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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가복음강해(9) 막2:13~17 세리 레위(마태)를 부르시는 예수님
    신약 강해/4복음서 2023. 3. 22. 15:04


    마가복음강해(9) 막2:13~17 세리 레위(마태)를 부르시는 예수님, 예수님이 오신 목적

    요즘 학폭 학교폭력, 왕따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며칠전 제주도에서 14명이 한 명의 여학생에게 집단 폭행을 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요. 학생들 사이에 이런 일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 왕따를 당하는 쪽과 사이좋게 지내면 같이 왕따를 당해서 가까이 할 수도 없는 그런 환경이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이 유대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세리에게 예수님이 다가가 제자로 부르시고 더군다나 세리의 집에 세리의 친구들과 같이 식탁교제를 하는 파격적인 행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찌보면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는 자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약자인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향하여 사랑의 손을 뻗어야 하는 위치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귀한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는 예수님
    14절,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실때도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그들을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지나가시다...목적을 가지고 정면을 향하여 나아가시는 모습입니다. 오늘은 누구를 향하여 나아가셨다고요?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 레위입니다. 세관에 앉아 있는 세리는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사람입니다. 세리는 죄인의 대표로 부정한 자라고 낙인을 찍었습니다. 로마의 앞잡이로서 로마인 이방인과 접촉하므로 부정하다고 해서 회당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또한 칼을 들지 않은 강도라고 했습니다. 세리는 로마로부터 세금징수의 권한을 위임받았는데 일정량만 로마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자신의 재산으로 챙길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면서 자신의 이득을 챙겨 백성들로부터 강도 살인자 매국노로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옛날 일본의 앞잡이 친일파처럼 말입니다. 이런 부정한 매국노 세리가 누구입니까? 2:14 알패오의 아들 레위, 마9:9절에는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입니다. 마태는 헬라어로 하나님의 선물이라, 아마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시고 새롭게 부여한 이름같습니다. 레위하면 구약의 레위지파가 생각나지 않습니까? 아론과 모세가 속한 지파, 제사장 지파입니다. 왜 레위라고 이름을 지어줬을까요? 오늘날 요한, 바울, 사무엘, 또는 우리애들 다영, 하영, 또는 은혜, 찬양, 이런 이름들은 하나님을 믿는 부모가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성경적 이름을 지어준것이지요. 레위라는 이름 야곱의 셋째아들로 연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레위지파라는 하나님께 헌신되어진 제사장 지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거룩한 이름을 가진 레위가 지금 세리가 되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멸시천대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세리레위를 주님이 찾아가십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제자 삼기 위해서 말입니다. 레위를 보시고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실 때처럼 ‘나를 따르라!’ 이 한마디에 레위의 반응이 어때요? 일어나 따르니라. 레위는 세속적인 성공, 세리로 착취를 통한 부를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부르심 초청에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아멘! 어떻게 가능할까요? 여러분, 레위의 속마음을 한번 들여보십시오. 레위라는 이스라엘의 제사장 지파의 이름을 가졌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부모의 꿈, 자신의 꿈 역시 레위라는 이름처럼 살려고 몸부림쳤을것입니다. 거룩한 부담감이 있었을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잘못된 가치관으로 인하여 어찌되었든, 성공을 향하여 세리라는 직업을, 또는 로마의 폭정 가운데서 살기위해서 로마의 앞잡이가 되었을것입니다. 그러나 늘 마음 한편에서는 얼마나 많은 자책과 잘못된 선택에 대한 후회가 있었겠습니까? 이런것이 없으면 양심이 회안맞은것이지요. 그런데 기쁜소식 복음이 들려옵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분이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 중풍병자를 치유하시고, 귀신을 쫓아내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병을 고쳐주신다는 소식을 말입니다. 레위역시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부정한 자라는 낙인이 찍힌자입니다. 때론 강도요 살인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병 환자를 치유하실 때는 손을 직접 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의 처지 역시 나병환자와 다를바 없는데, 그 분,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지금 눈 앞에서 자신을 향해서 똑바로 걸어오시는 것입니다. 과연 저 분, 나를 피해가실것인가? 다른 사람들처럼 욕을 한사발 던지고 가실 것인가? 나병환자처럼 나에게 오셔서 나에게 악수를 청하실까? 불안과 기댐과 설렘을 가지고 눈을 맞추는 순간, 주님이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오메, 아멘 할렐루야! 주님이 레위의 마음을 아신것입니다. 주님은 이처럼 사람들에게 멸시천대받는 약한 자, 부정한 자, 고통받는 자, 죄인을 구원해주시기 오신분이라는것을 분명히 보여주신 사건이 바로 세리레위를 부르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에 의하면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너는 이제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자이니라 마태라 하라! 선물을 주시기 위해 오신 주님, 죄많은 우리에게도 주님은 오셔서 선물을 주셨잖아요? 하나님의 자녀이니라 아멘!

