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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눅4:31~44 전도의 방편 치유와 축사
    신약 강해/4복음서 2021. 2. 24. 12:18

    눅4:31~44 전도의 방편 치유와 축사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 전격적으로 메시야,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이사야서61장을 선포하시면서 이사야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가 자신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갈릴리 나사렛 고향사람들은 환영하기는 커녕 낭떠러지로 끌고 가서 죽이려했습니다. 사역을 시작하시려는데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배척하고 반대한 이들이 누구입니까? 가까운 고향사람들입니다. 더군다나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 메시야를 기대하며 하나님을 섬긴다고하는 이들입니다. 영적, 육적으로 친근한 이들이 반대할때 ... 사명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에 대한 우리 주님의 반응은 당당하시며, 변함이 없으시며, 곧바로 다른 지역인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가셔서 계속 사역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한결같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를 다시 보게하며, 눌린자를 자유롭게 하고 은혜의 해, 하나님나라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강력한 치유와 축사를 행하셨습니다. 본격적인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우리가 맞닥뜨릴 대상이 누구인지, 어떻게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할 것인지 발견하는 귀한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리가 만날 대상들이 누구인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들어가신 곳이 가버나움에 있는 회당입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북쪽에 가장 큰 대도시이며 상업이 활발한 곳, 무역의 요충지입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당연히 회당으로 가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듣고 가르침을 받고 기도합니다. 회당엔 회당장이 있고, 부정한 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회당지기들이 있었지요. 요즘 교회들어가려면, 열체크도 하고, 출입명부 작성하듯이 말입니다. 
    이곳에 예수님도 들어가셔서 나사렛회당에서처럼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권위있는 가르침에 다 놀라운 반응을 보입니다. 이때 가장 놀라운 것은 눅4:33절,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발작을 일으키고 소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회당에 들어갈 수 없는 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들어왔을까요? 회당장이나 회당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겁니다. 예수님이 등장 하시기 전까지는 일반인들과 별반 다를바 없었던 것입니다. 청소할때 보면 먼지같은 것들이 잘 보이지 않다가 빛이 비취면 다 드러납니다. 이런 것처럼 참 빛이신 주님의 등장으로 더러운 귀신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처럼 회당안에, 요즘으로 말하면 교회공동체 안에 이처럼 가장한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사역을 방해하는 것이며, 이들을 온전하게 하는 것,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성령이 임하면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자를 자유롭게 하는 사역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악한 영에 눌리고 포로된 자...가 바로 복음을 전할 대상자들인 것이지요.
    그 다음 예수님이 만난 사람은 38절, 회당에서 나와 시몬에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더라. 열병에 걸린 시몬의 장모를 만나러 가셨습니다. 열병에 걸렸다는 것은 레위기 26:16절에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내 법도를 싫어하여 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 내가 이겉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열병에 걸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문둥병, 소경, 혈루병등 여러가지 질병들을 유대인들은 이렇게 해석을 한 것입니다.
    이런 질병에 걸렸다는 것은 당시대 사회에서 격리되고 손가락질을 받는 소외된 자들, 약한 자들입니다. 
    오늘날로 바라보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사회에 질타를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당시대에 소외받고 천대받는 자 그들을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치유하셔서 사회안으로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만날 대상들이 이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바라보면 이런사역을 하신 후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붙잡는 부분이 나옵니다. 
    4:42절,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만류했다!이 말은 붙잡다, 억제, 제지 하는 모습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하시면서 떠나십니다. 가버나움이 어떤곳이라고요. 상업 무역의 도시, 이스라엘 북쪽의 대도시...이렇게 사람도 많은데서 교회를 세우면 금방 부흥될 것 같잖아요. 그러나 예수님은 떠나십니다. 지금 당장의 명예, 지금 당장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넓은길이 아닌 좁은 길, 협착의 길을 따라 또 떠나십니다. 우리가 만나야할 사람, 우리가 가야할 곳 이 바로 이런 사람 이런 곳입니다. 아멘~~

