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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3:18~30 하나님 나라신약 강해/4복음서 2021. 7. 8. 17:29
눅13:18~30 하나님 나라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밤을 새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리~♬
손양원 주기철목사님등 일제 핍박받던 시대에는 하늘에서 구름이 이상해지면 곧 주님이 오실까 새벽에 엄청난 비와 천둥이 치면 주님 곧 오실까? 주님오심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어때요? 코로나19로 두렵고, 사건사고들로 불안한데도 주님나라에 대한 경각심이 별로 없이 무감각합니다. 하나님나라, 아버지집이 멀리 있는 것처럼, 그리고 오랜 후에 들어갈 것처럼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신앙이 무기력해졌을까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애타는 사모함이 없고 기대감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이 불일듯 일어나는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하나님나라가 언제 어떻게 임할까요?
때와 시기에 대하여 성경은 침묵합니다. 행1:7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잭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막13:32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면서 생각하지 갑자기, 홀연히 임할 것이니 항상 깨어서 준비하라고 하셨지요.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모습을 예수님께서 오늘 비유로 말씀해주십니다. 눅13:19, 하나님나라는 겨자씨 한 알 같다!, 21절,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하나님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1)겨자씨 비유 : 겨자씨가 가장 작은 씨는 아니지만, 작은씨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면 날라가버릴 그런 씨로 작은 것을 의미할때 표현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작은 아이 이야기할때, 콩알만한것이…라고 하잖아요. 겨자씨의 특성이 빠르게 성장하고, 보통 2~3m까지 자란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겨자씨를 채소밭에 심었다…보이지 않습니다. 한동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라는 순간 다른 채소보다 월등히 폭발적으로 자라는 겁니다
그리고 공중의 새들이 날아와 깃들어 쉬는거지요. 이 비유는, 하나님나라가 우리 눈에는 미미하고 교회가 힘이 없고 세상에 영향력을 잃어버린 것 같지만, 어느순간 폭발적으로 빠르게 성장하여 드러나고, 29절말씀처럼 동서남북으로 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2)누룩은 어때요? 무교병이야기할 때 또는 바리새인의 누룩 교훈이야기할때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하나님나라비유에서의 누룩은 폭발적 번식력에 비유합니다.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넣었다. 그래서 이 가루가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겨자씨와 누룩을 통하여 하나님나라가 지금은 미미하고 아무 영향력이 없는 것같지만, 때가 되면, 때가 차면…이렇게 이 세상가운데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럼, 하나님나라가 임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이 하나님나라이야기 전 후에 어떤 사건이 있습니까? 안식일 병고치는 사건입니다. 13: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 14:2 수종병 든 한 사람…이 분들은 수년동안 질병에 눌려, 고통에 눌려, 귀신에 눌려 참된 안식을 잃어버리고, 기쁨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가련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즉각적으로 치유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사탄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매임에서 풀어주었다고 하십니다. 요11:44절에 죽어 무덤에 갇힌 나사로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 하니까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이때 예수님께서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뤼오=풀다, 해방하다, 석방하다. 폐지하다, 자유롭게하다. 예수님의 치유, 선포로 사탄에 매여 참된 안식을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참된 기쁨, 하나님나라의 상징인 의와 평강과 희락을 그대로 임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 라는 것입니다. 질병에 사탄에 세상에 물질에 매여, 하나님나라를 잃어버리고 고통가운데 살았던 이들…하나님나라가 언제 임할까? 기대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즉각적으로 순식간에 홀연히 갑자기 임하게 되었습니다. 안식일 치유를 통하여 하나님나라가 이렇게 임할 것이다! 겨자씨를 보라, 누룩을 보라…지금은 미미하여 보이지 않지만 지금은 표시나지 않지만, 폭발적으로 확장되고 성장할것이다! 외형적인 하나님나라도 이렇게 나타나지만, 내형적으로 우리 신앙도 이렇게 될 것입니다. 나는 믿음이 없는가봐 좌절하지 말고, 사모하고 기대하고 기도하면 어느순간, 언제? 주님이 원하시는 그 때, 믿음이 이렇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아멘.
