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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6:1~18 예수의 흔적이 있는 사람
    신약 강해/바울서신 2021. 1. 25. 13:10

    갈6:1~18 예수의 흔적이 있는 사람
    많은 사람들의 댓가지불에 의해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이 멈추고 이제 해결될 기미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참 많은 부분에서 행동의 제약을 주었습니다. 모이는 공동체인 교회의 예배모습이 바뀌어지고
    사회와의 거리두기 캠페인으로 서로 만나는 교제가 사라지고...그러나도 나혼자의 시대에 점점 고립되어가다가
    이제는 무기력해지기까지 하는 단계까지 이르런것같습니다.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많은 때에 하나님과의 교제
    시간을 더 많이 가져 주님과 더 친밀했으면 합니다. 또한, 사람은 사람을 경계하고 피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습
    니다. 자연은 우리를 경계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고,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이런때일수록 하나님이 주신 자연...
    자연속에서 자연과 교제하면 우리 마음이 봄날이 되고, 우리마음에 생동감이 넘치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갈라디아서의 마지막 장을 통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인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1. 2절, 짐을 서로 져야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겨나가는 우리나라의 국민들을 보십시오. 각자가 무슨일을 해야할지를 아는 사람들이잖아요.
    성숙한 시민, 국민의 모습입니다. 서로 조심하니까 그 큰 불을 잡을 수 있는 겁니다. 신천지처럼 행동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았잖습니까? 숨기고, 속이고, 나 혼자 해결하려고 하려다가 이런 엄청난 대참사가 벌어진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공동체안에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서로 짐을 지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
    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서로 짐을 져라, 서로 사랑하라, 서로 기도하라, 서로 섬겨라, 서로 덕을 세우기를
    힘써라. 서로 대접하기를 힘써라. ..내 짐도 버거운데, 나 혼자 살기도 힘든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던진 사랑으로 우리의 짐을, 우리의 빚을,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셨지 않습니까? 이것이 그리스도의 법입니다.
    내 짐만 내문제만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의 이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 무거운짐을 해결해
    주신 분, 이 감격이 생생하다면...무거운 짐 가운데서 고통과 아픔가운데서 눈물흘리고 주저앉아 허덕이는 형제
    이웃에게 달려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문제만 보이고, 내짐만 보인다면 기억해야 합니다.
    갈6:14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지 못하는 자인가보다, 나는 십자가가 두렵구나, 17절, 예수의 흔적이
    없구나...다시 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다시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6:4~5절 말씀에 보면,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남의짐을 지고, 그리고 내
    짐은 내가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일은 자기가...그리고 다른 사람의 짐은 내가...손해나는 느낌입니까?
    우리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교회에 이런 문제가 
    있었습니다. 살후3:11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주님오심, 재림을 기다리면서...주여 오시옵소서 기도만 하고 있었던 사람들...교회는 이들에게 끼니마다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지요. 이런 자들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경고의메시지를
    날렸습니다. 이처럼 문제를 일으키는 자가 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짐, 자기의 문제를
    늘 살피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습니다. 내짐은 내가, 상대방 약한사람의 짐 역시 내가...이 모습이 바로 교회공동체
    의 모습이며, 책임의 모습입니다. 
    실물경제가 무너져 살 희망도 없이 캄캄한 분들에게 임대료를 인하해주고 임대료를 안받는 건물주가 있다는 아름다운
    소식들이 들려옵니다. 교회도 대형교회가 미자립교회 임대료를 후원하는 교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서로 짐을 지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대형교회가, 그리고 그리스도인기업인, 그리스도인건물주들이
    이런일을 많이 하면 좋겠습니다. 

