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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눅11:29~36 표적을 구하기만 하는가?
    신약 강해/4복음서 2021. 5. 9. 17:07

    눅11:29~36 표적을 구하기만 하는가?
    요즘시대를 보면 혼돈의 시대, 불신의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 거죠. 코로나19 백신이 나오자 대통령부터 맞으라고 아우성이었었는데요. 막상 백신접종을 맞으니까 백신을 바꿔치기 했다는 둥 여러말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백신에 대한 유언비어가 있는데요. 나노입자를 넣어 사람을 조종하고 믿음을 배반하게 한다는 말까지 돌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백신후유증으로 여러문제가 제기되자, 백신맞는 것을 꺼리거나 서로 눈치보면서 늦게 맞으려는 추세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뭐하나 정도가 없는 질서가 없는 혼돈의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문제는 어떨까요? 믿음생활, 신앙생활 문제는 어때요? 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과 조롱을 받는 대표적인 것이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기 때문아닙니까? 사회에 모범이 되고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어야 하는데 세상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믿음과 삶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지적해주십니다. 눅11:29절 말씀 “이세대는 악한 세대라” 37~52절 말씀에 6번이나 등장하는 단어 “화 있을진저!” 이 무서운 진노의 말씀앞에 우리는 어떠한가? 믿음을 진단하고 삶의 자리를 뒤돌아보는 귀한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주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왜 악한 세대라, 화있을진저 라고 하셨는가?
    1)눅11:14~26절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사역, 성령의 역사를 귀신들려서 한 일이라고 비난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이 얼마나 놀라운 사역입니까? 그냥 놀랄일입니까? 대서특필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기뻐뛰며 감격해도 모자랄판에, 더 큰 귀신이 들려서 작은귀신을 쫓아냈다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작은 귀신을 쫓아냈다고 폄하하고 비난한것입니다.  누가복음11장까지 오면서 얼마나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까?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자를 치유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 표적, 그러나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 성령의 놀라운 사역을 귀신의 사역으로 매도하고 비난하는 이들을 향하여 악한세대라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보지 않았다고, 내가 경험하지 못했다고, 지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성령의 사역을 폄하하면 안됩니다. 나의 믿음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지...믿는자들, 사역자들을 정죄하면 안됩니다. 
    2)16절 말씀 “하늘로 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29절, 표적을 구하되...표적을 구하는 이들을 향하여 악한 세대라고하십니다. 우리 주님 얼마나 많은 표적과 기적과 능력을 행하셨습니까? 말 못하는 자가 말하는 것, 소경이 눈을 뜨는 것...메시야가 오면 나타나는 징조 아닙니까? 이런 놀라운 메시야사역, 하늘에서 내려온 이의 증거를 보여주시는데도 이들은 여전히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아우성입니다. 요3:31 위로부터 오시는 이,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이 이미 선포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여전히 하늘로부터 온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표적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큰 표적, 더 큰 능력을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불 받은 분들이, 더 큰 불을 요구하고,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더 큰 은혜를 구하는 모습입니다. 내가 받은 그것에 감사하고 감동하고 기뻐하기 보다, 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와 능력이 더 커 보이고, 남의 것이 더 커보인다는 것처럼 그래서 더 더더 구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 시대나 오늘날이나 별반 다를바 없는 모습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리고 마음에 품고 있는 터진 웅덩이처럼 채워도 채워도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의 모습입니다. 이런 자들을 향하여 주님은 악한세대라고 하시는 겁니다. 나의 신앙이 어떠한가? 합3:17절 이하 말씀처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어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3)형식적인 외식적인 율법적인 종교인을 향하여 악한세대여 화 있으리로다 선언하십니다. 마23장, 눅11장 화있을진저의 장입니다. 우리 주님 무엇을 가지고 이렇게 진노하시며 책망하시는가? 39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종교적인 위선자들, 바리새인들에게 해당되는 지적이라고 우리와는 전혀 상관 없는 그런 말씀으로 지나치면 안됩니다. 겉으로는 사랑한척, 위한 척, 도와준척 하면서 속으로 온갖 미워하는 마음으로 욕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으며, 마음에 없는 말,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이 얼마나 많습니까?
    42절, 겉으로는 주님께 다 드린것처럼 하면서 진정으로 행해야할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아요? 43절, 겸손한척 하지만 상좌 높은자리 대접받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고, 알아주지 않으면 속상한 적이 있잖아요? 주님의 경고의 말씀이 많지만, 이런 것들이 결국 구원의 문을 닫는 행위요, 복음의 장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예수님시대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 종교지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나에게 이런 외식적, 형식적, 율법적인 모습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컷 주님 믿는다고 했는데, 나름대로 댓가지불하며 신앙생활했는데, 마지막에 주님앞에서 “나 너 모른다”는 청천벽력같은 진노를 받으면 안되지 않습니까? 요엘1:12 여호와의 날이 오기전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13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돌아올지어다. 아멘

