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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가복음강해(3) 막1:9~15 너를 기뻐하노라
    신약 강해/4복음서 2023. 1. 15. 15:08


    마가복음강해(3) 막1:9~15 너를 기뻐하노라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1위라고 하는데 1년에 13700명 정도, 하루에 37명, 40분에 1명씩 자살한다고 합니다. 너무 안타까운 통계입니다. 자살하는 연예인들의 경우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화려한 삶을 살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어느 순간 인기가 떨어지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경우 박탈감과 상실감 때문에 너무도 쉽게 생을 포기한다고 합니다. 다른 이유들은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꿈, 끝없는 고난으로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한다고들 합니다. 마가복음 1장에서 우리는 세례요한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세례요한이 사역하는 광야 요단강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몰려옵니다. 회개하고 죄사함의 세례를 받으라고 외치면서 세례를 베풉니다. 요한을 하나님이 보낸 이, 또는 선지자로 바라보면서 따릅니다. 이런 세례요한이 하나님이 보내신 이 예수님의 등장으로 모든 관심이 예수님께 집중되고 자신은 쓸쓸이 퇴장해야될 상황이 되었습니다. 세상눈으로 보면 예수님만 없으면 내가 최고인데, 내 모든 인기를 한순간에 빼앗아가버린 예수님이 야속할텐데, 세례요한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요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예수님의 등장 오늘 살펴볼텐데요. 하나님의 아들로 화려하게 등극해야하는 때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광야로 내쫓김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두분에게서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나의 인기를 순식간에 빼앗아가십니까? 왜 광야에 가서 금식하며 고생을 해야합니까? 하면서 항변, 하소연 하는 부분이 없어요. 연예인들처럼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가 어느순간 추락하면 그 감당을 못하는데 요한과 예수님은 어떻게 이런 것들을 잘 견디고 이기셨을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현주소, 자신의 정체성, 사명을 깨닫는 귀한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의 세례는 하나님아들이라는 왕관을 쓴 대관식입니다.
    다시 말하면 왕관을 쓴 즉위식을 하려면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세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라는 말은 담그다 멸망시키다의 의미이며, 오늘날 우리는 씻는다고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세례와 함께 쓰는 말이 죄사함입니다. 그래서 세례라는 의식을 할 때 반드시 죄를 고백하게 하고 그 다음 죽는다 씻는다의 의미로 물에 담그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1절, 하나님의 아들...하나님의 아들은 죄가 없으십니다. 죄인이 세례를 받기 때문에 예수님은 세례를 받아야할 이유가 없으십니다. 그런데 9절,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세례를 받으실 이유가 없으신 분이 세례를 받으셨다, 무슨 의미인가?왜 ? 세례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그 죄를 해결해주실 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선언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이땅에 오실 때, 사53장4절 이하에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특히 사53:6절,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우리 주 예수님이 우리의 질고, 허물, 죄악을 담당, 짊어지셨다고하잖아요. 사53장에 예언된 메시야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해결해주실 분, 대속해주실 분이시다는 것을 세례를 통하여 미리 암시해주고 계십니다. 아, 우리 주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기 때문에 받으신 세례시구나! 이렇게 죄인으로 한없이 낮아지니까 그때 물에서 올라오실새 놀라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막1:10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 하나님의 음성,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 말씀은 시2편 7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이 시편 2편을 메시야 대관식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이 사건이 바로 메시야 대관식, 왕 즉위식이라는 것을 하나님아버지께서 친히 인쳐주신 것이며, 이 인침의 확증으로 성령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특히 하늘이 갈라졌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성전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갈라짐, 찢어짐과 같은 의미로, 이제 하늘과 땅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성전 지성소를 가로 막았던 휘장이 찢어짐으로 안과 밖의 구별 의미가 사라짐처럼 하늘과 땅의 구별이 사라져서 여기가 하늘나라가 된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에게 이 사건이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도 성령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하는데 응답을 사모하는데 그 비결은 예수님처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놓고 기도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것을 도고기도라고 하지요. 또 우리 죄사함 회개의 세례를 받는 것은 회개하는 것, 죄를 품지 않는 것입니다. 또하나 예수님의 세례가 한없이 낮아짐인데 우리 역시 겸손을 넘어 더 낮아짐으로 나아갈 때 우리가 거하는 그곳이 성전이 되며, 하늘나라가 되며,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2. 성령의 이끌림에 순종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승리의 비결은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1:12절은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여기에 몰아냈다, 쫓아냈다는 이 이미지는 아담이 범죄한 후, 계속해서 에덴동산에서 살았습니까? 창3:24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아담의 이미지입니다. 