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눅7:1~17 놀라운 복음의 능력, 은혜입니다!신약 강해/4복음서 2021. 3. 16. 07:08
눅7:1~17 복음의 능력, 은혜, 은혜, 은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복음이요 하나님나라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능력은 누구에게 나타나고, 복음을 받을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한 선포가 오늘 말씀입니다. 눅6:44절 말씀을 보면,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안다고 가르치시고, 그 가르침의 확실성을 두 가지의 치유를 통하여 증명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로마군대 백부장의 종을 치유하시는 사건과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신 사건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치유와 축사는 단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 백성으로 이끄는 것이 목적입니다. 구원이 목적인 것이지요. 그럼, 이 두 사건을 통하여 어떻게 하면 치유받고 구원 받는가에 대한 분명한진리를 깨닫는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누가 하나님의 관심을 받을까?
복음서 시대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하에 압제당하고 있던 시대입니다.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유대민족을 짓밟는 사람이 유대총독이고, 그 수하에 로마군대를 통솔하는 군인들, 군대천부장, 백부장들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로마군대백부장은 두려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오늘 등장하는 로마군대백부장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자기 수하에 있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자,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에게 부탁하여 당시대 선풍적인 바람몰이를 하고 있는 예수라는 분에게 보냅니다. 당시대 종은 노예로서, 물건취급을 받던 시대이고, 싫으면 버리고 짓밟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런 종을 사랑했다고 성경은 표현합니다. 7:2절,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 종을 사랑했다!
이 추운 겨울에 가끔 훈훈한 소식들이 있잖아요. 이름모를 독지가가 몇 천만원을 놓고 갔다. 쌀을 몇십포대 놓고 갔다. 이런 사람을 표현하기를 익명의 독지가, 사랑의 천사, 기부천사, 기부왕이라고 부릅니다. 믿지 않는 사람 가운데서도 이처럼 선한 분들이 계세요. 믿든 안믿든 이런 선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훈훈하고 살맛나는 세상인 것은 맞습니다.
또한 이 백부장이 한 일이 있는데, 5절 말씀입니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회당을 지어 드렸다. 로마군대백부장은 두 말하면 잔소리라고 할 정도로 선한 사람, 칭찬받을 사람, 존경받을 인물입니다. 이방인이고, 로마장교이지만,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칭찬하고 사랑하고 높임을 받아 마땅하지만 이것이 구원받은 증거는 아닙니다. 그럼, 이분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이방인인 로마군대백부장을 향하여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눅7: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이렇게 탁월한 믿음을 가진 자를 보지 못하였다! 예수님이 칭찬하시는 믿음, 그것은 선포한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주께 대한 말씀, 주님이 주신 말씀을 명령으로 알고 그대로 순종하는 믿음...이것이 바로 구원의 출발점입니다. 로마군대백부장의 삶과 행동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약한 자, 종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권력을 행세하는 이런 세상에 약자를 도우며, 없는 자를 세워주는 이런 백부장의 사랑이 조금씩이라도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더군다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조금더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이 왜 우리에게 역사하지 않을까요? 로마군대백부장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보십시오. 선포하면 선언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잖아요. 그래서 말씀을 믿는 믿음,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
또하나는 나의 삶을 통하여 말씀이 나타나는 행동...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관심을 끄는 것이며, 예수님께서 놀라워하시는 믿음이며, 복음의 능력이 실재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나는 안돼 안돼 하지 말고, 약한 자를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려는 몸부림의 삶이 되어질때 말씀의 열매는 맺히는 것입니다.
백부장에게서 배울 귀중한 교훈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가장 절실한 덕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배려입니다. 로마백부장에 대한 소식을 듣고 우리 주님께서 그래! 하시면서 한걸음에 그 집으로 달려가십니다.
7:6절,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이때 백부장이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 일행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기 어렵사오니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옵소서! 쉽게 말하면 집으로 들어오시지 마시고, 말씀만 선포하여 주십시오. 왜 그랬을까?
로마백부장은 이스라엘의 풍습, 유대교에 대하여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인 것같습니다. 그래서 회당까지 지어 주지 않았을까요? 유대인이 이방인집에 들어가면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 일행이 세리레위가 베푼 잔치집에 들어갔다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신다고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이와 같은 이치로 만약에 이방인 집, 특히 지배계층인 로마백부장의 집에 들어가면 또 어떤 비난이 쏟아질지 뻔합니다. 이런 것을 알고 있는 백부장이 예수님을 생각하사, 집에 들어오지 마시고 말씀만 하여 주십시요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비난받을 일로부터 아예 빌미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의도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배려입니다. 요즘, 이런 배려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코로나19의 전염으로 나는 떳떳하다고 방역수칙을 어기지 않으면 다른 분들이 불편합니다. 며칠전 인터넷뉴스에 이런 기사가 있었습니다. 부천에 보일러가 고장났다고 해서 보일러수리기사가 그 추운날 보일러수리를 다 마쳤답니다. 그런데 마지막 결재를 할때 카드를 주면서, 그 주인이 하는 말...제가 확진자인데, 병원가서 검사 받아보세요하더랍니다. 이 보일러 기사님의 상황이 어때요? 한 겨울에 일해서 여름까지 살아야할 분이 자가격리되고, 일 못하고, 배신당한 이 아픔, 참,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분노가 일어나지 않겠어요!!!
