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초대교회시절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전도한 최권능목사님이 계셨습니다. 1910년대에 만주에 파송을 받아 선교사역을 감당하셨는데 12년동안 28개의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 사역을 감당한 일화를 보면 너무 배가고파 올챙이를 잡아먹기도 했고, 어떤 때는 소똥에 들어있는 콩알을 꺼내어 먹기도 하고 했는데, 이때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예수님 소똥에서 익을 콩이 나왔습니다. 이제는 힘이 났으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곳에 데려다 주십시오~ 그리고 1920년대에 만주에서 평양으로 돌아와 사역을 감당하시고, 신사참배를 앞장서서 반대하다가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다 당하게 됩니다. 심한 매질을 당할 때 당할 때마다 예수 천당, 예수 천당을 소리질렀다고 합니다. 형사가 왜 이렇게 시끄럽게 하느냐고 하니까 “내 몸에는 예수가 꽉 차 있어서 나를 때리면 내 몸에서 예수가 나옵니다 고 했다고 합니다. 내 몸에 예수가 꽉 차 있는 분, 이런 분은 모든 생각과 마음이 주님께 집중되어 있는 분입니다. 생각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목적도, 오직 주님밖에 없는 겁니다. 오늘 19편 마지막 절을 보십시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말씀처럼 말과 묵상이 주님께 다 상달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주님은 우리 안에 그래서 말과 묵상이 다 주님께 열납되는 주님과 하나되는 그런 인생이 진정 행복한 인생입니다. 이런 인생을 살려면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할까?
1.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하늘과 궁창, 날과 밤 그리고 해가 나옵니다. 이것은 우주전체의 자연세계의 모델일 수 있습니다. 이 피조물 자연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무엇을 알기에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까요? 해와 달과 별이, 피조물인 자연이 말을 할까요? 요즘 토요일 오전에 북면에 등산을 하고 오는데요. 가서 보면 공기도 다르고, 나뭇잎과 열매들이 자라는 것이 갈 때마다 다릅니다. 올해는 꽃이 필 때 서리가 내렸는지 으름이나 다래가 거의 열리지 않았고, 개복숭아도 몇 개 안달렸지만 그래도 몇 군데 자기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딸기도 있고 산뽕나무에 오디도 달려있더라고요. 누가 가꾸지도 않았는데도 자기들의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들이 말을 할까요? 2절말씀입니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여러분, 자연이 소리가 없는 것 같아요? 밤에 조용히 있으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어옵니다. 바람소리는 어떻고요? 산에는 소리가 없을까요? 시냇물흘러가는 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치는 소리 소리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큰 지구가 자전, 스스로 돌고…공전 태양주위를 돌잖아요? 이 돌아가는 소리가 상상외로 크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개미가 지나가는 소리, 날파리가 날아가는 소리, 꽃이 피고 지는 소리등 세미한 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에 이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면 온전한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특별히 귀를 어루만져주셔서 큰 소리는 듣지 못하게 하시고, 작은 소리도 듣지 못하게 어느정도의 한계를 정해주신것이 은혜중에 은혜입니다. 이 자연우주공간의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어떻게 선포할까요?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어떻게 나타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이 자신의 역할, 사명을 감당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겁니다. 해와 달, 낮과 밤이 하나님이 정한 일을하는겁니다. 이들이 기분이 나쁘다고 자신의 일에 태만, 게으름을 부리거나 화를 낸다면 어떤 사태가 생길까요? 태양이 조금 열을 내거나 지구 가까이 전진한다면 우린 다 타죽을 겁니다. 아니면 우리가 싫다고 조금 멀리 도망간다면 다 얼어죽을겁니다. 낮과 밤이 게을러서 일을 하지 않는다면 온세상이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자연이 일정하게, 규칙적으로, 변함없이, 한결같이 자기들의 일을 감당하므로 이 땅이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자연우주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맡은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겁니다. 더군다나 오늘 19편 말씀을 보니까 자기들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더라는 겁니다. 5절 말씀인데요. 해는 그 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같아서…이 말씀은 해를 의인화하여 피조물이 어떤 자세로 어떤 마음으로 일을 감당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해가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다=신혼의 신랑처럼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의 모습은 전쟁에서 승전보를 가지고 왕에게 보고하러 가는 전령자의 모습입니다. 이 기쁜소식을 가지고 기쁨에 겨워 한시라도 빨리 전해주려는 마음…6절 말씀은 어때요?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세밀하게 세세하게 자기 일을 대충 얼룽뚱땅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태양을 모델로 피조물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자기일을 감당하는지 보여줍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린다 하나님께 기쁨을 돌린다 어떻게 하면 주의 일을 많이 할까?가 아니라~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일을 충심으로 기쁨으로 감당하는 겁니다. 자연이 일정하게 변함없이 항상 그자리에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겁니다.