아담은 시험에 실패했지만, 제2의 아담인 예수님은 이 시험에서 어떻게 했을까? 광야에서 40일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들짐승과 함께 했다고 나옵니다. 예수님이 들짐승과 함께 했다는 이 이미지는 이스라엘의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나간 아사셀 염소같은 의미입니다. 레위기16장에 대속죄일 희생제사를 위하여 염소2마리를 제단옆으로 끌고 옵니다. 대제사장은 제비를 뽑아 하나는 여호와를 위하여, 또하나는 아사셀을 위하여 여기에서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성전에 제물이 되고, 아사셀을 위한 염소에게는 대제사장이 머리에 두손을 얹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낱낱이 고백한다음 황량한 유대광야로 보내어 죽게 합니다 결국 낭떠리지에 떨어져 죽거나, 사나운 들짐승에 찢기어 죽는것이지요.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들짐승과 보낸 이 사건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아사셀 양의 이미지와 너무도 유사합니다. 또 하나,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사건은 우리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직접 체휼하신 분이시며, 우리가 받아야할 시험도 다 거치신 분이시기에 우리를 너무도 잘 아신다. 또한 우리주님이 마귀의 시험을 말씀을 통하여 넉넉히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 역시 주 안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음을 모델로 보여주신것이다. 아멘! 이 모든 승리의 비결, 원동력은 성령님이십니다. 광야로 몰아내신 분, 성령님이시고, 광야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 역시 성령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성령 받으신 사건은 다른 복음서와 조금 다릅니다. 1:10절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내려왔다는 이 단어는 자기안으로 들어왔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은 “그 위에” 예수님의 머리위에 성령이 임하였는데, 마가복음은 다른 전치사를 사용합니다. 에이스, 안으로, 예수 안으로 내려오셨다. 곧 성령님께서 예수를 취하신 것으로 묘사합니다. 안에 계신 성령님이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신 것이지요. 위에 있는 성령님과 안에 있는 성령님의 이미지가 다릅니다. 구약엔 보통 위에 임한 모습으로 표현하지만, 신약엔 성령을 내주, 안에 모시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사용되어지는 말이 성령내주, 성령충만, 내 안에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성령님이 예수님 안에 계신다는 이 표현은, 예수님의 사역이 곧 성령의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승리의 비결 역시 성령님의 도우심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의 사역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1)예수님처럼 성령충만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도 그 다음 광야의 고난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가끔 성령사역하시는 분들이 어려움을 만나면 기도가 부족해서, 또는 사역을 잘못해서 등 여러방면으로 이유를 찾으려고 할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광야시험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연단, 훈련시키시는 부분이 있고, 다른 큰 사역을 시작할 때 준비과정으로 광야를 거치게 하시기도 하는구나 하면서 광야학교에 있는 분들이 주변에 있거든 또는 우리 자신이 광야의 훈련 같은 속에 있거든 더 주님께 집중하고 더 성령님께 예민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광야에서 이기는 비결입니다.
    2)여기가 하늘나라같아도 어떤때는 광야같고, 어떤때는 하늘같은 때가 누구나 다 있습니다. 예수님의 광야생활 보십시오, 13절, 들짐승이 옆에 있을 때도 있고, 천사들이 수종들 때도 있습니다. 늘 천사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들짐승이 위협할 때도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승리하셨고, 다니엘도 사자굴에 들어간 적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넉넉히 이긴것처럼 성령님의 이끌림에 순종만 하면 우리 역시 넉넉히 이길 수 있다!

    3.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실 때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 11절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여기에서 기뻐한다는 이 동사는 과거 현재 미래를 다 포괄한다는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흡족해하시며 기뻐하실 때가 언제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니까 예수님자체를 기뻐하세요.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일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요한에게 낮아진 몸으로 세례받을 때 예수님 기뻐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셨지요. 성령이 광야로 몰아내는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순종하는 모습, 성령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시며 기뻐하시지요. 사탄과 들짐승이 계속 힘들게 해도 이들에게 넘어지지 않고 승리하는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시지요. 그리고 15절 복음 자체이신 주님이 복음을 외칠 때, 복음...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는 이 모습을 보시고 한없이 기뻐하십니다. 여기에서 기쁨은 창1:31 심히 좋다. 매우 좋다는 이미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히 매우 좋아하시는 것, 우리 역시 그 일을 할 때 똑같이 기뻐하십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 말씀은 예수님시대 2천년전 초림 예수님의 오심, 하나님아들 메시야 그리스도 오심을 이야기하지만, 오늘날 이 말씀은 주님 다시 오실 재림의 때가 다 찼다 이제 곧 터지기 직전이다. 그러므로 마가복음 시대처럼 동일하게 지금도 시급한 것입니다. 언제 주님 오실 지, 곧 오신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깨어서 기도하며 복음을 믿고 복음안에 있을 때...주님이 기뻐하시며,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우리를 더 강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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