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강해/시가서

시22:1~31 하나님의 침묵

엘리사처럼 2022. 9. 29. 23:18


시22:1~31 하나님의 침묵(어찌하여 나를, 어찌하여 나를)

오래전에 읽은 책인데요. 17세기 일본에 천주교 예수회가 증거될 때의 사건을 창작해서 기록한 역사소설입니다. 포르투갈에서 저명한 신학자이며 경건한 선교사를 먼저 일본으로 파송했는데 이 선교사가 혹독한 고문과 박해에 배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신부의 제자를 잠입시켜 조사하면서 실상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혹독한 고문과 박해에 과연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그리고 예수를 믿게 된 신자들을 살리기 위해서 배교한 신부의 행동이 바른 것인가? 이런 처절한 상황속에서 하나님은 왜 잠잠히 계시는가? 왜 침묵하시는가? 이런 이야기들은 이 책뿐만 아니라 초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있었던 사건입니다. 나 혼자의 신앙이라면 죽더라도 주님을 붙잡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겠지만, 사랑하는 부모 형제 가족을 볼모로 선택해야할때가 된다면, 누가 신앙을 장담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시편22편은 이런 내용입니다. 처절하게 부르짖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멀리 계시며 침묵하시는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제목을 보십시오. 아앨렛사할에 맞춘노래…새벽암사슴이란 곡조에 맞추어 부른 노래인데, 낭만적 평안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이 사슴이 사나운 짐승들에 둘러싸여 절대절명의 위기에 빠졌다면 노래를 부를 수 있겠습니까? 1절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구절 아닙니까?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면서 처절하게 절규하시는 십자가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22편은 처절한 수난시 고난시 탄원시라고도 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해서 메시야 예언시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난 탄원 부르짖음 한숨이 나오는가 하면 곧바로 이어서 찬양하고 결단하고 의지하는 다윗의 굳건한 고백이 나옵니다. 그래서 22편을 의지시, 결단시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듯한 인생의 밤에 다윗처럼 오히려 더 찬양하고, 더 감사하고, 더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배우는 귀한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고난과 어려움을 만났을 때, 믿음과 결부시키지 마십시오. 믿음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신앙의 뿌리는 고난과 박해와 시련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고난은 필수였습니다. 그런데 7~80년대 경제 부흥기를 맞이하면서 믿음을 성공과 번영에 초점을 맞추는 기복신앙, 번영신학이 들어와 실패하면 믿음이 없는 것이고, 성공하면 하나님이 복주셨다는 것으로 신앙이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교회공동체에 와서 문제를 내놓고 같이 아파하고 같이 기도하고 위로했었는데, 신앙이 잘못되다 보니, 내가 믿음이 없어서 이렇게 어려움이 왔구나 하면서 오히려 교회를 기피하게 되고 믿는 신자를 피해다니는 이상한 일이 생긴 것입니다. 이 신앙으로 생각하면 베드로 바울 스데반등 믿음의 선진들이 다 실패한 인생이 되는것입니다. 성경은 물질적 부요를 가지고 믿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세상적 성공을 가지고 믿음이 좋다고 하지 않습니다. 다윗, 지난 주 20, 21편에서 얼마나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그 결과로 말할 수 없는 큰 승리를 받았습니까? 그러나 늘 좋은 일 좋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22편은 처절한 고통의 날입니다. 삼하23장에 사울왕에게 쫓겨 가장 위급한 때 또는 압살롬에게 쫓겨 황급히 도망가는 그러한 때가 배경이라고 합니다. 가장 낮은 위치에 떨어져서 부르짖으며 도망가는 비참한 상태…다윗은 어떤 사람인데요. 사슴처럼 믿음이 예쁜 사람, 늘 찬양하고 기도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잖아요. 이런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1절,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절,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어떤 상황인지 생생하시지 않습니까? 밤낮으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고 두드려도 …하나님은 멀리 계신듯하고, 보이지도 않고, 여전히 침묵하시는 모습입니다.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승승장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이런 어려움이 찾아왔을때, 심적 불안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것은 맞나? 하나님이 나에게 기름부으신것이 맞나? 선택이 아니라 버림을 받은 것은 아닌가? 믿음이 흔들리는겁니다. 6절은 어때요?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벌레취급을 받듯 천대받는 모습입니다. 실례로 압살롬을 피해 도망갈 때, 사울지파 시므이가 돌을 던지며 침을 뱉으며 조롱한 적이 있잖아요…벌레보듯 냉소하고 멸시거리 천대받는 기가막힌 상황에 처한것입니다. 저도 공무원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사표내고 신학간다고 할 때, 가족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이 미친 사람 대하듯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7절,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조롱을 하는겁니다. 12절에는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6절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이렇게 당하고 있는데도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십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이런 고난과 핍박 시련이 면제되었으면 좋겠지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이런 시련이 우리의 믿음이 없어서 주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일을 믿음과 결부시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나 하나님 안믿어 하면서 오히려 안티크리스찬이 되고마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전에 열심히 신앙생활한적이 있었다는 겁니다. 