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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1:1~20 이사야서 강해, 내 백성을 위로하라
    구약 강해/대선지서 2021. 1. 26. 08:17

    사1:1~20 내 백성을 위로하라
    WHO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바이러스에 대해 팬더믹(세계적 대유행병)을 공식선언하고 있는 상황에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일본등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사망자수도 수백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큰 불은
    진화된듯 하지만 산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에 교회에서 발생되는 일이 종종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국가는 예배를 감시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사회가 교회에 모이는 예배 중단을 촉구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교회가 감염의 중심에 이를 때, 사회는 교회를 매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가 사회에 지탄을 받으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가 있습니까?
    교회마다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 지 고민들이 많은데, 대부분은 학교개학시기까지는 온라인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많은것 같습니다. sns에 이런 문구가 올라왔는데 참 마음에 닿습니다.
    예배드리면 죽인다고 칼이 들어올때, 목숨을 걸고 예배드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나, 예배모임이 칼이 되어 남들의 목숨을 위태롭게하면, 모이지 않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배모임이 사회에 불안을 주고 사회에 바이러스의 감염원이 된다면, 교회가 핍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독을 받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그 사회에 교회가 존재...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지게 됩니다.
    오늘날, 사회와 인성이 황폐화된것같습니다. 오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하여 무기력하게되고, 사나와진것같습니다.
    이러한 때에 왜 이런 어려움이 왔는지,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길이 무엇인지..이사야서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보려고 합니다. 
    이사야서의 저자는 이사야입니다. 총신 동기가운데 이름이 이욥이 있었는데요, 아들은 이사야입니다.
    이사야는 구원의 예수와 이름이 같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이사야의 활동시기는 사1:1 유다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시대에...웃시야, 아하스, 히스기야가
    등장합니다. 웃시야하면, 우리나라 경제부흥이 있었던 1970년대처럼 그런시대입니다. 잘먹고 잘사는 시대,
    이런 부유한 시대...믿음 역시 부유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경제와 건강과 믿음이 같이 상승기류를 타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텐데...이렇게 같이 성장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제시대 625시대..핍박과 순교가 있던 시대에 믿음은 최고점을 찍었던 것같고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경제는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신앙 믿음은 계속 내리막길을 달려서 중대형교회를 
    제외한 개척교회들은 무너지기 직전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양극화가 너무 심한것이죠.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빈부의 격차가 너무 심해서 서민들은 이런 사회적 문제를 만날때 헤쳐나가기 힘들어
    거의 무방비 포기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혼란과 혼돈의 때에 이사야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복된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1. 이스라엘 땅이 어떠한가?
    사1: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폐하였고...황무하고, 사막같다는 겁니다.
    1:9절 오죽하면 소돔같고 고모라같다고 표현하겠습니까?
    다윗시대, 솔로몬시대 그 화려하고 영화롭고 아름다왔던 이스라엘, 예루살렘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옛날 아름다움은 다 사라지고, 흔적도 없이 비참한 모습, 초라한모습, 멸망직전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1:21 신실하던 성읍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가? 슬프다
    그래서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왜 이렇게 망하게 되었는지, 뭐가 잘못되었는지...살펴보기 위한
    하늘법정의 심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2. 너는 너의 자신을 아느냐?너는 너의 참상을 아느냐?(하늘법정에서 검사의 심문-공소)
    경찰이 수사할 때, 범인잡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시시티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시시티비가 있고, 
    차량마다 블랙박스가 있어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다 찍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것 신경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습니까? 범인들이나 죄지을려고 하는 사람들이 신경쓰면서 피하고 다니죠. 일반인은
    무심코 다니고 무감각합니다. 
    하늘시시티비, 몰래카메라가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생활하는데, 행동하는데 제약을 받을까요?
    신중하고 조심할까요? 아니면, 있거나 말거나 마음대로 행동할까요?
    사1: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하늘법정같은데서의 재판정에서
    검사가 죄인을 심문하는데, 참관인 또는 배심원들에게 외치는 것같은 모습입니다.
    배심원, 참관인 또는 증인이 누구냐면, 하늘과 땅입니다. 죄인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이 땅이 왜 이렇게 황무하게 되었느냐?

    1)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했습니다....2절,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반역, 범좌하였다! 관계를 깨뜨렸다는 것입니다. 
    3절 보십시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4절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경멸, 거부,업신여겼다.
    ...여기에 열거된 이스라엘 백성들...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아버지를 멀리하고 멸시하고
    거부하는 탕자의 모습, 짐승만도 못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2)말씀을 무시했습니다...하나님의 뜻은 말씀으로 전하여집니다. 그 말씀은 우리에게 양약이며,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계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5:24 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같이, 마른 풀이 불속에 떨어짐같이 그들의 뿌리가 썪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시 이의 말씀을 멸시
    하였음이라...멸시, 거부, 경멸, 업신여기다.
    말씀을 무시한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1:21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2:7-9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여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각락으로 만든것을 경배하며
    천한자도 절하며 귀한자도 굴복하오니
    3:5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여기에 갈라디아서처럼 사랑으로 종노릇하고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 있습니까? 육신의 정욕으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잖아요.
    사회라는 것이 이웃과 이웃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는 곳인데, 사회공동체가 무너져버렸고,
    정의와공의가 무너져버린 사회...질서가 무너져버린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시대만 그렇습니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떠합니까? 공의와 정의가 있습니까?
    세상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은 모른다쳐도 사회의 기본법은 제대로 지켜져야 하는것 아닙니까?
    법이 공평한 추처럼 공평하게 집행되어야 하는데도 권력과 힘에 의해서 마음대로 움직이는 사회..
    여론이 바로 전달되지 못하고 왜곡되고 가짜뉴스가 판치는 사회, 부정불법한자가 득을 보는 사회...
    법이 무너지고, 말씀을 무시하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런 사회를 하나님은 언제까지 그냥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이땅이 황무하게되는 것입니다.

    3)예배를 무시하고 형식화했습니다. ..1:11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게 무거운 짐이니라 ...
    이들이 하나님아버지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서 제단에 제물을 가져와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제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견디지 못하겠다하시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이런 형식의 제사가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이런 형식의 제사보다 천천의 수양보다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삶의 예배를 주님은 기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달래는 듯한 흉내만 내고 형식으로 드리는 제사에 대하여 하나님은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성소안에, 지성소 안에 들어와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한 마당만 밟고 가는 모습이라고...
    이런 모습이 바로 버림받은 초대왕 사울왕의 모습 아닙니까?

    한국교회가 사회에 지탄과 멸시를 받는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아니겠습니까? 사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보듬지 못한 것아닙니까?
    내 식구 내 교인만 감싸고 있다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이타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 땅이 황무한 것 아닐까요? 바로 우리 책임입니다.

    3. 이런 우리에게 주님은 여전히 손을 내밀며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끝없는 사랑입니다.
    1:18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2:5 야곱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여전히 돌아오기만을 원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눅15장에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를 울고있는 이 백성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럴때 이 황무하고 황폐한 땅이 회복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 가운데,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주인되신 주님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그저 예배하고, 그저 찬송하고 그저 기도하고
    그저 목회하고...그런것은 아니었는가? 
    한주간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의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살았습니까?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았습니까? 정의와공의의 법, 하나님의 말씀이 삶에 나타났습니까? 
    이땅의 어려움이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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