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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6:1~11 교회의 사명(안식일에 일한 까닭)신약 강해/4복음서 2021. 3. 7. 15:45
눅6:1-11 안식일에 일한 까닭, 교회의 사명
교각살우:소뿔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인다. 사호한 일로 인해 큰 일을 그르친다는 사자성어, 비슷한 말로 소탐대실:욕심을 부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어버린다. 요즘시대를 코로나와 함께 하는 시대라고 하는데요.
코로나로 인하여 많은 영세상공인들이 무너지고, 작은교회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을 꼽으라고 하면 교회가 아닌가 합니다. 교회공동체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사회에 지탄을 받고 있는데 교회의 특징이 예배인데, 예배드린다고 모였다가 이런 불상사가 생긴 것이지요. 그래서 대면예배, 비대면예배라는 말이 생겨나고 예배에 제약이 따라왔습니다. 이런 정부시책에 반대하면서 고집부리다가 교회폐쇄라는 행정명령을 받은 교회가 있습니다. 갑론을박의 많은 의견들이 있지만, 교각살우, 소탐대실을 오늘날 교회에 비추어보면, 신앙생활하면서 뭘 바로잡겠다고 하다가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예배고집부리다가 복음의 문이 다 닫혀버리는 것은 아닌가 심히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누가복음 6장은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비벼 먹는 제자들의 모습, 안식일에 손마른 사람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는 문제, 오늘날 교회가 전통처럼 지켜오는 교회에서의 예배, 신앙의 형식등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안식일이란?
안식=편안하게 쉼, 히브리어 샤바트=그치다 중지하다 쉬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만드시는 창조사역을 하셨습니다. 여섯째날 사람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시고 그 다음날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6일간 일하시고 일곱째 날 쉬셨습니다. 사람은 어때요? 창조되자 마자 다음 날 곧바로 안식일부터 시작합니다. 첫 날이 쉼 인것이지요.
우리 주님께서 안식에 대한 가장 적절한 말씀을 주셨는데,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여기에서 표현하신 쉼이 바로 안식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쉬는 날, 안식하는 날, 한마디로 자유하는 날입니다.
안식의 체감도가 가장 극에 달한 세대는 출애굽세대입니다. 애굽에서 400년간의 비참한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노예, 종, 비참하지요. 여기에 무슨 자유가 있고, 내 뜻이 있어요? 마지못해 사는 인생아닙니까? 대대로...이런 비참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의 하일라이트는 홍해바다잖아요. 홍해바다...다 수장되는 겁니다. 애굽군대가 수장되고, 애굽에서 종살이했던 지긋지긋한 굴레들 벗어버리고, 이제는 자유다! 하면서 도착한 곳이 광야, 시내산입니다. 여기에서 율법, 십계명을 받습니다. 십계명중 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이 규례, 계명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애굽에서 구출, 구원해주신 분, 노예에서 자유를 주신 분, 그 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날의 가장 큰 규례가 일을 멈추는 것이잖아요. 왜 일을 멈춰라 하셨을까요? 이것이 득일까요? 실일까요? 하루 일하지 못하면 손해입니까? 이익입니까? 안식일을 사람을 위해서 주신것일까요?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것일까요? 사실, 하나님은 안식일이 없어요? 우리를 위해서 안식일을 주셨는데, 이 안식일 쉬면 우리에게 득일까?실일?
저는 시골출신이라 나무도 잘라보고, 풀도 베어보고, 벼도 낫으로 추수해봤습니다. 일을 하려면 톱날을 갈아야하고 낫을 갈아야 합니다.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계속 일하면, 톱날도 무디어지고, 낫도 무디어져서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고 힘은 힘대로 들게됩니다. 그래서 중간 중간 쉬면서, 쉴때 톱날도 갈고, 낫도 갈아 다시 새롭게 일을 하는것입니다. 안식일 쉬는 것이 손해같지만, 하나님이 주신 계명대로 쉬면 우리의 생체리듬과 삶의 리듬에 활력소를 주어 득이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안식일의 핵심이 제사하는 것, 예배하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날입니다. 이 날의 핵심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출되어,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평생 쉼없이 종살이 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 안에서 자유구나! 물질적인 손익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손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얼마나 자유한 일인지...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랬는데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 종교전문가들이 안식일 규례들을 만든것입니다. 39개의 카테고리를 만들고, 각 카테고리마다 6개의 시행령, 세칙을 만들어 안식일 시행령만 234개나 있는것입니다. 몇 가지 세칙...아이를 안아주는 것 허용, 그런데 아기손에 어떤 물건이 들려있는 상태에서 아기를 안아주면 그것은 물건을 드는 일을 한것이다. 부부동침, 물도 긷지 못하고, 짐승을 타는것, 새나 고기를 잡는 것, 오리이상걷지못하고, 병도 못고치고, 새알크기의 돌보다 무거운 짐을 옮기지 못하고, 요리도 못하고...이런 규례들을 만든 이가 있으면, 이런 규례들을 잘 지키는지 감시자가 있겠지요? 그래서 안식일이 기쁨이 넘치는 안식일이 아니라 북한의 감시체제처럼 감시자들에 의해서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날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오늘 본문 말씀에 두가지 사건이 등장합니다.
