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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눅13:1~9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신약 강해/4복음서 2021. 5. 29. 16:37

    13:1~9 회개하지 아니하면 망하리라, 은혜 없으면 망하리라!

    예수님 주변엔 수만의 무리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많은 무리중에 예수님 가까이까지 나아갔다. 더군다나 예수님과 대화를 했다는 사실은 엄청난 행운을 잡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께 내놓은 대화의 주제 또는 주님가까이 나아간 의도등을 보면 너무 안타깝고, 황당하기 까지 합니다. 예수님과 대화할 기회를 가진 어떤 부자는 유산상속문제를 가지고 나아왔어요. 삶의 목적, 비전이 온통 세속적인 물질문제입니다. 이런 목적속에 사는 사람은 바라던 목적을 잃어버릴때 삶의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며칠전에 비트코인이 급등과 급락을 했을때 가진 투자한 전재산이 반토막 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년이 있었고, 급락한 마포대교쪽에 경찰순찰을 강화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땀흘리며 살고 계십니까? 전세계 부자 상위 1% 사람과 식사의 비용이 몇천만원이라고 하잖아요? 워런버핏과의 점심식사 경매가격이 우리나라돈으로 세상에나 55억원에 팔렸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창조주,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려면 도대체 얼마를 지불해야 할까요? 이런 분을 만나서 내놓은 대화의 주제가 유산을 공평하게 판결해달라는 요청은 너무 세속적 아닙니까? 오늘 본문 누가복음 13장에서도 12장과 같이 이어지는데요. 이번에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은 자칭, 갈릴리 사람들보다 의롭다고 하면서 은연중에 자신의 의를 자랑합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왔는지, 다른 사람이 당한 어려움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준비해야할것인지, 예수님을 만나면 무엇을 물을것인지등에 대한 해답을 얻는 귀한 시간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1. 사건사고를 바라보는 ,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예수님과 율법교사 당시대 종교지도자들과는 치열한 영적 대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화있을진저 하시면서 까지 선언하셨지요. 그래서 율법교사들은 자신들이 모욕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예수님을 옭아매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교묘하게 이렇게 공격합니다.

    1)13:1,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을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의 답을 기다립니니다. 여기 나오는 빌라도는 사도신경에 나오는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역사가는 빌라도 총독을 극악무도한 통치자로 묘사합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는데 유대인 학살정책을 폈는데 속설에 의하면 어떤 유월절에는 3,000, 어떤 때는 2만명을 죽였다고도 합니다. 이런 빌라도가 행한 악행 하나를 오늘 소개하는데요 갈릴리 사람들을 죽여 

    그들의 피를 제물의 피에 섞어 제사를 드리게 했다는 겁니다. 말을 사람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갈릴리 지역은 이방인의 잦은 지배로 혼합종교와 제사가 성행하던 지역이어서 예루살렘의 정통유대인들로부터 폄하 왕따를 받는 지역입니다. 그럼에도 갈릴리 지역은 유대혁명의 거점으로 로마에 항쟁하는 지역으로 로마의 견제 감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에도, 동족 이스라엘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지역입니다. 빌라도가 눈엣가시같은 갈릴리사람들을 죽여서 피를 제사지내는 제물에 섞어서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모욕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로마에는 분개하고, 갈릴리사람들에게는 안타까워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소식을 예수님께 전한 사람은 나는 갈릴리 사람들과 다릅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저런 일을 당한것은 그들의 죄가 컸기 때문입니다. 죄가 많아서 그런 일을 당한것입니다.

