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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눅12:1~12 무엇이 중요한가?(우리가 품어야 할 비전)
    신약 강해/4복음서 2021. 5. 10. 20:48

    눅12:1~12 무엇이 중요한가?, 우리가 품어야할 비전

    대통령이 바뀌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선거때마다 이 당을 지지해보고, 반대편을 지지해보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나라를 이끄는 보이지 않는 힘, 쉽게 말하면 어떤 사상 같은 것이 있는데요. 그것이 바뀌지 않으면 사람만 바뀌고, 무늬만 바뀌는 것이지 본질적인 것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새롭게 되는데 가장 큰 장애물, 이것만은 청산해야겠다는 의식이 있는데 그것을 바꾸지 못하는 것 그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친일사상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일제시대 친일세력으로 호위호식하고 독립군을 죽이고, 일제의 앞잡이가 되었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부와 기득권을 대물림받아 살아온 이들은 국민들을 종 부리듯 부리는 자들이지요. 이런 세력들은 시대가 가고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사회저변에 강자가 되어서 군림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처럼 신앙, 믿음을 가졌는데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비전을 품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이 믿는 것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이 나를 이끌고 있는지, 어디에 목숨을 걸고 있는지 진단하는 귀한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축원합니다.

    1. 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자아정체성의 회복인데요.
    무서운 세상인데요, 묻지마 살인 폭행, 또는 약한 자를 학대하는 자들, 사이코패스등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보면 우울증, 심신미약, 중독들입니다. 어떤 것들에 대한 악한 감정들이 쌓여서 그 사람의 인격이 그렇게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변한 대표적인 원인 그것은 버림받은 기억, 이 세상에서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하는 심리, 그래서 자신을 더러운 존재, 쓰레기 같은 존재로 폄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악한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제일먼저 믿고 기억하는 성경말씀이 있잖아요?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영생을 얻으리로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 나를 품어주신 하나님! 이 마음이 강퍅한 마음을 녹이고, 부정으로 가득차고, 패배감 우울감 상실감으로 자신을 내팽겨쳐 마음대로 살려는 마음을 돌이켜 새마음으로 새롭게 일
    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사랑받는 존재, 나는 특별한 존재야...정말 그래요?
    오늘 본문 눅12:1절을 보십시오. 그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예수님 주변에 수만의 군중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인기가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입니다. 이때,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제자들에게 먼저, 특별하게 메세지를 주고 계십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인데요. 이 말씀은 특별한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제자들에게 주신 먼저 주신 말씀, 저에게도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면 우리 역시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마음속에 사랑이 싹트게 되고, 그 사랑이 지배를 하고 사랑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를 보시고, 4절,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친구라고 하시잖아요?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이와 반대의 사람이 11장에서 예수님의 질책을 받는 사람들, 외식하는 자들, 바리새인과 서기관 율법사들, 종교지도자들입니다. 1절 후반절,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외식...뭐 밖에서 먹는 음식이 아니라, 위선, 가장, 형식입니다. 이것이 왜 무섭습니까? 마음속에 감추인것, 숨긴것, 어두운데서 말한 것...누구도 알아서는 안되는 것들인데, 이것이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죽도록 미워하면서, 악독, 살인의 마음을 품으면서 겉으로 외식, 허허허 하지만, 사랑한 척 하지만...이런것들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이중적으로 살까요? 내 마음을 끝까지 감출수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자기가 가진 기득권, 대접받는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더 외식하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위선, 가장, 형식, 이런 행동의 원인이 바로 높아지고 대접받고 인정받는 마음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성경은 요1서 16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욕망이며 이것을 막는 그 누가 있다면, 가인처럼 사울처럼 살인적인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왜 그렇게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함하고 외쳤을까요? 자기들의 출세와 영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런 명예욕, 욕망이 세상적이고 마귀적인 생각이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사랑의 마음이라고 믿음으로 취하고 주의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을 채워달라고, 몸부림치면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마음을 지배하고 우리를 그렇게 행동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정체성 회복과, 그렇게 생명을 내놓은 사랑으로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품은 사람은 외식? 율법? 가식? 형식?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알게 해주십시오!

