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6:1~11 주님은 나의 최고봉!(주 바라기, 주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충분합니다)
오늘 본문 16편의 표제를 보면 조금 특별합니다. 다윗의 믹담…믹담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을 했는데요. 믹담시는16, 56~60편, 총6편인데요, 믹담이라는 말은 금같은 것을 조각한 어떤 것이라는 뜻으로 황금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황금에 글자를 새기듯, 우리 심비 마음에 깊이 새기어야할 말씀이라는 겁니다. 마음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리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옛날에 짚신장사하는 큰 아들과, 우산 장사하는 둘째 아들을 둔 어머니가 살았답니다. 이 어머니는 날씨만 바뀌면 근심걱정이 태산이었다지요. 오늘처럼 해가 쨍쨍하면 우산장사하는 둘째네 걱정하느라 안절부절,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짚신장사하는 장남 걱정에 날마다 걱정인겁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을 어떻게 바꾸어 살아야 할까요? 비가오면 우상장사하는 아들 잘되겠다~, 하늘이 쨍쨍하면 짚신장사하는 첫째아들 잘되겠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면 날마다 좋은 날이겠지요. 이런 마음처럼 우리도 마음만 바꾸면 우리 인생이 항상 즐거운 날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할까? 다윗의 믹담시, 황금시 16편에서그 비결을 깨닫고 항상 즐거운 인생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주는 나의 주님입니다. 주 밖에 없습니다 라는 고백이 복과 즐거움의 출발선입니다. 2절 말씀인데요.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이 고백은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예수보다 더 귀한 분은 없습니다의 고백이요, 주님만이 나의 참 행복이요 참 기쁨입니다의 선언입니다. 신약에서 이 고백을 처음 한 사람은 사도 베드로입니다. 마16:16절,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이 도시는 황제의 이름 가이사를 붙인 도시입니다. 황제이름을 붙일수있는 도시는 도시중앙에 황제의 신이 있어야하고, 화려하고 웅장한 도시어야 합니다. 황제의 우상이 우뚝솟은 이 도시 한 복판에서 베드로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세상 사람은 황제 가이사와 권력에 무릎꿇지만, 나의 주님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이 당당한 고백과 선언…이 믿음과 고백을 우리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던가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있도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복을 주시잖아요, 또 이 고백을 제일 많이 한 분은 아마 바울일겁니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빌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그러면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선포했습니다. 이 신앙고백이 행복의 출발선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고백하십시다. 주는 나의 주님,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는 주의 종, 노예입니다. 또 하나의 고백이 뒤따라야하는데요. 2절 후반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입니다. 주님 외에 다른것을 구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주님 외에 다른것으로 만족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 외에 다른것이란 어떤 권력, 어떤 부귀영화, 어떤 물질일 수 있습니다. 지위가 높아지고, 물질이 풍성해지고, 하는 어떤 것들이 잘 되므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오직 주님만 있으면 만족하고, 주님으로 충분하다는 고백입니다. 과연 우리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다윗은 이미 시4:7절에서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때보다 더하니이다! 곡식과 포도주의 풍성함보다 주님으로 더 기뻐한다는 고백입니다. 욥의 고백은 우리에게 큰 도전입니다. 욥1장에서 욥을 소개하는데 욥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고, 양이 칠천마리, 낙타가 삼천마리 소가 오백겨리 암나귀가 오백마리이며 종도 많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하룻만에 아침안개 사라지듯 다 사라질때, 1:21절 이하에,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세상것 있으나 없으나 이것이 그의 마음을 좌지우지, 기쁨을 좌지우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주님이면 충분하다는 복음의 진리입니다. 우리 역시 이런 고백이 필요합니다. 주님으로 충분합니다. 주님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위급할 때 어디로 도망갑니까?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가 숨으라고 권면하지만, 1절,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이런 고백은 주님으로 충분하고, 주님으로 완전하다는 고백이 있는 자만이 취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주님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자에게 주님은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십니다. 이런 자에게 주님은 울타리가 되어 주십니다. 지금 봄철에 농사하시는 분들은 고구마 감자 고추 옥수수등을 심었는데요, 산짐승 멧돼지, 고라니등이 농작물을 다 헤친답니다. 그래서 그 넓은 밭들에 안전망들을 쳐서 농작물을 보호하는데요 한계가 있어요. 이런것처럼 우리의 산업, 우리 자녀, 우리를 지켜줄 안전망은 경찰 검찰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고백하고 주님께 피하십시오. 아멘
