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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눅5:27~39 제자의 조건(세리 레위를 부르심)
    신약 강해/4복음서 2021. 3. 4. 11:00

    눅 5:27~39 제자의 조건(누구를 부르셨나요?)

    작년에 이동국축구선수가 은퇴를 했는데요. 42세까지 선수생활한 것 자체가 대단하고, 10년동안 대표팀이 스트라이크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때 같이 하지 못하고 이때 국가대표로 발탁되지 못한 것이 평생에 한처럼 남아있다고 합니다.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부름받은 박지성, 이천수, 안정환같은 선수들은 월드컵 4강의 기쁨을 맛보았고, 안타깝게도 히딩크로부터 외면을 받은 이동국은 아픔의 눈물을 흘려야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은 부름을 받고 어떤 사람은 외면을 받습니다. 이런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부르시는데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 같은 어부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마태라고하는 세리 레위를 부르십니다. 주님의 부르심, 주님의 선택하심, 조건이 무엇일까? 누구를 부르셨나? 모습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 부르받은 자로서의 삶을 생각하면서 2021년 불러주신 주님께 화답하는 날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주님은 세상에서 소외당한 자, 아웃 사이더를 좋아하시고, 부르십니다.
    베드로를 부르신 주님께서 이번에는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 레위를 찾아가십니다. 27절 말씀인데요.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름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더라. 마태 레위의 부름과 레위의 즉각적인 순종입니다. 이에 대한 당시대 종교기득권자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실랄하게 비방합니다. 왜 그랬을까? 마태 레위의 직업은 세리입니다. 당시대 세리들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로마정부에 보내는 것입니다. 이때, 부과된 것보다 더 많이 걷어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워, 세리를 향하여 강도와 소매치기에 비유하기도 하였고, 광야에서 가장 잔인한 짐승은 곰과 사지이지만 도시에서 가장 잔인한 짐승은 세리와 기생충이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리들을 극도로 미워하였고 친로마주의자인 그들을 이교도로까지 취급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세리들은 성전이나 회당에 들어가기도 어려웠고 공중앞에서 기도하는 것과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도 거부되었습니다. 이런 세리 마태 레위를 찾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당시대 사람들은 그저 놀람, 충격 자체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을 바라본 세리들, 특히 마태레위는 어떤 마음일까요? 이름이 마태=맛다이오스...히브리명 ‘맛다디아’ 여호와의선물, 레위는 히브리식 이름으로 연합된 자라는 뜻입니다. 레위지파는 구약의 제사장 지파잖아요. 그러니까 마태레위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과 연합...다분히 종교적인 이름입니다. 요즘 우리기독교로 보면 요한, 하영, 다영, 바울 같은 이름들이지요. 이런 이름을 가지고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마태레위입니다. 레위는 지금 세관에 앉아 손가락질을 받아가면서 일을 하고 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통하여 갈릴리에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메시야 예수에 대한 소문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문으로만 듣고 있던 예수가 자신을 향하여 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일까요? 무슨 생각이 들까요? 다 들 나를 향하여 침을 뱉거나 손가락질을 하고 가는데..사람 취급하지 않고 짐승처럼 바라보는데...이 분은 어떨까? 나를 향하여 뭐라하실까? 왜 좋은 이름을 가지고 이렇게 사느냐고 질책하실까? 두근두근, ...그런데 오셔서 “나를 따르라” 예????!!! 28절 아멘~ 주저함이 없이 즉각 순종! 그리고 주님을 자기집으로 초청하여 큰 잔치를 열더라. 여기에 초청된 대부분의 인사들은 같은 직업인 세리들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처럼 세리 레위를 부르시고, 집으로 찾아가신 사건은 당시대 일반상식을 뛰어넘는 모습입니다. 이 모습이 종교지도자들과의 다른점이며 주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각인시켜 주신 사건입니다. 세리는 지난주에 말씀드린 나병과 중풍병자...당시대 율법의 저주와 같은 나병, 자기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풍병자같은 모습이 바로 세리와 창기, 여자들입니다. 소외받는 이들을 제자로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가족으로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세리들이 기뻐하며 주님을 초청하여 큰 잔치를 열지 않습니까?
    눅19장에 레위와 같은 세리장 삭개오를 부르시고, 집으로 찾아가신 사건...똑같은 이미지 아닙니까? 
    세상은 있는 자, 유명한 자, 가진 자, 권력있고 힘있는 자를 찾지만, 우리 주님은 외면당하고 멸시당하고 천대받고 버림받는 자들을 찾아오십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잖아요. 우리 주님은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2. 바리새인들의 반응을 바라보면서 편견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마태세리의 집으로 가시는 모습을 바라본 당시대 기득권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크게 두가지의 질문으로 비방합니다. 
    1)30절,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2)33절,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세리가 베푸는 잔치집에 들어간 모습을 죄인과 하나되었다고 비방합니다. 유대종교인들의 눈에 세리를 죄인과 동일시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이를 같은 죄인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31절,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의사는 누구에게 필요합니까? 병든자입니다. 병든자에게 진정 필요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의사입니다. 반대로,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없고, 의인에게는 구원자가 필요없지요! 여기에서 건강한 자, 자칭 의롭다고 하는 자...그들이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인 종교기득권세력들입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환호와 칭송을 받고 사는 자들이요, 이들에게 구원자 메시야는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을 향하여 평토장한 무덤같으며, 맹인이며,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실랄하게 비난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들의 두번째 질문-금식하며 기도하지 않고 왜 먹고 마시느냐?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다른 것 아닙니다. 외식으로 하지 말고, 마음으로 진정으로 하거라. 진짜 금식은 신랑이 없을때이니라..무슨뜻일까요? 신랑의 존재가 내 마음속에서 느껴지지 않을때, 그땐 통렬한 회개와 부르짖음과 금식이 필요합니다. 이때하는 것, 우리 주님은 당시대 손가락질을 당하며 비참하게 소외당한 세리와 여자들 창기들 죄인들을 향하여 손을 뻗으시며, 안으시며, 그들의 고통을 안으셨습니다. 이들이 바로 병든 자요, 죄인입니다. 이들이 바로 나병 문둥병자이고, 중풍병자입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치유와 치료의 손길로 함께 하셔서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으로 다가가셨습니다.
    이들의 공통적인 고백을 기억하십시오.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눅5:8절,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주님의 부름에 대한 반응이지요. 우리 역시 없다. 가난하다, 탄식과 한숨으로 끝나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주여 나는 죄입니다. 하는 통렬한 회개의 기도, 이런 마음으로 가슴을 치는자를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애통하는 자를 찾아오십니다. 주님, 치유의 주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구원자 그리스도 주님이 필요합니다. 찾아야 합니다. 그 주님이 찾아오셔서 그리고 이렇게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사랑하는 나의 딸아, 나를 따라오너라~

