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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38:1~22 고난 앞에서
    구약 강해/시가서 2022. 12. 26. 17:43


    시38:1~22 육체적인 질병, 지인들의 외면, 원수들의 공격인 3중고의 고난 앞에서

    얼마전 다니엘 기도회에 한정원교사의 간증이 있었습니다. 용인기흥고등학교 체육교사인데 철인3종 경기를 출전할 정도로 모든 운동을 가리지 않고 건강하신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교사연수를 가던 길에 중앙선을 침범해온 버스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해서 왼쪽 다리뼈가 산산조각나고 치료중 패혈증으로 결국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달게 되신 분입니다. 재활 후 장애인 체육대회에 여러종목에서 메달을 따고 지금은 골프선수로 교사로 바쁘게 살고 계신분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회복되고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탄식과 고통과 절망의 밤을 지냈겠어요? 잘라진 다리를 보면서 밤마다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하루에 0.1mm씩 자라게 해주세요…그러다 보면 어느 날 같아지지 않겠느냐고…그러나 이 간절한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고 그후에 재활하면서 여러 운동을 도전했는데, 이렇게 간증을 하시더라고요. 도전하는 것은 아름답고, 장애가 고난이 복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이 가능할까요? 오늘 38편의 다윗의 시를 보십시오. 3절 후반절에 내 뼈가 상한 곳이 없고, 5절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는 육체적 질병 속에 있습니다. 이런 육체적인 질병, 친구 가족들이 다 외면하여 관계가 끊어진 아픔, 원수들의 공격…사람이 당할 모든 고통을 다 당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눈물마저 부르짖음마저 다 말라버린 모습입니다. 이럴 때 이 질병과 고통과 압제로 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있을까요? 뭐 부터 해야할까요? 오늘 다윗이 이 절망의 밤을 헤쳐나오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는 귀한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다윗이 당한 고통:육체적인 질병입니다.
    3절,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다=현대인이성경엔 내 몸이 병들었다, 내 뼈에 평안함이 없다=내 뼈가 상하지 않은 곳이 없다, 성한 곳이 없다…온 몸이 아픈것입니다. 발가락 하나만 아파고, 허리 요추 3번 디스크만 터져도 허리하나도 펴지 못하는 상황인데 온 몸, 온 뼈 마디가 흔들리고 아프다. 4절 머리가 무거운 짐같은 것이 누르는 것처럼 아프고, 5절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온다=썩어 냄새가 나는 모습, 문둥병자의 모습같고, 6절 아프고 심히 구브러졌고, 7절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열병처럼 후끈거리고, 8절 피곤하고 심히 상하여=무기력하며 지쳤다, 나오는 말은 신음밖에 없다! 심한 중병으로 생명의 기운이 다 끝나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거의죽음 직전까지 왔습니다.

    2. 두번째 당한 고통:정서적 고통, 관계적 고통입니다.
    11절에 내가 사랑하는 자와 내 친구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내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죽을 것 같은 육체의 통증도 버거운데 그를 절망하게 하는 또 다른 고통의 상황은 병으로 인해 자신을 멀리하는, 가족·친구·친지들과의 분리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 정서적 고통, 관계적고통”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의지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어야 할 그들이 오히려 자신을 이방인처럼 취급하며 멀리하는 상황 속에서, 어쩌면 질병보다 더 큰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3. 세번째 고통 : 원수들의 무자비한 공격입니다.
    12절과 19절의 말씀입니다.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오나,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세력이 막강하고) 부당하게(이유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많으며…나를 미워하는 원수들은 생생하고 활발하고 강한데, 다윗 자신은 무기력하고 힘을 잃으며 신음하며 죽어가는 꺼져가는 등불같습니다. 이런 고통이 엎친데 덮친격으로 계속 연이어 다가왔습니다. 다윗의 고백 21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버린 것 같다고 합니다. 이런 고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습니다. 가까이에는 이태원 1029참사처럼 예고없이 갑자기 임하고, 한정원선생님처럼 순식간에 절망의 늪으로 빠지기고 하고, 어떤 이는 청천벽력처럼 암진단을 받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런 일들이 주변에 비일비재합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할까?

