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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눅5:1~11 말씀에 의지하여, 말씀이 실제가 되면 죄가 드러난다.
    신약 강해/4복음서 2021. 2. 27. 07:47

    눅5:1~11 말씀에 의지하여, 말씀이 실제가 되면 죄가 드러난다. 
    12월27일 2020년 마지막주일입니다. 2020년 1월 첫주의 설교는 갈라디아서였습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다시 복음으로 라는 설교를 시작으로, 이사야서, 빌립보서, 그리고 누가복음의 바톤을 받아 내년에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복음의 실제가 되면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가?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실제가 됩니다. 그리고 오늘 제목처럼 말씀의 실제가 되면 죄가 드러나, 하나님 앞에 무릎꿇을 수 밖에 없으며, 무엇이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올 해 주시는 마지막 주일 말씀을 통하여 올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열어가는 새 힘을 받는 귀한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순종이 기적을 낳는다는 원리를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베드로를 찾고 부르신 장면이 몇군데가 있는데요. 요1:41절 이하에 보면 안드레가 먼저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형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하고 데리고 갑니다. 처음만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마4:18절이하에 보면,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막1:16절 이하에 보면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시는 장면이 마태복음과 거의 똑같습니다. 가버나움사역이전에..
    그런데 오늘 눅5장의 이 사건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부르심의 장면이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첫번째만남-요한복음1장에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장차 게바라 하리라.
    두번째 만남-그물을 던질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세번째 만남-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네번째는 부활이후 요21장에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한 사건으로 봅니다.
    오늘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그물을 던질때의 만남과 같이 보고, 누가복음에서는 더 세밀하게 설명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같은 사건이든 아니든 확실한것은 요한복음1장에 먼저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연유인지 모르나...다른 제자들과 달리 베드로장모가 소개되는 것으로 보아, 가정을 꾸리고 있는 베드로가 생업전선에 다시 뛰어든것은 확실해보입니다. 이름까지 바꿔주면서 부르셨던 예수님을 어떤 이유가 되었든 한번 떠났던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눅5장에 다시 찾아오시는 모습입니다. 한번 떠났다가 그다음 만날때, 참 쑥쓰럽지요. 그리고 그물이 찢어질정도의 풍성한 수확앞에 왜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했는지를 설명하는데 떠났다가 다시 오셔서 부르시는 모습앞에 그럴수있음이 이해가 됩니다.
    아무튼 게네사렛호숫가, 마태나 마가복음에서는 갈릴리바다 같은 곳인데요, 수많은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베드로의 배를 이용하십니다.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셨고, 말씀을 마치신 후 눅5:4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지침을 주십니다. 여기에 게네사렛호숫가에서 평생을 어부로 살아온 베드로의 상식과는 많이 차이가 있는 지침이라는 것입니다. 당시대 밤에는 고기들이 떠오르고, 낮에는 깊이 들어가서 밤에 그물을 던졌다고 합니다. 밤새도록 철야작업을 하고 낮에 그물을 정리해서 다음작업을 준비하는 것이지요. 지난 밤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잡은 것이 없이 허탈한가운데 작업을 마무리할때, 주님이 오셔서 말씀을 주시고,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려면, 자신이 가지고온 그동안의 상식을 뛰어넘어야 가능합니다. 또한, 이중삼중의 일거리를 감수하는 댓가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의 결단을 보십시오.
    5절,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즉각 행동하면서 순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끌어내리고, 복을 받는 통로라는 것입니다. 복을 바라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 탐욕으로 시험삼아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순종하는 것 아니라...주님 말씀이니 순종합니다. 하는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하는 마리아의 고백처럼 말입니다.
    주님이 이것을 원하십니다. 삼상15:22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를 기억하십시오.
    순종이 기적을 낳고, 복을 낳고, 은혜를 낳는 출발선입니다. 
    2. 은혜가 은혜가 되고, 복이 복이 되려면, 자신을 정확히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현실직시라고도 하지요.
    베드로가 언제 고꾸러지는 지를 잘 보십시오. 그물을 내려 걷어올리는데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6절, 고기를 잡은것이 심히 많아...그물이 찢어집니다. 그래서 다른 배...아마 야고보와 요한이겠지요. 친구배를 불러 두 배에 가득채우게 됩니다. 터질정도의 만선입니다. 이때...자신을 보지 못합니다. 
