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강해/모세오경

민14:26~38 광야에서 성공과 실패

엘리사처럼 2021. 1. 4. 11:07

민14:26~38 광야에서 성공과 실패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에서의 삶이란 기가막힌 곳이었습니다. 그 참상은 말할수 없었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키울 수가 없어요.
역사적으로 이런 노예살이는 전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습니다. 이런 기가막힌 수렁에서 건져 올리신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10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시며 애굽을 초토화시켰습니다. 
이곳에서 빼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먼저 시내산에 진을 쳤습니다. 2개월안 숨을 고르면서
앞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할 도리, 법, 지침 율례를 받고,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아야할 말씀들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약속의 땅으로 출발~~~
광야를 통과해서 가는 길, 가나안 땅 들어가기 전에 이들은 실패하고 맙니다. 이들의 실패를 바라보면서 우리도 교훈을 
삼아야겠다. 이들이 넘어진 곳에서 우리역시 넘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다. 경고를 삼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실패의 버튼이 있습니다. 이 버튼을 누르면 실패합니다. 그것은 과거회귀형입니다.
민수기 11장 구름이 진에서 떠오르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환호하면서 출발합니다. 시내산을 떠나 광야를 지나 가나안을 향합니다.
그런데 11: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기 악한 말이 무엇일까? 탐욕, 원망, 불신, 특히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과거 향수병입니다. 
11:4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아무것도 없도다! 
애굽에서 먹었던 것을 추억하면서 그때가 좋았지 한없이 좋았지...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 또 나옵니다. 13장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각 지파에서 대표자 한 명씩을 뽑아 정탐하게 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두루 살펴보고 돌아와 보고하는 모습인데요. 가나안 땅이 얼마나 비옥하고 좋은 곳인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포도송이 사건입니다. 13:23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하나님이 주시려고 계획하신 곳이 이런 곳입니다. 너무 환상적인곳이요, 꿈에 바라던 곳이지요.
그런데 대표자들의 보고내용보십시오.
13: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좋습니다....이제 가서 취합시다!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그러나가 문제입니다. 13: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31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하면서 악평, 부정하고 있습니다.
33절 거기서 거인들을 보았는데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패배자의 모습입니다. 실패자의 모습입니다. 철저하게 좌절하고 포기하고 절망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14장 울며 밤새도록 통곡합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애굽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것을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것이 낫겠다...애굽으로 돌아가자...
또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과거회귀형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이렇게 엄중하게 심판하십니다.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너희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질것이라.
이 광야에서 다 죽으리라...
말의 씨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말이라는 씨는 뿌린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너희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행하신다고 하시잖아요.
입에서 말이 나오는 순간...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어요.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오. 주여 입에 자갈을 물려주시고, 파숫꾼을 세워
주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처럼 과거회귀형...과거에 발목잡지 말고, 왕년에, 옛날의 향수에 빠지지 말고, 주님 나라 저 천국을 향한 미래지향적
긍정적 믿음의 말을 선포하며 사십시다. 