    다윗이 고난앞에서 고난을 헤쳐나가는 방법 3가지를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1. 인생사 질병 관계 원수들의 공격등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왔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해결방법이 나오는 것입니다. 1절부터 주의 노하심, 주의 분노하심, 주의 화살, 주의 손, 주의 진노…주님이 주신것이다! 신28:58절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온갖 질병을 달라붙게 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정의을 무시한 채 순간적인 몸의 쾌락, 욕심, 탐욕을 좇아간 결과…즉 죄의 결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모든 것이 죄의 결과입니까? 물론 질병 고난 어려움이 아담의 범죄이후 들어온 것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죄의 결과라고 하지 않습니다. 욥이 죄의 결과 그렇게 심한 악창과 어려움을 겪었습니까? 욥의 경우 하나님의 징계라기보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지경을 넓혀주시는 것과 갑절의 복이 임하는 하나의 연단의 과정이었지요. 어떤 모습이든 하나님의 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해결방법의 첫번째는 하나님과의 관계개선이 첫번째인 것입니다. 2절,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님이 나를 누르고 계신다 그러면 주의 손을 거두는 비결이 있지요. 3절, 나의 죄로 말미암아=나의 죄 때문에, 4절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하나님을 진노케 한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시인하고, 나의 죄 때문임을 고백 회개 자복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어려움을 당하면 남의 탓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병을 귀신에게 떠넘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악한 영이 질병을 가져온 것도 있지만, 내가 잘못해서, 내 죄로 인해서 온 병도 있다. 하나님께 먼저 자신의죄를 시인하고 내 탓임을 고백할 때, 그때부터 주님의 누르는 징계의 손, 분노의 손이 복의 손, 평안의 손으로 전환되는 겁니다.

    2. 이미 죄를 범한 것은 이제 회개하지만, 죄의 결과를 바라 보면서 죄에 대해서 민감, 예민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죄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평안을 잃어버리고, 건강을 잃어버리고, 탄식이 끊어지지 않는 고통이잖아요. 죄를 달콤한 맛에 비유합니다. 달콤해서 한번 맛보면 놓치 않는다는 거예요. 이 죄라는 나쁜 놈은 이처럼 맛도 있고 스릴도 있고 재미도 있어서 한번 맛들이면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처음 내 뻗는 손, 한번 어때 하면서 마음을 여는 순간, 대적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켜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현혹 미혹하는 것을 분별해서 끌려가지 말아야겠다! 오래전에 동남아에 큰 쓰나미가 와서 많은 사람이 한 순간에 휩쓸려간적이 있었습니다. 쓰나미가 오기 전 들짐승들은 산꼭대기로 올라갔고, 해안바닥에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퍼덕거리며 몰려왔답니다. 이때 해안가에 피서를 즐기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바다로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을 때, 산더미같은 쓰나미가 몰려왔다는 겁니다. 이처럼 죄는 우리 마음을 충동하듯 달콤하고 보기좋게 다가온다는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 죄를 지을때도 이런거였잖아요?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해서…손을 뻗어 움켜쥔것입니다. 죄는 이런겁니다.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덥석 잡는 겁니다. 마음을 여는 겁니다. 그래서, 죄의 결과 오늘 말씀처럼 너무 비참하잖아요! 죄에 대해서 예민하고 민감해야합니다. 어떻게 하면 민감할 수 있나? 방법이 없습니다. 말씀으로 무장하면 죄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고, 사단의 방법이 보여서 쉽게 넘어가지 않게 됩니다. 죄가 기회를 타고 다가올 때 말씀의 감각이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3. 주변사람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말고, 오직 주님께 집중하는 것이 해법입니다.
    어떤 한 구절을 보면 신구약이 다 연결되는 것이 성경의 오묘함입니다. 15절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내가 주를 신뢰하오니, 주를 기다립니다의 의미입니다. 15절 전후의 상황이 다윗이 처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비쭉거리며 모함하며 비웃습니다. 여기에 귀를 기울이면 더 무섭고 더 비참한거잖아요? 13절 나는 못듣는 자같이, 청각장애인처럼 안듣는 겁니다. 입을 열어 대꾸하지도 항변하지도 변명하지도 않습니다. 이 모습이 상대방에게는 침묵으로 대하는 겁니다. 여기에 변호하면 백배로 공격을 당할겁니다. 하나님믿는다면서 하면서 하나님 영광을 가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들에게 침묵으로 일관하고, 그 대신 온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4장 8절 이하에,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보이지 않는 영원한 곳, 하늘을 바라봤다고 합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이는 세계는 온통 절망이요, 원수들의 공격밖에 없는데 그것들에 대항하지 않고, 주를 바라보는 겁니다. 시38:21절,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22절,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도와주실 이, 구원해주실 이 주님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만 필요합니다. 주님으로 충분합니다. 이런 고백을 우리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주님이 누르시면서 다윗을 고통가운데 있게 한 주의 뜻은 이제 나에게 집중하고 나만 바라보거라. 내 안에 모든 것이 있느니라. 동일하게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하십니다. 주님이 구원하시며 주님이 치유하십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에게 자유와 평안과 치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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