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사람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할 것,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오늘 시24편의 말씀이 그리스도인이 기도해야할 것, 그리고 품어야할 비전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우리가 품고 있는 것이 주님 뜻에 맞으면,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말씀, 5절인데요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1.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 말씀에 대한 열정을 품어야 합니다. 24편의 배경은 다윗의 시인데 이 때의 배경이 삼하6장과 대상15장으로 오벧에돔집에 머물러 있었던 법궤를 다윗성, 시온성, 예루살렘 성으로 옮길때의 모습입니다. 법궤는 하나님임재의 상징이며, 법궤안에는 십계명이 기록되어있는 돌판이 들어있어서 말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 법궤를 엘리시대, 하나님의 말씀, 이상을 잃어버렸던 시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빼앗기고 빼앗겼다는 소식에 엘리가 의자에서 떨어져 죽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인줄 알았는데 이 법궤가 가는 곳마다 블레셋에 재앙을 내려 결국 벧세메스암소가 끄는 수레에 실려 이스라엘 돌아와있다가 다윗이 왕이되어서야 법궤가 있어야할 원래의 자리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법궤를 옮길 때 다윗의 마음과 자세를 보여주는데요. 삼하6: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때에 다윗이 베에봇을 입었더라. 이때의 기쁨을 찬양으로 춤으로 영광돌린 다윗을 보고 아내인 미갈이 천박하다고 비아냥되었다가 다윗의 사랑을 잃어버리고 말았지요. 다윗의 마음은 어때요? 여호와의 궤, 법궤, 말씀을 원래의 자리로 옮기는데 이렇게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때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별명을 지어줍니다. 오늘 말씀 3절에 여호와의 산, 그의 거룩한 곳…이곳은 한마디로 성전을 말합니다. 성전엔 반드시 있어야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여호와의 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거룩한 산 시온산 예루살렘성에 반드시 있어야할 언약궤가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왕이 되자 말자 가장 최우선, 첫번째 과제로 언약궤, 말씀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상징인 언약궤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인생이 바뀐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엘리와 그 아들 흡니 비느하스…그 가문이 멸망을 당합니다. 언약궤를 강탈해간 블레셋은 재앙으로 결국 두손들고 언약궤를 되돌려보냅니다. 사울왕은 언약궤를 소중하게 여기지도, 찾지도않아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합니다. 웃사는 언약궤를 옮길 때, 자기방법대로 옮기다가 죽습니다. 다윗은 어때요? 오늘 말씀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대로, 온 맘을 다하여 모십니다. 품습니다. 우리에게도 언약궤 곧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그냥 책으로 방치한다면 사울과 다를바가 없잖아요? 미신 부적처럼 여긴다면 흡니와 비느하스와 다를바 없어요. 다윗처럼 하나님을 대하듯 그리고 한 말씀 한 말씀 품기위한 거룩한 몸부림 사모함이 필요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거룩한 성전이 되는 겁니다.
