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박중훈씨가 주연한 할렐루야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전과자 양아치 건달 소매치기인 박중훈씨가 교통사고 난 목사님을 병원으로 옮기다가 그 목사님의 지갑을 슬척해서 보니 ‘종이만 가져오면 1억을 준다’는 편지를 보고 그 교회로 가서 그 목사님인 척 위장해서 교회 일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 설교도 하고, 장로님 아들을 훈계하는데 구타해서 정신차리게 하는 등 목사 흉내내는 영화인데, 이 모습을 보면서 어찌보면 목사 연기 참 잘한다, 진짜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며칠전 인터넷뉴스를 보니까 진품명품 프로그램 역사상 최고감정가인 25억짜리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국보급 수준의 훌륭한 청자로 감정을 했는데, 이것을 간직했던 분은 이런 명품인 줄도 모르고 보관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 보면 진품명품을 잘 모릅니다. 제자를 부르신 예수님께서 메시야 그리스도로서 공식적인 첫 등장의 모습을 오늘 봅니다. 안식일 가버나움에 있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시고 그 안에 더러운 귀신을 내 쫓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권위 있는 새 교훈이라고 놀라며 감탄하며 소문을 내고 있습니다. 오늘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놀라운 일을 통하여 성경적 축사에 대한 바른 진리가 세워지는 귀한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성경에 귀신이 있다! 고 합니다. 4복음서에 예수님께서 메시야 그리스도임을 보여주는 일 가운데 하나가 귀신축사, 축귀, 축출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처럼 가버나움 회당에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죠, 막5장에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무덤 사이에 거처하면서 고랑과 쇠사슬을 끊는 힘 있는 군대귀신을 쫓아내신 사건등을 통하여 귀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바울은 엡2:2절에 공중권세 잡은 자,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 귀신의 영, 악한 영의 존재를 이야기했고, 사탄 마귀를 리워야단 뱀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사도도 마귀를 대적하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시대나 사도들 시대나 오늘 우리시대나 이런 악한 영 마귀 사탄의 존재가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것을 인정해야지 사탄마귀 악한 영 귀신이 없다고 하는 것이 어쩌면 사탄의 가장 큰 미혹, 작전인지 모릅니다. 없다고 하면 그들은 마음대로 활동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적이 없다고 생각하면 문 단속을 신경써서 관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강도와 도적이 있다고 생각하면 단속을 철저히 하겠지요. 영적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악한 영, 귀신의 존재가 있고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처럼, 우리도 귀신의 존재를 알고 경각심을 가져야 하며, 귀신에 미혹당하지 않게 늘 깨어 대비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귀신도 종류가 있습니다. 막5장에 군대귀신, 고랑과 쇠사슬로 묶어둬도 어디에서 그렇게 강한 힘이 나오는지 다 끊고 깨뜨립니다. 강한 힘이 있는 귀신, 그러면서 소리지르고 돌로 자신의 몸을 해치고 있습니다. 막9장에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다. 불과 물을 보면 뛰어들게 하는 귀신이라는 것이지요. 눅13장에는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나옵니다. 신체를 활동 못하도록 붙잡는 귀신도 있네요. 너무 귀신귀신하니까 머리 아프지만, 귀신이라는 존재가 있고, 성경에서 귀신을 이야기할 때 무서운 귀신이라는 표현이 한군데도 없습니다. 대부분 더러운 귀신이라고 하지요. 이것들이 사람을 붙잡고 끌고 다니며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이 귀신들린 사람들 마음이 어때요? 몸이 어때요? 불편하고, 힘들고, 어찌할 바 몰라 답답하고 괴롭지요. 한마디로 평안이 없고, 안식이 없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사탄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오늘 가버나움의 회당에 귀신들린 사람은 어떤 귀신이 들렸을까요? 유대인들의 회당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집회하고, 기도하는 곳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같은 이미지이지요. 그런데 여기에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 사람은 그동안 쭉 회당에 출입한 것 같습니다. 귀신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다고 했으니 아무도 알지 못한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귀신이 정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귀신이 드러날 때 보십시오. 23절,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소리를 지르면서 집회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고레고레 소리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조용히 예배드리는 가운데 갑자기 이런 사람이 소리를 지르면 예배위원 몇 명이 와서 데리고 가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축사하는 곳에 가면 목사 장로 권사 안에도 귀신이 있어 소리지르고 나가는 그런 집회를 경험해 본 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회당에도, 교회 안에도 귀신이라는 존재가 틈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며, 또하나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은, 귀신이 가져온 병도 있지만, 모든 병을 귀신으로 돌려서도 안된다는 구별이 필요합니다.