2. 자연과 달리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원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말씀의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7절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증거, 8절 여호와의 교훈, 여호와의 계명이 나오는데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피조물가운데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지은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특별하게 지은 사람에게 특별한 것을 더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무엇인가 알아야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말씀을 특별하게 여길 수 있지 않겠어요?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거룩한 것, 진주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거룩한 것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른다는 겁니다. 함부로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왜 소중히 여기지 못할까요? 그것의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말씀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7~8절말씀인데요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성경,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을 소성시키는 완전합니다. 우루사 선전 생각나십니까? 우루사를 먹어서 사람이 활력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활력있게 하고, 생기를 돋게 한다는 겁니다. 우리 영혼이 시들고 힘이 없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것은 영양제를 먹어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겁니다. 겔37장을 기억하십니까? 골짜기 지면에 마른뼈가 심히 많았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에스겔 선지자의 이 고백은 주님이 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에스겔은 여호와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마른뼈를 소성시킬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에 이런 대답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소성시키고,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일이키는 능력과 권세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7절을 더 보십시오.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여기에 나오는 지혜는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 하늘의 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배운 고학력보다도 더 지혜가 있다는 겁니다. 8절,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정직과 눈을 밝게 하신다는 말씀을 품으십시오. 세상은 남을 속이고 짓밟아야 이기고 승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의 마음눈이 밝아져 눈이 밝아집니다. 이것이 바로 명철과 총명입니다. 다윗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품은 사람…그래서 마음이 항상 기쁜것이었고, 이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이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이제 여기에 생명을 거는 겁니다. 소중히 여기는 겁니다. 더 사모하고 갈망하는 겁니다. 10절입니다.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것이며 꿀과 송이꿀모다 더 달도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다윗의 삶의 목적, 가치, 무엇을 추구하며 살았는가? 오직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갈망하며 말씀을 품으면 눈이 밝아집니다. 지혜의사람이 됩니다. 영혼이 소생하여 인생이 기쁘고 활력이 넘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사모하며 갈망하는 것 인생의 목표를 여기에 두는 것…하나님이 주신 특별계시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갈망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모습입니다.
3. 말씀의 귀중성을 아는 사람은 크게 2가지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삽니다. 1)다윗의 첫번째 기도문 : 13절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이 기도는 말씀에 고의로 죄를 짓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것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죄에 끌려다니는 비참한 인생들을 너무도 많이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의 사람이 타락하여 죄에 끌려다니는 비참함, 그리고 하나님의 가슴아픈 모습이 보여지기에 죄에 예민해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2)두번째 기도문 :14절,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우리의 기도가 주님께 상달되기를 원하는 다윗의 간절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답을 알잖아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몸부림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면 하나님이 흡족해하시고 우리이 생각보다 더 좋은 응답을 주실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다윗을 품어주신 하나님이 다윗처럼 말씀을 금보다더 더 사모하고 송이꿀모다 더 달다고 여기는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의 묵상과 기도를 들으시고 갑절의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