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강해/모세오경

창37:5~11 꿈은 복음으로 이루어진다

엘리사처럼 2020. 12. 19. 20:20

창37:5~11 꿈은 복음으로 이루어진다.

지금도 2002월드컵이 생생합니다. 히딩크를 감독으로 박지성 안정환 이영표 황선홍등이 활약하여
꿈같았던 4강에 올랐었죠. 16강에 올라가는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훌쩍 넘어 4강까지 올라갔으니 세계가 놀랄 일이었지요.
그런데요...월드컵 시작하기 전 한국의 별명은 5대영이었습니다. 강한 팀들과의 평가전에서 박살났
었지요. 이런 아픔과 훈련과 시련을 통해서 마침내 이루어진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죽음과 같은 극한 고난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이런 역경을 딛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믿음의 용사들이 많습니다 .
대표적인 사람을 꼽으라 하면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와 룻이 아닌가 합니다.
이 가정이 기근때문에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땅에 살다가 남편죽고 아들들 죽고 결국 나오미와 룻만
남아 고국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한마디로 성공한다고 갔다가 쫄딱 망해서 빈털털이로 돌아온 것입니다.
소망도 없고, 꿈도 없는 것 같지만 기가막힌 어둠의 터널을 잘 통과했더니 쨍하고 해뜨는 가정이 되더라.
이런 아름다운열매 성공을 뒤돌아보면, 고난을 잘 통과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창세기를 마치는 날인데요. 요셉이야기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애굽을 살리고
형제들... 가정을 살리는 일을 보게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또한 17세때 꾸었던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이루어지기까지 숱한 어려움이 있었는데 어떻게 꿈을 이루
었는가?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려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가?

1. 꿈은 하나님 안에서 꾸어야 합니다. 
요셉이 17세에 아주 독특한 꿈을 꾸었습니다. 형들의 이삭 단이 요셉의 이삭단에게 다 절하는 꿈이지요.
이어서 다른 꿈을 꾸었는데,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는 꿈입니다.
이 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길래...이 꿈을 이야기 했을때 형들이 미워하고 시기했을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꿈을 형들이 다 요셉에게 무릎꿇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시대 삶의 중심은 농경사회입니다. 당시대 문화와 삶을 유추해보면,
곡식단은 바로 식량을 의미합니다. 곡식 단이 요셉에게 절한다는 것은 앞으로 요셉이 가족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할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창45: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니...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해와 달과 열한별이 요셉에게 절했다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해와 달과 별은 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온 땅의 사람들이 요셉으로 말미암아 양식의 문제를 해결받을것이라는 사명의
꿈이었던 것입니다. 이 꿈은 앞으로 요셉을 통해 이 세상의 기근과 식량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사명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20년 후에 백성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창47:25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주의 은혜를 입었다고 감동과 눈물로 고백하는 것을 통해
입증이 됩니다.
그럼 이런 놀라운 꿈을 왜 요셉에게 주었느냐 이것입니다. 꿈은 하나님안에서 꾸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하여 약속을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이루어가십니다.
에서와 야곱에서 야곱에게 하나님의 꿈이 내려간 가장 큰 이유는 장자권을 소홀히 여긴 것도 있습니다.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장자권을 팥죽 한그릇에 팔아버린 장자 에서의 모습을 보면 장자권을
소홀히 여긴 그 속에 하나님의 약속, 하나남과의 관계가 뒷전인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이 있긴 하지만, 육적인 삶을 통해서도 분명히 보여진 다는 것입니다.
그럼 야곱은 12아들이 있는데 이 복이 누구에게 흘러갈 것인가?
영적인 메시야 계대의 복은 지난주에 살펴본것처럼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가 아닌 4째 유다였습니다.
유다가 이런 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과 헌신 희생이었습니다.
그럼 요셉은 무엇인가? 요셉 역시 야곱의 장자권의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꿈을 통하여 나타났는데, 하나님은 왜 요셉에게 이런 꿈을 주셨느냐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꾸기 전의 삶을 보십시오.
창37:2 요셉이 십칠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우리는 요셉을 편협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 있었는데...그것은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사람이라는 것
입니다. 그래서 형들의 미움을 샀다. 
그런데 고자질로 형들이 미워하기보다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더 사랑 더 사랑 편애한것을 보고 미워한것
입니다. 그러니까 고자질 당한것은 마땅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형들은 양을 치는 평상시의 삶이 순수하거나. 열심하거나, 집중하거나, 사명을 가지고 하거나 하지 않았다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정말 열심히 잘 살았습니다.
창31:38 이렇게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이 이십년 동안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내가 스스로 보충하였으며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릎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목동 다윗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삼상17: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이에 반하여 요셉의 형들은 어떻게 살았다고요? 요셉의 눈에 보일정도로 잘못을 하고 있었다!
또한 요셉을 팔아 넘기고 아버지에게 짐승에 물려 찢겼을것이라고 하면서 요셉의 채색옷을 증거로 
갔다 줄 때...창37:31 그들이 요셉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요셉만 팔아넘긴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숫염소를 죽여 피를 묻히는 일, 양떼 소떼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평상시의 삶이 목자인데...목자의 마음이 하나도 없어요!
반대로 요셉의 삶은 조금은 고자질같이 보이는 철부지이나...형들의 목자의 삶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아
아버지에게 그대로 고하는 그런 사람...고자질이 아니라, 저렇게 살면 안되지 하는 그런 마음으로 살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자가 곧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삶, 하나님의 사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요셉에게 가정을 맡기고 세상을 맡기겠다는 하나님의 꿈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꿈은 아무렇게나 꾸는 것이 아닙니다. 계획과 비전들...삶이 바탕이 되어지지 않고, 하나님없는 마음속에서
꾸어지는 것들은 망상이요 허상이요 일장춘몽인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말씀속에서 꿈을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2. 꿈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1)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꿈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더 사게 되어 구덩이에 던져집니다. 그러나 유다의 중재로 상인들에게 은20에 팔려
생명이 유지되고 애굽 바로왕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들어갑니다. 아무리 인정을 받아도 노예는
노예인것이죠.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결국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됩니다. 
구덩이-노예-감옥...하나님이 주신 꿈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집니다. 더 어두워집니다. 
그런데 이런 더 극한 상황임에도 성경은 표현하기를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자가 되어
39: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감옥에서는 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여러분! 요셉이 형통합니까? 상황과 환경은 더 악화되잖아요. 더 캄캄하잖아요. 어떤 사람이 그랬다고 합니다.
바닥인줄 알았는데...지하가 있더라. 바닥인줄 알았는데 더 밑으로 더 밑으로 죽어라 죽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요셉에게 표현되어지는 단어...형통입니다. 형통과 복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형통과 복의 잣대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가막힌 환경일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형통입니다. 사람 눈에는 시련이요 고난이요 아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그 속에서 찬양이
감사가 울려퍼집니다. 이것이 사람들 눈에 보이는 거예요. 보디발 장군이 이것을 본겁니다. 간수장이 이것을
본것입니다 .맡은 일을 콧노래를 부르면서 감사하면서 일하는 것입니다. 노예이지만, 감옥의 죄수이지만 
이렇게 일한 사람에게 일한 열매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겁니다. 사람 눈에 보이는 것이지요.
꿈을 가진자는 이렇게 삽니다. 이런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꿈이 발아되는 것입니다. 아멘
 