2. 말씀에 이끌리는 삶, 삶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손은 외적인 우리 행동의 순결성을, 마음은 내적인 정결성, 곧 몸과 마음, 전인격이 깨끗 순결해야 합니다. 목적도 선하고, 의도도 선하고, 과정도 선해야 합니다. 고위공직자들 청문회할때보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적나라하게 다드러나지 않던가요? 부동산 투기문제, 자녀 문제, 군대 문제등등….우리는 세상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자의 대표선수로 드러나는 겁니다. 세상사람들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중계방송하듯 드러나는겁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품었느냐 그렇다면 손이 깨끗해야하고, 마음이 청결해야한다 곧 말씀대로 살아야한다. 자기들은 막 살면서 우리는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겁니다. 세상은 그러려니 하지만 교회는 그러면 안된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항상 부끄러운 겁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것같아서 늘 죄스럽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실체 아닙니까? 그래서 6절 말씀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여호와는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그래서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필요합니다. 야곱의 하나님 알잖아요? 야곱의 대명사 자기 이름처럼 움켜쥐는 자잖아요. 실수하고 넘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하면서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얍복강에서 복을 주시지 않으면 하면서 몸부림치고, 딸 디나의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고 다시 하나님을 찾는 모습…넘어지고 자빠지고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찾는 거룩한 몸부림을 하나님은 외면하시지 않으시고 복을 주시더라는 겁니다. 우리 역시 말씀을 품고 거룩한 삶을 살려고 몸부림치지만 또 넘어지고 자빠지는 우리입니다. 그럼에도 또 주님을 구하고 주님이 필요합니다. 하면서 거룩한 몸부림의 삶을 살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보다 더 넘치도록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3. 주님을 모시는 것을 넘어 주님을 선포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모실때 선포하는 말씀을 보십시오. 7절과 9절에서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문을 열어라. 성전에 큰 문이 닫혀져 있으면 왕이 들어갈 수 없잖아요? 왕이 머리를 숙이고 들어갈 수도 없지요. 법궤 언약궤가 들어가는데 작은 문으로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예루살렘성전으로 언약궤가 들어갈 때, 문을 활짝 열어라,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믿는 자가 늘 품어야할 마음입니다. 마음문을 활짝 열어야되요. 영광의 왕,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계3:20절 말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주시는 말씀이지만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특히 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교회는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교회였습니다. 신앙의 열정은 그만두고라도 더 심각한 문제는 주님을 문밖에 세워두었다는 겁니다. 문밖에 서 있는 주님의 모습이 나온 성화를 보면 문에 문고리가 없습니다. 안에서 문을 열어야 주님이 들어오신다는거지요. 노래중의 노래라고 하는 아가서에도 술람미여인이 솔로몬왕을 바깥에 세워두고 이슬을 맞힌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돌아간 왕을 찾아헤메는 안타까운 모습이 있는데, 우리는 어떤가요? 마음을 열고 영광의 왕 주님을 모시고 교제하고 섬기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러면, 23편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원수앞에서 큰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머리에 부으시고 잔이 넘치는 인생…24편에서는 5절,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의를 받는 복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모시고 고백하고 섬기는 영광의 왕은 누구신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8절,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그 분은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까지 언약궤가 가는 곳에 승리가 있었습니다. 언약궤를 흡니와 비느하스처럼 믿음없이 가져가면 실패하지만, 믿음으로 언약궤가 나가면 모든 대적들은 무너졌습니다. 심지어 언약궤가 지나가면 홍해도 갈라지도 요단강도 갈라지고, 여리고성도 무너졌습니다. 더군다나 영광의 왕이 누구십니까? 1절,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절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강 바다는 혼돈을 상징합니다. 혼돈속에서 이 세계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이 세계 모든것의 주인 창조주이신 주님이시다. 다 여호와의 것이다. 영광의 왕을 모시고 섬기는 사람이 품어야할 가장 기본적인 믿음은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나의 모든 것 주의 것입니다. 이것을 고백한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짓는다고 할 때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 내놓았고, 모세시대 성막을 지을 때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진귀한 보석들을 다 내놓았으며 이 마음으로 지은 성막과 성전이 완공되었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해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내 몸 내것이 아닙니다 주님 것입니다. 건강도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재능도 내것이 아닙니다. 지식도, 내것이 아닙니다. 주님 절대주권의 믿음을 선포하면, 주님의 거룩한 임재, 곧 성령의 기름부음이 내 잔이 넘친다고 하듯 넘칩니다. 이것을 거룩한 성령의 임재, 성령충만이라고합니다. 이때 주님과 참된 교제가 이루어지고, 주님 뜻이 이루어지며, 참된 예배가 되어 감동과 감격이 넘치게됩니다. 다윗이 법궤를 옮길 때 왜 그렇게 춤을 추며 찬양하며 감격해했는지 다윗과 같은 마음이 됩니다. 우리의 예배속에 이런 놀라운 은혜가 날마다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우리 각자 각자가 거룩한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하루를 마칠 때, 주님과 영적 교제를 나누면서 주님을 믿는 감격이 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