    3. 주님을 따르는 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세리, 죄인을 찾아오시는 주님, 그리고 마태 레위를 부르시는 주님...이 모든 것은 주님이 주관자가 되셔서 일방적으로 하신 것입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능동적으로 무엇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치유되고, 구원받는 이런 것들을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적인 선물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런 선물을 받은 우리, 지명당한 우리가 할 일이 있다는것입니다. 세리마태가 한 일, 큰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끝일까요? 눅19장의 세리장 삭개오가 주님을 초청하고 잔치
    하고 끝이던가요? 눅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주님이 뭐라고 지적하지도 않았는데, 자발적 능동적 결단의 고백을 합니다. 
    세리마태레위는 어떨까요? 눅5: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38절,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여러분, 일반상식으로는 묵은 포도주가 좋다고 합니다. 몇년산, 몇년산이라고 하잖아요. 이런 의미를 비유적으로 당시대 유대인들이 오래된 종교, 유대교를 지칭해서 유대교가 좋다고한 말을 우회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새포도주가 바로 예수그리스도 복음인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는 옛 그릇 그대로, 옛 마음 그대로, 옛 가치 그대로 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담는 그릇도 바뀌어야 한다. 가치관, 본질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헤어져 아무것도 아니다! 싹 갈아엎어야 합니다. 옛날 선거철에 이런 표어가 있었다고 합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1950년대 표어인데, 어찌 오늘날도 먹히는 표어잖아요. 못살겠다 갈아보자~~~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 주님을 따르는 자, 베드로처럼, 마태레위처럼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선물받은 자의 마땅할 삶의 모습이며 결단이며 각오가 되어야 합니다. 
    반대로 부자청년, 부자관원을 생각해보세요. 예수님께 찾아와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주님이 부르시는 제자들,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누구일까요? 새포도주에 기뻐하면서 묵은것, 옛 가치, 본성, 그동안 주님보다 더 귀하게 여겼던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오직 주님만 필요합니다. 주님으로 행복합니다.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주님만 주님만 하고 따르는 자 입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그 사람 우리가 되어, 주님으로 만족한 올 한 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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