2. 여호와는 나의 모든것입니다 고백할 때,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5절,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다윗이 이 고백은 여호와가 나의 재산이며, 내가 마실 잔입니다. 나의 산업, 나의 재산, 나의 마실 잔은 여호이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과 환경은 다 주의 뜻이며 주님의 인도라는 것입니다. 5절 후반절 나의 분깃, 6절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 나의 기업…이 모든 것이 주의 것이며, 주님이 허락해주셨다는 고백입니다. 믿음으로 이 고백을 하는 분들은 남들보다 조금 부족하다고해서 불평하지 않습니다. 조금 많다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것이고, 주님이 허락해주신 분량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달란트와 므나비유를 아시지요? 2달란트가 되었든, 5달란트가 되었든 남과 비교하지 않고 주님 주신 달란트 므나를 열심히 가꾸어 많은 것을 남기었더니 주님이 갑절로 더 주시더라. 반대로 나에게 이것밖에 주지 않았다고 땅에 묻어둔 한달란트를 가진 자의 것은 빼앗아 버리시지 않던가요? 많고 적고에 불평하지 않고 주님이 나에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이라 생각하고 받고 땀흘리면 주님이 영역을 더 넓혀 주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잔의 소득은 어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잔을 아시지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십시오 부르짖으시다가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기도하시고, 십자가에서 그 죽음의 잔을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당시에는 죽음으로 다 끝난줄 알았는데 부활의 기쁨을 주시고, 빌2:9절 이하에 보니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이름에 꿇게 하시고…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세워주시지 않던가요? 지금 내게 고난의 잔이고, 실패의 잔이고, 아픔의 잔일지라도…주님이 허락해주셨으니 하면서 그대로 받으면, 후에 시23:5절 말씀처럼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는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더군다나 6절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 나의 기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각자에게 주신 비전입니다. 저같은 것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면서 소극적으로 자신을 폄하하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나의 모든 것이며, 나의 기업입니다. 고백하는 사람은 사람은 이제 입을 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아뇨 입을 열게 하십니다. 시81편에 네 입을 넓게 열라는 말씀처럼 입을 열어 선포하는 것입니다. 수1:3절 여호수아에게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너희에게 주었노니 너의 영토가 되리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군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던가요? 첫번째 성 여리고성을 날마다 돌지 않았습니까? 갈렙은 헤브론 산지를 향하여 이 산지를 주소서 선포했더니 하나님이 갈렙에게 허락하지 않던가요? 이처럼 비전을 선포하는 겁니다. 요한웨슬레가 세계는 나의 교구요,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우리나라를 품고 기도하여 하나님이 이루어주시지 않던가요? 작은것 하나부터 여호와가 줄로 재어준 구역, 산업이라는 고백을 할 때, 그 꿈을 이루어주시고, 비전을 이루어주시고, 더 크게 확장시켜 주십니다. 이 은혜를 받아 누리는 우리가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이렇게 고백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 약속이 있습니다. 8절,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신다…하나님을 항상 앞세운다는 것은 모든 것 주님 먼저라는 삶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여쭤보고 주님 뜻을 구한다는 것이잖아요? 소천하신 조용기 목사님의 간증을 보면, 강단에 올라갈때, 주님 오르시지요? 자리에 앉을 때, 주님 앉으시지요? 이렇게 먼저 고백하고 주님을 뒤따라 가는 마음으로 행동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주시는 첫번째 복은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주님이 항상 함께 하시는 복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니 그 사람은 3절 말씀처럼 존귀한 사람이지요. 아무리 귀한 것일지라도 알맹이 없는 껍데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겉으로 초래해보이고, 아무것도 아닌자일지라도 주님이 함께 하신 그 존재 하나로 우리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6:9절 이하에 보니까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자요, 죽은자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자로다, 두번째 복은 주님이 함께 하셔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겁니다. 최고의 복 아닙니까? 11절,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생명의 길의 반대는 10절, 스올입니다. 스올은 음부, 고통의 장소입니다. 이곳에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생명의 길 생명이란 요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주님이 생명이십니다. 주님 계신 곳으로 보여주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전하고, 기뻐하며 즐거움이 충만한것입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열릴 시온의 길, 생명의 길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벅차지 않습니까? 이런 은혜를 누리며 살기 원하시지요? 비결은 다른 것 아닙니다. 주님으로 충분하며 주님으로 만족하며 우리는 주의 것이며 우리 가진 모든것은 주님것이라는 주님주권을 고백하며 선포하면 됩니다. 이 믿음으로 주님이 주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