    2. 요나와 남방여왕이 주는 교훈을 통하여, 주님보다 더 큰이는 세상에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표적을 구하는 이에게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물고기 뱃속에 3일간 있었다가 가고 싶지 않은 원수의 나라 니느웨에 가서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는 우상숭배자들 악한 니느웨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것입니다. 이 표적이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 요나처럼 죽었다가 무덤에서 일어나 부활할것을 미리 암시해주십니다. 요나의 표적...그러면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실 주님! 죽음을 깨뜨리고 승리하신 주님!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 많은 고난을 당하고 죽으실 것을, 그리고 다시 사실 것을 계속 암시하였지만 표적 기적 능력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런 소리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요나 이야기만 나오면 부활의 주님을 기억하면서 그 주님 나와 함께 하신다. 내가 지금 풍랑이는 바다위에 있을지라도, 아니 캄캄한 물고기 뱃속일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 무서워할 이유가 없네 다시 이끄시고 부활의 은혜를 주실 분이 나의 주님이시니 고백하면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남방여왕을 통하여 솔로몬보더 더 큰 이 우리 주님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솔로몬의 자랑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전무후무한 지혜입니다. 이 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남방여왕이 먼 길을 멀다하지 않고 찾아왔다. 스바여왕이라고 하는데 아라비아반도라고도 하고, 이디오피아라고도 하는데, 오늘날이야 먼길이 아니지만, 구시대에는 멀고도 험한 길입니다. 그런데도 만사를 제쳐두고 찾아와서 어떤 고백을 하던가요? 왕상10:7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친히 본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 9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스바여왕이 소문으로만 들었던 솔로몬의 지혜를 경험하려고, 온갖금은보화를 가지고 달려와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감동하며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남방여왕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오늘날, 이렇게 주님을 사모하는 믿음이 있는가? 80년대만 해도, 주님을 만나려고 그 먼 기도원을 찾아가고 몇 날 며칠을 금식하며 부르짖는 이런 믿음 말입니다. 지금은 조금만 멀어도 못가요! 지금 예배를 잃어버린 시대 아닙니까? 예배가 회복되어야 신앙 믿음의 기쁨이 있지요? 예배가 회복되어야 주님을 만나지요? 예배가 회복되어야 표적, 기적, 능력을 받지요! 남방여왕처럼 댓가지불 해보자고요? 아멘

    3.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34절,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순전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절,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6절 온전히 밝으리라!
    우리의 일반적인 믿음의 상식은 빛과 어둠은 공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자연히 떠나는 것입니다. 20절,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그런데 이 귀신이 나갔다가 26절, 더 악한 귀신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더라...
    이 두 비유를 통하여 주시는 메세지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람, 빛을 받아들인 사람이 어두움에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은 공존하지 못하는데 어두운 그늘, 빛이 밝게 비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왜 그럴까요? 우리 교회가 지난 주에 음성 후미교회 목사님이 오셔서 LED등으로 전부 교체해주었는데요. 얼마나 밝아요! 등도 와트에 따라 밝기가 다릅니다. 우리의 신앙의 불도 이처럼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빛이 가리어져 있는가 보라! 도대체 밝게 비치지 못하도록 쳐져있는 가림막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불신과 염려와 두려움등입니다. 이런 것들이 빛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기는 비결이 어둠을 완전히 걷어내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니느웨사람들과 남방여왕이 비결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니느웨사람과 남방여왕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이라는 것, 복음으로부터, 하나님나라로부터 제외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건성건성 외치는 심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입니다. 남방여왕이 들리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고 확인하러 달려왔다가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이었잖아요.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인데도 이 큰 은혜를 받고 있잖아요? 복음의 외곽지대에 살고 있는자인데 복음안에 들어왔잖아요? 웬 은혜인지...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날마다 찬양하며 주님 보다 더 귀한 이 없네 주밖에 없네 고백할수록 어둠은 떠나가고 복음의 빛은 더 밝아진답니다. 복음의 등불, 눈이 빛나고, 마음에 기쁨이 충만해서 어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나님나라 기쁨 희락 평강을 누리며 사는 우리모두가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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