2. 귀신이 드러난 모습을 보면서 귀신이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귀신이 언제 드러났는가? 21절, 가르치시매, 이 가르침이 당시대 서기관 율법사 바리새인과 다르게 권위 있게 가르칠 때, 악한 영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 귀신이 가장 듣기 싫어하고 견디지 못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 선포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에는 무엇을 설교하셨는지 나오지 않지만,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복음, 어떤 복음요? 1:14절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신 것이지요.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예수그리스도 복음을 외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전하여지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에는 귀신이 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지요. 복음전파는 한 마디로 치열한 영적전쟁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25절 예수님께서 꾸짖잖아요.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령하시잖아요. 귀신의 반응보십시오. 26절,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더라. 여기에 경련을 일으킨다=스파랏소, 이리저리 당기고 찢기는 겁니다.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그런 이미지입니다. 하나님나라와 세상나라 사이에 힘대결처럼 느껴지지요. 그러나 예수님 앞에 힘을 쓰지 못하고 나오면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귀신이 떠나간 그 사람에게는 이제 하나님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이 선포되고,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자 마자 곧 가버나움 회당에서 복음, 하나님나라가 임하였다고 선포하고 그 하나님나라가 임한 현장이 바로 귀신이 떠난 사건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처럼 현재 임하는 것입니다. 먼 미래 우리가 죽어서 갈 하나님나라의 개념도 있지만, 우리 주님이 보여주신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 빛을 받아들이는 자, 그 사람에게는 이미 하나님나라가 현재 임하였다고 확증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당당하게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예수님의 설교는 권위 있는 새 교훈이었다. 우리 입에도 이런 권위가 있어야되지 않겠습니까? 안식일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귀신만 반응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반응했습니다. 22절,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여기에서 놀라니=놀라서 충격을 받고 경악하는 모습이요 넋을 잃은 모습입니다. 왜 이렇게 놀랐습니까? 그들이 비교하고 있습니다. 22절 후반절에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다! 서기관들은 어떻게 가르쳤을까요? 예수님께서 마23장에 7가지 화를 내신 적이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 화 있을진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당시대 서기관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알겠지요? 자기는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율법을 지키라고 짐을 계속 얹어주는 겁니다. 설교를 들을때마다 더 마음이 무거워지고 반발심리만 커져서 안식일 안식은 커녕 불만만 커지는 겁니다. 이런 설교만 듣다가 갈릴리 나사렛의 젊은 청년이 강단에 서서 외치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눅4장에서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그랬더니 가슴에 감동의 충격이 밀려들어오는 겁니다. 악한 영은 이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어서 소리치고 방해합니다. 귀신에 눌렸던 자가 이 말씀처럼 자유롭게 되고, 평안이 임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외치는 겁니다. 27절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권위와 권력은 다릅니다. 권력은 힘으로 복종하게 하지만, 권위는 자발적으로 순종하게 합니다. 권위는 감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권위는 말에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악한 더러운 귀신이 떠난겁니다. 이 권위는 어떻게 주어집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세례받으실 때,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심, 가슴 속에 임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시험에 승리하셨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은 권위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 가시는 곳마다 악한 영이 떠나고, 제자들을 지명하여 부르실 때 그들이 순종한 것입니다. 이런 복음성가를 아십니까? 예수님 권세 예수님권세 예수님 권세 내 권세, 누구에게 이렇게 예수님의 권위, 능력이 임합니까? 예수님을 그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이제는 사탄, 세상의 가치관을 내어버리고, 하나님 가치관으로 말씀과 성령이 이끄시는대로 순종할 때 그대로 임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이 예수이름으로 선포할 때, 귀신이 떠나가고, 질병이 치유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더러운 귀신이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에게 더러운 귀신은 슥13:2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여기에 거짓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해석, 가르침등입니다. 우리나라와 세계에 이단들이 얼마나 횡행한지요? 이런 사상이 우리를 좀 먹고 있습니다. 이런 것 역시 거짓의 영 이라는 것을 깨닫고 경각심을 가지고 복음, 말씀에 더 집중하여 하나님이 주신 평강을 안식을 늘 누리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