    2. 마음과 행동을 다 아시는 분, 그 하나님이 계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 믿음을 제발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함부로 행동할까요? 우리가 악한 말을 쏟아낼까요? 그것은 무의식적으로하나님은 모르실거야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6절,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하루품삯을 데나리온...1/16이 앗사리온, 밥한끼 팔리는 것, 참새가 팔려 식용으로 쓰이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것이요,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7절,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이 말씀을 믿음으로 취하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하나님이 두렵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감사한 존재입니까? 막말을 쏟아내며, 자기 마음대로사는 사람은 두렵지요? 이것을 하나님이 아신다고? 무서버라~ 반대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아픈일을 겪어도, 모함을 당해도, 설령 사기를 당해도 주님이아신다!, 내가 어디를 잡혀가도...주님이 아신다는 믿음은 두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이 믿음이 없으니까 무슨 일을 만나면 무섭고 두려운것이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믿음이 없으니까 터진 입에서 거친 말들을 막 쏟아내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정치인들 미투사건, 연애인 스포츠스타들, 학폭사건들..이렇게 다 드러나 나를 발목잡는다는 생각이 있었으면 그렇게 했겠어요? 세상에서도 이렇게 드러나거든...그러므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과 말을 다 아시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새기고 살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3.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8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여러분, 하나님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소극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이제는 하나님을 자랑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신 바 된 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므로 주없이 살 수 없다고 더 하나님을 붙잡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데, 10절, 말씀인데요.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
    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한마디로 성령훼방죄, 성령모독죄... 이 무서운 죄가 무엇일까요?
    사함심을 받지 못한다는 말은 5절, 죽인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는 말씀처럼 죽음 후 지옥에 들어가는 둘째사망 이야기를 꺼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번 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후에 또 죽음 심판이 있다고 하시며, 이 심판받을 대상이 바로 성령훼방죄라는 것입니다.
    10절,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고, 성령을 모독하면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 말로 인자를 거역한 샘플 모델이 바로 베드로입니다. 베드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받아야 할 자이잖아요?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번을 물으며 베드로를 용서하였고, 내 양을 먹이라는 말을 통해 교회의 지도자로 세워주었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용서를 받았습니다.
    베드로의 부인은 사함을 받는 죄였다는 것이잖아요? 뭐가 다른가? 베드로의 세번 부인은, 성령을 모독하는 행동이 아니라 말로 인자를 거역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할 당시 베드로는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바르게 깨닫지 못한 상태입니다. 여전히 예수님을 오해했고, 십자가를 가로막고 자신의 힘으로 예수님을 지키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말로 인자를 거역하는 죄를 진것은 맞습니다. 죄는 죄가 분명하지만 용서가 가능합니다. 
    언제든지 바다보다 넓은 예수님의 은혜,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으로 베드로는 성령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예수님을 부인했던 상황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성령을 모독하도록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요한과 더불어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성령을 받자 예수님을 부인하던 베드로가 이제는 예수님을 시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성령받은 베드로가 또다시 전처럼 예수님을 부인했다면 성령을 모독하는 자가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믿는 자의 샘플이라면, 믿지 않는 자들이 짓는 성령훼방죄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성령의 사역을 귀신의 사역이라고 폄하 비난하는 것 당연히 성령훼방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성령을 받은 자는 그렇게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 그럴까요? 11절 후반절부터 보십시오.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가르치시리라.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신 세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친히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은 성령님께 더 예민하기 원합니다. 성령님의 인도에 순종하기 원합니다. 주여. 나를 이끄소서 나를 도우소서 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이 우리를 평강가운데로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귀한 존재이며, 예수님의 친구입니다. 이 마음으로 주님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시길 그리고 주님 자랑하는 간증인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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