    2) 4 예수님의 답변에서 사고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사람이 있었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이 소개한 사건은 갈릴리사건인데, 이에 반하여 예수님은 실로암사건을 끄집어 내고 있습니다. 실로암은 예루살렘 남쪽과 동쪽 성벽에 위치해 기혼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공급되는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입니다. 저수지의 물은 예루살렘의 젖줄이었기 때문에 실로암 북쪽에 망대를 세워 오염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졌습니다. 아래 무려 여덞명의 사람이 깔려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죄가 많아 망대에 깔려 죽은 것이라 말을 것입니다. 갈릴리에서 로마군대에 죽은 사건, 실로암망대가 무너져 밑게 깔려 죽은 사건...어느날 갑자가 당한 사건사고입니다

    이런 사건사고가 오늘날은 많지 않습니까? 최근에 일어난 미얀마 민주화 요구에 무자비하게 죽인 군인들을 보십시오. 우리나라 광주사태와 똑같은 참상아닙니까? 인도네시아에 잠수함이 침몰하여 53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사건 또한 하루에 갑자기 당하는 교통사고 사망자, 코로나19 확진자 사망자...이런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건사고를 당하는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어때요? 그분들이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예수님께 갈릴리사건을 끄집어낸 사람의 의도 동기는 우리는 사람들보다 낫다, 의롭다는 표현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실로암망대가 무너져 내려 죽은 사건을 끄집어 내면서 지역차별하지 말라. 이런 일은 누가 죄를 많이 지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사건의 공통점은 우리 누구나 그런 사고를 만나 죽을 있는 죄인이라는데 초점을 두고 계십니다. 3:9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아래에 있다. 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3:20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 누가 사고를 당하면 무슨 죄를 지어서 그렇지 하는 정죄의식으로 바라보면 안됩니다. 오히려 주님의 심정으로, 긍휼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의 눈은 어디에 고정되어 있습니까? 남을 정죄하는 , 아뇨, 사랑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2. 갑자기 당하는 사건사고를 바라보면서, 우리 역시 때가 언제인지 모른다, 임박한 종말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12장에서 부자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오늘밤에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36,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어느날 갑자기 밤중엘른지 돌아오는 때가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준비하고 있으라고 합니다. 12:56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알면서 어찌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오늘 13장에서도 갈릴리 사람들의 사건,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 이야기를 하시면서 때는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아니냐?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살것처럼 삽니다. 언제 어느때 개인적인 종말이 찾아올지, 주님이 재림하시어 땅에 마지막 심판이 올지... 인데도, 아무런 경각심이 없이 노아의 때와 같이 살고 있다는 겁니다. 다가올 종말앞에서 우리는 13:6절이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구해야 것은 다시 기회를 달라는 겁니다. 그런데 혹시 기회만 달라고 하면서 아무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 임박한 종말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냥 그렇게 살고 있는 겁니다. 뉴우스를 통해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사고로부터 열외인것처럼 살고 있다는 겁니다. 경각심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사건이 사건인 것처럼 바라본다면 이렇게 없는겁니다. 그럼, 무엇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3.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말이 맞지만, 이런 말보다 주님 없으면 망합니다. 주님이 필요합니다를 준비합시다.

    갑자기 심판을 당하기 ,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바로 기회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 5,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 7,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회개만이 길입니다. 말이 정답인데도 웬지 모르게 무겁고 답답합니다. 그럴까요? 우리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회개하지만, 여전히 가운데서 딩굴고 있습니다. 요즘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는 계절입니다. 뿌리고 심고 뽑고 옮기고 옮긴것 다시 뽑아 옮기고...이런 모습이 회개하고 회개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언제 뿌리내리고 터가 굳어져서 열매를 맺겠습니까? 아무리 기회가 주어져도, 그렇게 크게 변할 같지가 않아요. 이것이 율법신앙, 회개신앙의 한계인것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방향을 틀어보면 천국문이 환하게 보입니다. 

    다음주에 살펴보겠지만, 11, 열여덟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고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여자! 여자 안식일 회당에 있었잖아요. 나름대로 주님을 섬긴다고 하였지만 여전히 아픔 고통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한마디, 12, 여자에 네가 병에서 놓였다!라는 선포 말씀으로 자유케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회개의 종착점, 열매의 종착점은 바로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회개, 마땅합니다. 그러나 회개를 너무 강조하면 신앙의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주님품에 안기면, 주님만 붙잡으면 이런 자유와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른것이 아닙니다. 주님 붙잡고, 주님 사모하고, 주님만 필요하다고 고백하는 ...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맺는 비결인것입니다. 믿음이 회복되면, 고통당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할수있고 품을 있게 됩니다.  이런 은혜의 사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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