    2. 심는 대로 거두는 것...당연한 이치입니다.
    6:9절에 보면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선을 행했는데, 돌아오는 것이 없다. 오히려 비방과 조롱이 날아온다.
    그럴때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거두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코로나바이러스로
    마음이 겨울인데, 답답한데...봄이잖아요. 새싹이 돋고, 순이 돋고, 꽃이 피잖아요. 봄이 안올것 같은데 성큼 봄이네요
    이런것처럼 우리가 댓가지불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하면, 서로 짐을 지면 반드시 하나님은 열매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행하고 심고 뿌려야 하는가? 
    첫째, 6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가르침을 받는 자는 제자요 성도요
    가르치는 자는 교사요 목회자인데...서로간에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와전되어 이단들은 교주에게 재산을 다 갖다 바치라고 하지요. 이런 오해가 있을까봐 사도바울은 스스로
    장막짓는 일을 하면서, 삯을 받지 않으면서 가르치는 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메시지는 삶의 중심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면 쉽습니다. 가르침을 받는자의 삶은 물질을 벌어들이는 일,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이 중심..그러다 보니 물질이 부족할 수밖에 없지요. 서로 짐을 지라는 말씀을 적용하면
    물질이 있는 자는 물질이 약한 사람을 돕는 것..마땅한 것입니다. 이 모습은 구약의 제사장, 레위지파의 원리와비슷합니다
    레위지파의 책임과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제사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성전에서 나오는 제물과 
    백성들이 공급해주는 양식을 먹고 생활했던 것처럼, 오늘날도 가르치는 일이 주업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물질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은 당연한것입니다. 
    둘째는, 심는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원리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7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라디아서의 핵심구절중의 하나입니다. 육체의 소욕을 심었는가? 육체의 열매가 나타날것이요, 성령을 위하여 
    심었는냐?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뿌린대로, 심는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심었는가?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잃어버리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복의 원리를 아는자...10절, 기회 있는 대로 모든이에게 착한 일을 하려고 힘쓸것입니다. 
    목동이대병원에서 일어난 간호사채용 면접문제를 생각해보십시오. 코로나바이러스가 문제되기 전에 간호사응시접수를
    해놓고 경상도 영주에 자원봉사를 간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서류심사에 통과되어 면접오라고 연락이 왰는데, 현제
    영주에 있다고 하니..바이러스지역이라고 하면서 면접을 거절당했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되어 화상으로 면접하자고
    했는데 이 간호사가 결국 불이익당할것을 알고 거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간호사는 스스로 자원봉사의 짐을 지었습니다. 선을 심고 뿌렸습니다. 댓가지불도 했고, 책임감으로 사명을 감당
    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낙심할 일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될까요? 제 생각에는...하나님이 세우실것같습니다.
    이대목동병원보다 더 환경이 좋은 곳으로, 하나님이 옮겨주시지 않을까요? 설령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이런일을 
    만날 때 낙심하거나 원망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아시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거두시기 때문입니다.

    3. 예수의 흔적이 있는가 입니다.
    갈라디아서의 마지막 부분에 사도바울은 다시 한번 십자가를 강조하며, 십자가를 자랑합니다. 
    육체에 모양을 내는 할례...율법의 멍에..그것은 육체를 자랑하는 것이요. 이것은 유대교이 핍박을 면하려는 얄팍한
    술수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자랑스럽습니까? 나는 1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도 같이 선언해야 합니다. 나 역시 십자가를 자랑하리라. 
    이렇게 십자가를 자랑하면, 바울처럼 핍박이 따라옵니다. 사도바울의 전도여행가운데 당한 핍박을 아시잖아요.
    고후11장에  돌로 맞고, 파선하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고, 세번 태장으로 맞고 수없이 맞고...
    십자가를 자랑하기 때문에 당한 환란...고후4장에서는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십자가를 자랑한 자에게 임한 예수의 흔적입니다. 
    아카데미4관왕에 오르고 1000만 관중을 넘어선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지하에 사는 아버지역할의 송광호씨가 부잣집 기사로 들어갈때...명품으로 도배하고, 목욕하고..금수저처럼 치장했는데
    진짜 금수저인 이선균이...이상하네, 지하철타면 나는 냄새가 나네...아무리 광내고 목욕하고  비까비까하게 입어도
    지하냄새는 어떻게 할 수 가 없었던 거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일성수하고 십일조하고 성경책끼고 다니고 거룩하게 다닌다고 해서.. 예수의 향기와
    예수의 흔적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을 따라 행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짐을 지고
    선을 심고, 예수십자가를 자랑하고, 십자가에 죽을 때...그때 십자가의 흔적, 낙인이 찍히는 것이요,
    그때 자연스럽게 예수의 향기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교회가 기독교가 매도당하고 있는 오늘날, 이런 그리스도인이 절실합니다. 사회가 교회를 욕하는 이유는 다른것
    아닙니다. 교회가 제발 교회답고, 성도가 성도다워야 하는것 아닙니까? 우리는 막살아도, 예수믿는 사람은 
    그러면 안되잖아요. 우리의 소망은 예수믿는 사람이잖요. 그들의 기대와 주님의 바람을 잊지 마십시오.
    이 길을 첫 걸음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나를 살려주신 십자가, 십자가를 자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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