    풍성할 때...그때는 주님이 주신 복에 겨워서, 주님바라보기보다, 주신 그 어떤것에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말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좋아, 이것도 좋아, 많아 너무 많아...하면서 끌어안기 바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6절을 잘 보십시오.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찢어지는지라=디알렛소, 직설법, 미완료, 수동태...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다입니다. 미완료시제이기 때문에 계속 찢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많이 잡은 물고기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군다나 7절,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배가 가라앉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아무리 많은 물고기를 잡은 들...그물이 찢어지면 무슨 필요가 있으며, 아무리 감당못할정도의 많은 물고기를 실고 돌아오다 배가 가라앉아버리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물이 찢어져도 작은물고기 쓸모없는 물고기는 다 빠져나가고 큰 물고기들은 주님이 붙잡아 주셨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배가 가라앉아가지만, 아주 가라앉지 않도록 주님이 붙잡아 주셨을겁니다. 무슨 깨달아지는 것이 있습니까? 물고기에 집중하면 한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는것이요, 만선의 배에 집중한들...한순간 가라앉고 마는 것들입니다. 물고기를 잡게 하시고, 배를 붙잡아주시는 이...전능하신 주, 창조주 주...그 주님이 보여야 하고, 주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런 주님을 한번떠나고, 다시 찾아오신 주님앞에서 자신이 보인것입니다. 자신의 허물이 보인것입니다. 자신 역시 주님이 내치시면 바닷속에 가라앉아버릴 그런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것입니다. 자신의 더러움, 수치, 죄악들 앞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8절,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풍성함을 보고, 축복을 보고 이렇게 무릎을 꿇었겠습니까? 터진 웅덩이를 발견한것입니다. 아!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자신의 무가치함을 보고 이렇게 탄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고백을 한 구약의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사6:5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2020년을 보내면서 자신의 실존을 좀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가 아닌 주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나를 붙잡아 주소서! 아멘!~
    3. 무리가 되지 말고, 제자가 됩시다.
    갈릴리 가버나움에서의 치유와 축사, 그리고 게네사렛호숫가에서의 가르치심...이에 따라온 사람들을 보십시오.
    5:1절 무리가 몰려와서, 이 무리들이 계속 나옵니다. 6:10 무리를 둘러보시고, 6: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8:4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8:40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무리들은 치유받기 위해서, 고침받기 위해서, 복을 받기 위해서 몰려다닙니다. 자기맘에 맞으면 환영하고, 자기에게 불리하면 배척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하늘보화는 숨기셨습니다.
    이에 반하여 베드로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0절,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마4:19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같은 부르심이지만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심판적 이미지가 강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많은 어부를 불러 죄인들을 낚게 한다 말합니다.
     "렘 16:1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 그 후에 많은 포수를 불러다가 그들을 모든 산과 모든 언덕과 바위 틈에서 사냥하게 하리니" 
    또한 하박국도 하나님이 낚시로 사람들을 낚아 심판할 것이라 말합니다. "합 1:14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15 그가 낚시로 모두 낚으며 그물로 잡으며 투망으로 모으고 그리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16 그물에 제사하며 투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됨이니이다" 
    물고기는 물 안에 있어야 생명을 건집니다. 물 밖으로 낚이면 물고기는 죽습니다. 때문에 마가와 마태가 소개하는 '사람을 낚는 어부'는 심판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에 반해 누가는 '사람을 취한다' 말합니다. '취한다'는 표현은 잡아서 살린다는 뜻입니다. 심판보다 구원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물론 성경에서 심판과 구원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등장합니다. 심판과 함께 구원이 일어나고 구원과 함께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다만 마가와 마태가 심판에 조금 더 초점을 두었다면 누가는 구원에 초점을 더 맞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방인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복음으로 살리는 자가 바로 제자입니다. 
    무리들은 자신들의 안위에만 집중되어 있지만, 제자는 눅5:11절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만 보이고 다른것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와 반대인 사람이 롯의 처였고, 사울왕이었습니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물질에 매여 심판을 받은자이고, 오직 사명에 매이고, 주님만 보이는 사람은 주님만 따라가게 되어있습니다. 
    게네사렛호숫가에서의 베드로의 배를 바라보십시오. 그물이 찢어지고 배가 가라앉는 상황...
    그러나 그런 상황속에서도 붙잡아주시는 하나님...아, 영혼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눈에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주님이 눈길을 주시면 돌아옵니다. 바울이 그렇잖아요. 어떻게든 돌아오게 하십니다. 요나가 그렇잖아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든, 사람을 취하는 사람이 되든...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의 발자취만 따르는 무리가 아닌 제자가 되는 우리모두가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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