2. 지도자의 리더십에 순종하느냐 아니냐가 광야의 승패를 가릅니다.
모세의 지도력에 문제를 삼는 일이 있습니다. 12장1절에 모세가 구스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하나님의 대리자요 이스라엘백성의 영도자인 모세가 구스여자와 결혼한것에 대한 비방사건입니다.
구스여자가 누구인가? 두가지 견해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모세 아내 십보라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미디안 여인 십보라...
그런데 구스라는 히브리어가 성경상 이디오피아, 수단, 이집트 미디안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된 례가 있어 십보라로 보는 견해
또하나는 십보라가 죽고 광야에서 구스여자와 재혼했다는 견해...
결국 누구를 떠나서 모세가 이방여인과 결혼했다는 것에 대한 비방입니다. 
이것은 모세를 율법으로 정죄하는 심각한 도전입니다. 모세의 지도력에 대한 도전이지요. 이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미리암에게
문둥병으로 심판하시면서 더 이상의 비방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16장에도 모세와 아론에 대한 반역입니다.  16:1 고라와 다단과 온이 주동이 되어 250명이 당을 짓고 모세와 아론에게 대적하는 
모습입니다. 16:3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대항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분에 넘치는 일을 한다)
이 사건의 핵심은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에 대항하고 자신들도 모세와 아론처럼 지도자가 되려는 야망을 표출한것입니다.
나도 지도자다. 나도 레위인이다. 나도 응답받았다. 너만 하나님과 통하느냐 나도 하나님의 자녀요 이스라엘 백성이다.
결국 모세와 아론을 시기 질투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어떻게 표현하시는가? 16:30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땅이 갈라져 이들을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두 사건의 본질은 시기와 질투입니다. 시기와 질투는 자신의 뼈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나보다 더 잘나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보다 다른 뭔가가 있겠지...하나님이 그 사람을 세우신 깊으신 뜻이 있겠지...
수용하고 겸손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것이 바로 믿음의 시작입니다. 
이 사건은 요즘 목사를 비방하고 비난하면 망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진정한 지도자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는냐
아니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지도자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3. 광야에서의 성공의 핵심은 내가 나타나느냐 아니냐에 달려있습니다.
20:2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없고 없고 없고...원망 불평
환경에 대한 불평입니다. 이럴때 부모가 가장 힘들지요? 해주고 싶지만 해줄것이 없어요.
그렇다고 도둑질 할 수도 없고, 막막합니다. 모세의 심정이 이럴수 있어요.
사람들은 꼭 넘어지는 그 자리에서 넘어집니다. 전에도 물이 없어 불평하고 먹을것이 원망하다가 혼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상황에서 또 넘어지는 것입니다.
짐승들만 아이큐가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똑같아요. 
이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지침을 내리십니다. 20: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며 물을 내라....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모으고 11절,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이 사건으로 모세와 아론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심판을 받습니다.
이 사건은 다른 것 아닙니다. 물이 솟아나오는 일을 누가 하고 있는 것입니까? 모세가 하고 있잖아요. 하나님의 명령은 어디가고?
하나님의 영광은 어디가고? 모세만 나타난 것입니다. 
불순종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이 사건...의 댓가는 너무 컷습니다. 
의미심장한 사건이 또 하나 있습니다. 21: 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돌아가는 일 때문에 속이 상했다. 이 의미를 새번역에서는 길을 걷는 동안에 백성들은 마음이 몹시 조급하였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엿다. 
그러면서 싸잡아서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하찭은 음식을 싫어하도다. 이 보잘것없는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납니다.
하나님이 날마다 부어주시는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 진저리가 난다고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바로 불뱀을 보낸 것이었습니다.이 두 사건이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나 중심으로 나타난 사건입니다.
반석에서 지팡이를 때린 모세의 사건...역시 내가 주인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고 모세만 나타난것입니다.
애굽에서 돌아가는 사건은 백성들이 돌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투덜대다가 결국 하나님이 주신 선물까지 폄하하는 모습입니다.
조금 빨리 가는 것이 그렇게 중요해요. 조금 더 걷고 돌아가면 어때요? 
빨리 가고 늦게 가고 그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가고 있는가 아닌가가 더 중요하지용.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이렇게 실패하고 출애굽 1세대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 제외하고 광야에서 다 죽는
광야에서의 실패의 쓴잔을 먹고 말았습니다. 자신들이 뿌린 말 그대로 열매를 맺고 말았습니다.
우리 역시 광야의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광야는 시험장소입니다. 통과해야 할 곳입니다. 시험과 여러가지 문제가 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도자가 주님이신가? 주인이 주님이신가? 주님이 지금 계속 같이 하고 계신가?
이것이 초점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자리가 광야일지라도 가나안입니다. 그 자리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텅빈 모습일지라도
주의 것으로 충만한것입니다. 이런 삶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