1)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비비어 먹는 사건을 통하여 가난한 자들, 약한 자들을 보는 눈을 가지자는 것입니다!
6:1절,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었다! 안식일은 규례를 해석하는 전문그룹 종교기득권자들이 있고, 잘 지키나 감시하는 그룹들이 있는데 그들의 레이다에 딱 걸린것입니다.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ㅡ그리고 이렇게 비난합니다. 2절,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못할 일을 하느냐? 여러분 밀이삭, 벼이삭 먹어보셨어요? 생 밀이삭을 껌처럼 씹어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밀이삭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안식일 규례, 잣대를 들이밀기 전에, 생명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얼마나 배가 고프면 밀이삭으로 배를 채울까? 가난한 이웃을 봐야 합니다.
신23:24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다만 그릇에 담아오지는 말라, 25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낫을 대지는 말라.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배려잖아요. 규례, 계명이라는 것이 가난한 자들 살리기 위한 법으로 보아야지 가난한 자들, 약한 자들 옭아매는 법으로,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 계명, 말씀의 원의도를 잃어버립니다. 하나님 계명의 핵심은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인데...이 둘을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감시자들의 눈을 가지지 말고, 예수님의 사랑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약한 자들 가난한 자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2)예수님께서 안식일날 병을 고치는 일을 하시는 모습을 통하여, 교회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절,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오른손 마른사람...근위위축증으로 손을 움직이기가 힘든 사람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석수장이라고도 해요. 직업이 무엇이든지간에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일을 해서 가정을 부양해야 하는데 이 몹쓸병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안식일에 무슨 평안함이 있겠어요. 무슨 기쁨과 즐거움이 있겠어요?
이런 안타까운 사람과 예수님을 바라보는 이들, 안식일이 지키는지 아닌지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7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엿보다!
이런 상황을 우리 주님은 다 아십니다. 우리같으면 피해보지 않으려고 조심하겠지만...우리 주님은 오히려 의도적으로 병을 고치십니다. 8절,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10절, 네 손을 내밀라...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회복...아포카디스테미,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거나 회복시키다...원래대로 회복, 치유입니다.
치유사역자전문훈련원에서의 치유가 바로 이런 믿음입니다. 주께대한 믿음, 주님이 치유하십니다. 선포하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손마른 사람..그동안 직장, 생업을 잃었던 이가, 이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고통가운데 질병가운데 있던 이가, 안식일 참된 안식, 평강, 즐거움, 기쁨이 회복되었지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참된 기쁨 자유가 회복되었지요. 우리 주님은 아픔 고통 두려움 가운데 있는 이를 회복, 치유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안식일 감시단들은 이런 주님을 고발하려고 합니다. 노기, 분노가 가득합니다.
생각을 바꾸어서, 고통, 질병가운데 있는 이가 본인이라면, 가족이라면, 사랑하는 이라면 이렇게 어떨까요?
한시가 급한것 아닙니까?
주님께서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9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합니다. 논할 가치가 없어요. 선을 행해야지요! 생명을 구해야지요! 당연한 것 아닙니까? 안식일 개념을 그대로 주일로 옮겨와 보십시오. 앰블런스 운전하는 일, 응급실에 있는 간호사, 의사, 소방대원...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기독교인이라고 주일 날 다 쉬면, 누가 근무합니까?
생명을 살리는 일,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그리스도인이 앞장서서 할 일입니다.
우리는 혹시 안식일 감시자들, 종교기득권자들처럼, 예배를 잘 드리나? 주일성수 잘하나? 헌금은 잘하나? 이런것 감시자가 되어서 자기도 황폐화지고, 그 주변도 무거운 짐진자처럼 어쩔수 없이 형식만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주님은 감시자들이 있는 것을 아시고, 일부러 안식일 생명을 살리고 선을 행하는 일을 하십니다.
안식일 규례에 묶여 형식에 묶여 고통가운데 있는 이들을 자유케 하십니다.
여러분, 오늘날 교회가 이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코로나19의 확진자 확산을 막기 위해서 비대면예배의 행정명령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억지로 예배를 강행하면서 예배를 고수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정부시책에 따르며 코로나 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비대면에 동참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무엇이 중합니까? 모여서 예배하는 전통적 예배, 형식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니 하는 믿음으로 비대면으로 드리면서 전염병의 확산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힘쓰는 것이 맞습니까?
어떤것이 생명을 살리는 일일까요? 형식적인 예배를 고수하려다가 복음의 문이 닫히고,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것은 아닐까요? 작은것을 고치려다 큰 것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신 주님과의 관계회복과 주님이 주시는 치유로 잃어버린 즐거움을 회복하는 것이진정한 예배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이 예배를 회복하므로 진정한 교회의 사명인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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