2)하나님을 높일때 꿈은 현실이 됩니다.
요셉은 오직 하나님 중심주의자입니다. 요셉이 일생은 하나님없이는 해석이 안됩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처음 공식적으로 드러낼때...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입니다.
창39:9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끝까지 붙잡을때.. 도망갑니다.
도망가는 것이 감옥에 갇히고 망하는 길같지만, 이런 도망이 바로 죄를 뿌리치는 최상의 길이요,
하나님품으로 달려가는 최고의 길입니다. 감옥으로 갇히는것...결국 그곳이 총리되는 지름길이었잖아요.
또한 감옥에서 술맡은 관원장과 떡굽는 관원장이 해괴한 꿈을 꾸었을때...
요셉이 이렇게 말합니다. 40:8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일을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바로왕이 꿈을 꾸고 번민할때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이 풀어내지 못할때... 요셉이 불려가 이렇게 말합니다.
41: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찾아와 자신을 나타내보일때 창45:5 두려워 떠는 형들을 향하여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처럼 온통 하나님이야기입니다. 나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진 자는 꿈을 주신이도
하나님이시요, 이루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오직 하나님만 영광 받으소서...이런 자에게 하나님은
주신 꿈이 현실이 되게 하십니다.

3)더 사랑할 때 꿈은 아들다워집니다.
애굽에서 아버지 형들 모두 행복하게 삶을 누리고 있을때 아버지 야곱이 죽습니다.
아버지를 장사하고 돌아올때, 형들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우리의 방패가 없어진거잖아. 전에 우리가 행한 악한 일을 요셉이 원수갚으면 어쩌지???
두려워하면서 요셉에게 엎들일때 이런 말을 합니다.
창50: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이것이 바로 끝까지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더 더 더 더욱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을 볼 때, 그냥 꿈만 이루고, 식구들을 먹여살리고 당시대 백성을 먹여살린것으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요셉에게서 헤세드 끝까지의 사랑, 인애하신 사랑...헌신,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는 것입니다.
요셉에게서 바로 복음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자신을 내놓은 십자가의 사랑, 극한 무덤까지 가는것같은
장사복음...그래서 복음을 가지고 사는자...요셉처럼 사는 것이요, 이런 삶을 사는 자에게 
하나님은 복음의 기쁨을 약속하시고 복음의 기쁨이 현실이 되어
항상 기뻐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참된 기쁨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