    2. 성경적인 축사란
    눅4:31~37절 말씀은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축사하는 모습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회당에 있는 것이 충격입니다. 우리의 일반적 사고는 교회가 영적으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같은 회당에 귀신들린 자가 있다는 것은 형식적인 신앙생활, 율법적인 신앙생활은 영적전쟁에서 아무 효력,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주님과 더 친근한 교제가 필요하고, 성령의 인도와 보호가 필요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이 될 때...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고, 영적으로 강해지는 것입니다.
    축사의 단계를 보십시오. 32절, 가르침에 놀랐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말씀의 빛이 비추어진 것이지요.
    그러니까 33절, 더러운 귀신이 드러난 겁니다. 발작을 일으킨 것입니다. 말씀이 임하면 죄가 드러나고, 빛이 비취면 어둠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다음...35절,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선포하니...귀신이 떠나가고 그 사람은 상함이 없이 온전하게 된 겁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축사입니다. 요즘도 더러운 귀신에 들린자들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예수님께서 행하십니다. 예수이름으로 떠날지어다! 선포하면 되는 것입니다. 

    3. 성경적인 치유
    38절에서 41절 말씀입니다. 치유하시는 모습을 보면 39절, 열병을 꾸짖는 모습, 40절 말씀에는 일일이 그위에 손을 얹는 모습입니다.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치유하는 모습이 마8:15, 막1;31 손을 만지시니....손을 잡아 일이키시니...
    질병치유에 있어서 질병의 부위에, 또는 질병의 부위와 상관없이 신체의 일부인 손을 만진다. 안수한다는 개념으로 치유하셨습니다. 또한 꾸짖었다는 것은 질병을 꾸짖고, 눅8:24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이 의미는 선포입니다. 선포하심으로 무생물도 잔잔케 되고, 질병은 치유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치유의 모습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것을 고치신 예수님과 우리에게 고치라고 하신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치유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침받을지어다!
    선포하면 주님이 행하십니다. 

    4. 축사와 치유받은 분들의 반응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눅4:34절 보십시오. 귀신들린 사람이 이렇게 소리지릅니다.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회당에 있는 다른 사람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직접 자기를 선언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정확하게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을 보십시오. 꾸짖고 나가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반대로 마16장에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에 대한 베드로의 답변, 마16:16절,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께서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베드로의 고백에 어쩔줄 몰라하시면서 다 주십니다. 귀신은 정확히 알았지만 주님은 꾸짖으시고, 베드로의 앎에는 칭찬하셨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귀신은 알기는 알지만, 그것으로 끝! 믿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넘어지고 넘어지지만, 예수님을 붙잡고, 따라가고, 믿었습니다. 아는 것은 믿음으로 나아가야 되고, 이 믿음은 행함으로 이어져야 온전한 믿음이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치유받고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눅4:39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치유받고 즉시 수종드는 모습, 여기에서 수종이란, 섬김, 순종, 복종의 모습입니다. 언제요? 내일요? 다음에? 내년부터? 아뇨 곧, 즉시, 당장입니다. 이것이 치유받고, 은혜받은 자의 마땅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요? 다른사람 강력하게 치유받은 것 보고, 시기하고, 나도요 더 요 하면서 조르는 모습은 아닙니까? 감사와 순종이 능력이고, 우리의 마땅한 자세여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도전의 말씀이고, 우리의 신앙을 뒤돌아보게 합니다. 회당에 귀신들린 자처럼 형식적인 예배자로 그냥 의식없이 살고 있지는 않는지? 귀신들린 사람,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사회에서 소외받고 가난한 자들을 찾아다니기보다 권세있고 물질있는 자들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으면서, 무엇이 부족한지 어린아이가 졸라대듯이 더 더더 하는 구걸의 신앙은 아닌지?
    또한, 치유와 축사를 강력하게 행하신 가장 큰 이유가 43절 말씀처럼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높이고, 나를 드러내고, 유명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역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봐야 합니다. 
    주님처럼 오직 하나님영광, 하나님나라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쓰임받고도 버려지는 모래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행하심을 바라며 믿으며 선포하면, 주님이 행하십니다. 쓰임받는 주의 일꾼 하나님의 동역자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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