주변, 이웃을 향한 배려...특히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꼭 품어야할 마인드입니다. 나의 조그마한 양보와 손해와 미덕이 주변을 살맛나게 하고 하나님의 관심이 되며, 손해인 것 같지만 하나님은 복음의 능력으로 갚아주십니다. 아멘!!
11절 이하에 보면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죽음, 장례행렬이 나옵니다. 이 사건에서 누가 하나님의 관심을 보이는가?
12절,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 13절, 울지 말라 하시는 모습을 보니까 펑펑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독자, 과부, 장례...참 기가막힌 모습입니다. 울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여인 처절한 고통, 눈물 속에서 주님 찾지 않았습니다. 백부장처럼 말씀을 믿는 믿음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행렬이 주님이 가시는 길에서 맞닥뜨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나 펑펑 운다고 발견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맞닥뜨려야 됩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주님이 가신 길에 우연은 없습니다. 주님이 찾으신 것이지요.
룻기에 처절한 눈물의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엘리멜렉, 말룐 기룐 남자들은 다 죽고, 나오미와 룻이 고향 베들레헴에 돌아옵니다. 참 처절한 가정이지요. 먹고 살기 위해 며느리 모압여인 이방인 룻이 보리이삭을 주우러 밭에 갑니다. 누구네 밭에 갔을까요? 친족 보아스의 집이었더라.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처절한 가정을 보신 주님이 회복의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길을 인도하신 것이지요. 지금 나인성의 과부의 장례행렬과 예수님의 행렬이 우연같아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남의 장소인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 살아갈수있는 힘의 원동력을 다 잃어버린 텅빈 가정을 주님은 보시고,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찾으신 것입니다. 이 여인이 하나님을 찾았다는 말은 없지만, 기도했다는 말은 없지만,...기억하십시오, 세상앞에서 울지말고, 사람들앞에서 울지 말고, 하나님앞에서 우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치며 애통하십시오. 6:21절,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이 말씀이 실재가 되게 하십니다.
2. 복음의 능력의 범위가 어떠한가? 우리가 어느정도까지 기도해야 할 것인가?
7:2절,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죽을 병...기도의 대상입니다.
7:12절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14절,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죽은 자, 역시 기도의 대상입니다.
이 사건이 주는 복음의 능력의 범위, 치유의 범위, 기도의 범위...한 마디로 제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뿐이고, 주님께 맡길 뿐이고, 이루시는 이는 주님이신 것이지요.
주님은 어떻게 이루시던가요? 로마백부장의 종을 향하여서는 질병에 대한 어떤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저 백부장 너의 믿음대로 이루어질지어다. 네 믿음대로...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떨어져 있던 죽을 병에 걸렸던 이가 즉시 나아버린 것입니다.
죽은 자는 어떻게 살리셨습니까? 14절,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그리고 명령하십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님의 행동은 당시대 풍습과 유대율법 행동지침에 어긋나는 것들입니다. 관에 손을 댄다는 것은 부정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관에 손수 손을 대셨어요. 나병 문둥병자를 만지는 것 역시 금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5:13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죽은 관을 만지고, 나병 문둥병자를 만지며, 4:40절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여러분 이 행동이 바로 사53:4절 말씀을 이루시는 행동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우리의 질고를 친히 담당하시는 모습입니다. 이관, 대신 짊어지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복음의 능력에 제한이 없으니, 복음의 능력은 시공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니 믿는 우리는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믿음없음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주여 말씀을 믿는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나와 우리의 모든 질고,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깁니다. 이런 통렬한 기도가 터져나오기를 기대합니다.
3. 복음의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데, 이 은혜를 누리는 자 되려면...
1)날마다 주님을 초청해야 합니다. 로마백부장이 이 은혜를 받기 위해서 사람을 보내어 주님을 초청했습니다. 그런 것처럼 날마다 마음을 열고 주님을 초청해야 합니다. 물론 성령을 통하여 주님 우리 안에 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고백하고 초청하는 겁니다. 주님 마음을 엽니다. 주님 오시옵소서, 임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나를 지배하시고 다스려 주십시오.
2)말씀을 믿는 믿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신30: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고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주여 나는 주의 종이오니 말씀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믿는 믿음을 주십시오. 말씀을 입에 가슴에 늘 있게 해야 합니다.
3)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고백이 필요합니다. 로마백부장은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어 초청했지만, 나인성 과부는 주님을 초청할수도 없었을것이고, 그런 백그라운드도 없는 오늘날 흙수저처럼 보잘것 없는 분이십니다. 가진 것 없는 자에게도 찾아오시는 분, 드릴것 없어도 오시는 분,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라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누구를 비교하지 말고, 없다고 불평하지 말고, 가슴이 찢어지면 찢어진 그대로 이것도 은혜라고 하면서 통렬하게 부르짖을때 진짜 은혜가 실재가 되게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이 믿음 달라고 기도합시다. 이 험한 세상 우리가 무엇으로 헤쳐 나갈 수 있습니까? 오직 주님, 오직믿음, 오직 은혜밖에 없어요. 은혜 아니면 살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아멘..그래서 주님이 더 필요합니다. 아멘'신약 강해 > 4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눅8:1~21 하나님나라의 비밀, 하나님나라의 가족 (0) 2021.03.19 눅7:18~50 흔들리지 않는 신앙,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합니다! (0) 2021.03.17 눅6:12~26(49) 열 두 제자를 사도로 부르심 (0) 2021.03.11 눅6:1~11 교회의 사명(안식일에 일한 까닭) (0) 2021.03.07 눅5:27~39 제자의 조건(세리 레위를 부르심) (0) 2021.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