이 우리이 피난처라고 고백할 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믿고, 남들과 다르게 사는 우리가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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