2. 하나님나라가 이렇게 갑자기 임하는데 그 나라에 들어갈 자, 구원받을 자, 영생얻을 자가 적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원얻을 자가 많을까요? 적을까요? 급속도로 성장한 종교를 꼽으라하면 이슬람이 아닌가합니다? 여러 이단종파들도 많지만, 특히 이슬람하면 중동 아랍권에나 많지? 그런생각이 들지만, 아랍, 유럽, 동남아, 미국, 아프리카등 전세계적인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별로 없는것같은데, 아닙니다. 며칠전 김해에서 이슬람 종교행사를 허락했다가 확진자가 대거 나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것을 보고 우리나라도 무섭게 파고들겠구나 하는 경계심이 듭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를 설명하니까 어떤 사람…바리새인으로 추정하는데요, 13:23 이렇게 질문합니다.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이 질문의 의도는 우리 유대인 특히 바리새인처럼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으니까 적지요???라는 답을 가지고 질문하는 겁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 주님은 동문서답처럼 다른 이야기를 끄집어 내시는데요. 마땅히 구원받을 자의 삶과 당연히 구원받을줄 알았던 자가 구원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1)구원받을자가 많나 적나를 떠나서 하나님나라가 있다는 것을 아는 자는 2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선민의식을 가진 유대인들은 특히 바리새인들은 당연히 구원받을 줄 알고 있는데, 이런 자들을 향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이와 유사한 말씀이 마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좁은 문이 있으니까 넓은 문도 있나요? 천국, 하늘나라 문은 하나 밖에 없는데 좁은 문이라는 겁니다. 이 문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별도로 주어졌습니까? 유대인, 이방인, 헬라인, 지역, 남녀노소 차별 구분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열려있는 문, 다만 조건이 있다면 이 길로 들어가려고 힘쓰는가 아닌가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쓴다다는 것은 싸우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구원얻기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해야하는가? 뭘 해야 하는 행위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접근하면 율법의 행위가 되어 다시 바리새인처럼 종교인이 되고 맙니다. 그럼 무엇을 힘써야 하는가? 싸워야 하는가? 십자가를 향하여 가는 길, 십자가를 붙잡는 믿음,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은혜, 구원의 선물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붙잡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닌 다른것을 어떻게 더 해야지, 내가 노력해서 문을 열어야지 하는 인본적인 생각들과 처절하게 싸워서 믿음만 드러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좁은 문의 열쇠는 예수그리스도를 주인으로 고백하고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믿음에서 요동하지 않고 붙잡는 것, 이런자에게 생명의 문이 열리는 것이고, 이런 자에겐 좁은 문이 좁은 문이 아니죠. 안전한 꽃 길, 열린 길, 열린 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좁은 길을 가는데 있어서 많은 방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좁은 길은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죽음이거든요. 그런데, 믿었던 수제자 베드로가 주여 그리 마옵소서! 막아서잖아요. 오늘 눅13:3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여기를 떠나세요.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헤롯의 위협으로부터 도망가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데 단호하시잖아요. 33절,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누가 막아서도 자신의 길을 가시는데 단호합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고백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바울 보십시오.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1:13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하면서 예루살렘으로, 십자가의 길로, 좁은 길로 나아갑니다. 우리에게 좁은 길은 무엇일까요? 믿음을 방해하는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2)당연히 구원받을 줄 믿고 있었던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주시는 경고를 잊으면 안됩니다.
13: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자들아 떠나 가라! 그리고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ㅠㅠㅠ 이런 안타까운 자들이 누구입니까? 이들이 이렇게 항변합니다. 26절, 주님 왜 우리를 몰라요? 우리가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우리를 가르치셨잖아요!!!, 마7:22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잖아요!!! 이들이 왜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을까요? 주님앞에 있었던것 맞아요. 주님의 가르침 받은것도 맞고요. 주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한것도 다 맞아요. 그러나 율법의 행위로 한것이요.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함이요. 높은자리 인정받기 위해서 한 것이요. 자기가 주인되어 한것입니다. 특히 주님앞에서 한 것이 아니라 사람앞에서 한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은 나는 모른다 하신겁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에 들어갈 조건 , 자격, 평가는 사람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마음을 놓을 수도 없어요. 왜냐하면 평가자는 우리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초청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마10: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가벼움이라…주님만 바라기, 하나님의 은혜만 구하기…그러면 우리에게 구원의 문은 활짝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보다 내 힘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니 힘만 들고 아무것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에게 29절,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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