    2.  세리, 죄인들과 식사하시는 예수님
    15절,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레위 한 사람을 만나니까 그 주변에 그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줄줄이 따라왔습니다. 고구마 캘때, 땅콩 수확할 때 보면 한줄기 뽑으면 줄줄이 사탕으로 따라오지 않습니까? 레위의 친구들 세리들이 다 모여들었습니다. 성경은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라고 했습니다. 당시대 죄인들은 세리와 같은 직업군,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자들, 왜냐하면 죄로 인해서 병들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니 사회적 약자들이 모여서 잔치를 하고 있는것입니다. 어찌보면 하나님나라의 맛을 예수님때문에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땅에 오신 이유는 죄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나라 백성 삼는 것입니다. 죄인들을 구원하는 방법, 그것은 그들의 죄를 담당해야하는 것인데 그 모습이 바로 그들과 함께 앉아 교제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장모의 열병을 치유하실 때 손을 잡은 것처럼,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시는 것처럼 같은 의미입니다. 세리들, 죄인들과 함께 앉아있는 모습이 그들의 죄를 다 떠맡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시편23편, 유명한 시를 아시지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바로 함께 앉으시는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더군다나 시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밥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앉아 잔치하는 모습이 바로 이런 상황입니다. 축제같은 모습, 예수님을 모신 공동체, 예수님을 모신 가정,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기업들이 이런 모습입니다. 이런 기쁨이 회복되려면 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레위가 예수님의 초청에 아멘한것처럼, 예수님을 집으로 식탁으로 초청한 것처럼, 주님을 마음에 모셔야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필요하다가 나의 주님이 되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우리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십니다.

    3.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비난하는 서기관들을 통해서 겉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식탁교제하는 모습을 비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16절에 바리새인의 서기관들, 중풍병을 치유하실 때 죄사함을 선언하실 때 비난했던 이들은 2:6절에 서기관들...이들은 당시대 율법의 규례와 전통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했습니다. 죄사함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은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니 신성모독이로다 하면서 비난했지요. 세리와 죄인들과 교제하는 것을 비난하는 이들을 향해서 주님께서 17절 말씀으로 응수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은 병든 자에게 의사로 오신 분이십니다. 병을 치료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나병 중풍병...출15:26절을 통하여 나는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만이 질병을 치유하실 수 있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막1,2장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병을 치유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일을 통하여 병든자에게 의사로 오신 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선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리도, 중풍병자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도 다 병든 자요, 죄인임을 고백하고 치유자 예수님, 여호와라파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은 의인이라고 자부하면서 죄인들을 폄하 멸시하는 서기관들로 인하여 중풍병자가 예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히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 나아가 치유받고 기뻐하는 이 교제의 자리를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날 교회에 의외로 많습니다. 술 담배를 끊고 교회 오십시오! 이러면, 술 담배 피는 사람들은 교회오기 어렵습니다. 주님 앞에 오는데 방해물이 없어야 합니다. 누구나에게 다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 교회 문입니다. 교회 와서 신앙생활하다보면, 말씀의 은혜를 받다 보면,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절제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술 담배 불량스럽게 보이는 사람들 이런것들이 다 겉모습이잖아요? 우리는 이 겉모습으로 너무나 사람을 평가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모습이 나도 모르게 서기관처럼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품으시고 그들과 하나되어 함께 교제했습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자녀들을 바라보십시오. 다 사랑스럽게 보이지 않습니까? 서기관의 모습으로 바라보면 교회가 타락한 것같이 보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천국같은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할 때, 우리 주님은 영혼의 치료자,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를 치유해주십니다. 이 치유받은 기쁨으로 세상과 영혼을 바라보면 모두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도 힘듭니다. 다 아파합니다. 좌절과 실의가운데있습니다. 그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손을 뻗어 위로자가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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