교회와 하나님을 떠난 이유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또는 믿는자들에게 어려움을 당해서, 이런 하나님 안믿겠다고 떠나 반대편에 서 있는 겁니다. 그러나, 믿는자에게도 이런 시련이 올 수 있고, 이것이 나의 믿음과 신앙에 상관없이 올수도 있다는 진리가 세워지면, 아브라함도 다윗도 바울도 베드로도 스데반도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게도 이런 시련이 왔다는 것을 알면…오히려 시련의 바람을 피해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바람아 태풍아 와라 하면서 정면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2. 하나님은 침묵하셔도 우리는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입을 열어 고백하고 결단하고 찬양하는 겁니다.
신앙과 믿음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고, 우리가 할 일이 있다는 겁니다. 상상할 수 없는 큰 어려움이 올 때, 하나님은 왜 잠잠하실까? 원망하지 말고 우리의 할 일을 하는겁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1절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는지 보십시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엘리 엘리…멀리계신 다른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침묵하고 계시지만 그래도 엘리,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지금 멀리 계시고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다윗이 고백합니다. 4절,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었나이다! 이 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는가? 3절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우리 조상들이 주를 의지하고 의지하고 주를 찬양할 때, 그 가운데 계신 주님이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다윗이 알았고 그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이 어려움중에 뭘 할까요? 찬송하는 겁니다. 주변사람들이 비쭉거리고 무시하고 조롱해도, 주변에 황소와 개들이 둘러싸서 위협해도, 다윗이 한 일은 찬송하는 일입니다. 22절,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3절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25절,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출애굽의 큰 사건후에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행16:25 바울과 실라가 고문을 당한 후 차꼬에 채워져 깊은 감옥에 있을 때, 한밤중에 찬송하매 큰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리더라~ 이 찬송은 언제 나올까요? 다윗이 계속 읖조리는 단어가 있습니다. 9절,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의지와 결단과 고백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주님이십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나를 구원하소서 주님을 붙잡으니 입이 열려 찬송이 나오는 겁니다. 찬송중에 거하시는 주님이 결국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악한 세력에게서 건져주셨던 겁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간섭하지 않으신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음소리까지 다 들으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시간에 회복시켜 주시고, 찬송의 고백이 실제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3. 22편에서 예수님이 처절하게 당한 고난이 누구를 위함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구약성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특히 오늘 22편은 메시야수난시 예언시입니다. 몇 천년후에 일어날 일을 다윗의 삶을 통해서 미리 보여준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 시편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주신 것 성취하신 것입니다. 1절, 엘리엘리라마 사박다니…마27:46절에서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6절의 벌레요…이 벌레는 팔레스타인의 코치니일 벌레를 상징하는데 식물을 으깨면 그 속에서 코치니일 벌레가 나오는데 이 벌레를 잘게 부스고 으깨면 붉은 피가 나오는데 이 피가 염색료가 되어 채색옷, 붉은옷을 만든답니다. 나는 벌레요,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붉은 피가 될 것을 예표해주고 있습니다. 7절, 다 비웃고 비쭉거리며 머리를 흔드는 모습, 십자가에 달릴 때 밑에 군병을 비롯한 지나가는 사람들의 비웃음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17절,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예수님의 뼈의 모습이요 18절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군병들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수난이지요. 왜 이렇게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주님 고난당하실 때, 하나님은 침묵하셨지요. 이 결과, 십자가후 무슨일이 일어났습니까? 남들은 비웃고 조롱하고 멸시했지만 벌레가 으깨어져서 나온 그 피가 죄사함의 피요, 15절 죽음의 진토속에 두셨지만, 죽음의 진토속에 있을 영혼을 살려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 은혜로 인하여 27절 땅의 모든 나라가 주를 예배하며, 30절 후손이 그를 섬길 것입니다. 당시에는 캄캄하고 실패한 것 같았지만 그 어려움을 잘 견디었더니 사망에서 죽음에서 부활의 은혜가 임하였고, 죽음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영혼들이 하나님나라에 갈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더 좋은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여전히 캄캄한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찬송할 때 인줄 알고 더 부르짖고 찬송하여 캄캄한 밤을 견디어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