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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10:1~18 세워주실 때가 있다!
    구약 강해/시가서 2022. 5. 4. 11:21


    시10:1~18, 세워주실 때가 있다!(부활주일)

    ‘노 크로스 노 크라운’(No cross, No crown), ‘고난의 십자가가 없으면, 영광의 면류관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 뒤의 영광이라는 말인데, 우리는 고난과 댓가지불은 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고난의 십자가 없이 영광의 면류관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오늘은 주님 부활하신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이 기독교의 꽃이며 영광중의 영광입니다. 이 영광은 고난의 십자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고난과 죽음 그리고 무덤에 들어간 후에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 주님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고난 뒤에 준비된 놀라운 은혜가 무엇인지 깨닫고, 미리 보고 현재의 고난을 잘 이겨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세상에는 활개를 치면서 믿는자를 힘들게 하는 대적이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대비하자!
    2절, 악한 자 3절에 악인이 있습니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싸워도 백번 이긴다는 말인데, 다윗, 믿는 자, 우리를 괴롭히는 대적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이들의 특징, 1)2절 교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3절에 욕심 탐욕, 10절 간사와 술수를 부립니다. 이런 것이 없이 세상에 살면 이용만 당하고 사기 당하고, 손가락질을 받는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사람이 남을 속이면서까지 부를 취득하면 마음이 편할까요? 악인들은 이런것들이 오히려 자랑이요 면류관으로 압니다. 왜 그럴까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의 중심은 자기입니다.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자랑합니다.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 보이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여 어떻게든 자기 밑으로 주저앉게 합니다. 패망의 선봉인 교만의 뿌리는 무엇이겠습니까? 3절말씀에 나오는 욕심, 탐욕입니다. 어떻게든 내 것 삼겠다는 것,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입을 보십시오. 7절,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다…터진 입에서 지옥의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너무 무섭지요. 2)이들의 행동을 보십시오.  9절, 사자가 자기의 굴에 엎드림같이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며 기회를 엿보다 순간 덥치는 겁니다. 한마디로 이들의 행동은 마귀적이고 정욕적이며 파괴적입니다. 3)이들의 마음, 행동 그 모든것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있습니다. 이것때문인데요. 4절 후반절,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은 안계신다.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는 자들 한마디로 무신론자,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은 안 계신다는 이 말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말이며, 거짓말입니다. 이런 마음과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은 통제 불능이어서 아무도 막을 수가 없어서 그 어떤 죄든 서슴없이저지릅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의 모든 생각 마음 속에 하나님이 있을 자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실제 안 계신적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욕심과 탐욕이 지배하여 하나님, 신적 존재를 거부하며 자기마음대로행동하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께서 누구에게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누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함하고 거부하던가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당시대 기득권자들, 사두개인 바리새인 제사장들입니다. 왜 그렇게 극렬하게 반대하며 빌라도 앞에서 죽여달라고 외쳤을까요? 자신이 받아야할 것들을 나사렛 예수가 받고, 자신이 받아야 할 존경을 예수님이 받는 것을 보고 죽이려고 아우성을 치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욕심과 탐욕 교만이 자리를 잡고 영향력을 행사하므로 다른 그 어떤 선한 것이 힘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다윗시대나 예수님시대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우리 마음에 무엇이 자리를 잡고 우리는 어디에 영향력을 받고 있는지 쓴뿌리같은 욕심과 탐욕이 자라지 못하도록 늘 점검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대적들이 형통하고 하나님의 사람은 고난과 멸시를 당할 때, 믿음이 흔들릴 수 있지만 더 주를 바라봐야합니다.
    세상이 불공평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유없이 고난을 당할 때, 아뇨 오히려 선을 행하는데도 당하는 고난을 만날 때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오늘 10:1절,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진 다윗조차 흔들리며 휘청거립니다. 하나님은 멀찍이 계시고, 방관하는것처럼 보일 때 가슴이 무너지고 눈앞에 캄캄하다는 겁니다. 사실 이러한 때 우리의 믿음이 드러나고 담대해야하는데 쉬운것이 아니지요. 이런 탄식, 외침은 우리 주님 십자가에서도 나타납니다. 마27: 46절, 제 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절규하십니다. 다윗이 외친 절규,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제발 지금 개입하여 주십시오. 저 악한 대적들을 순식간에 심판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이런 분들의 이런 외침이 오래가던가요? 믿지 않는 악인들처럼 하나님은 안계신다. 하나님은 죽었다.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는다 개입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14절 보십시오. 주게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이 손을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저 악한 대적들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왜 멀리계시며 왜 개입하여 구원하여 주시지 않으십니까 항변한ㄴ 것이 아니라 주는 다 보고 계신다 그러므로 나는 주만 바라나이다 주만 의지하나이다 11:1절 여호와께 피하겠나이다 하면서 믿음, 신앙을 보이는 겁니다. 불신자 대적들 세상사람들은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은 없다. 너의 하나님 계신다고? 11절, 그럼 하나님이 너를 잊은거야,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우셔서 안보는거야…이렇게 우리의 믿음을 떨어뜨리며 믿음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도록 조장합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악인들은 똑같이 조롱했습니다. 마27: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나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이것이 현실입니다. 주님이, 믿는자들이 세상을 기도하고 이 땅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데 이들은 오히려 저주하고 모욕하고 돌을 던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처럼 주여 저들을 멸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운지 불을 던져 주십시오 하고 싶지만,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다윗이 고난앞에 잠시 흔들렸었지만 어떻게 흔들리는 믿음을 잡아주는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엡6:13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 악한 날, 고난의 날이 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믿음의 훈련을 계속 해왔던 것입니다. 군인들 가장 기초적인 훈련시스템은 반복훈련입니다. 그럴 때 위급할 때 순간적으로 그 훈련이 자세가 나와서 대처하게 되는거죠. 우리의 믿음의 훈련도 계속 반복 훈련해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훈련, 넘어졌을 때 일어서는 훈련, 주님과 동행하는 훈련,…다윗을 보십시오. 목동이었을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쳐 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같이 되리이다. 하면서 골리앗 앞에 당당하게 나아가 맞서 싸우더라는겁니다. 이것이 바로 훈련의 결과 실제 골리앗앞에 당당하게 맞서는 힘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14절의 믿음이 흔들리는 신앙을 잡아줍니다. 14절,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의 고백입니다. 불신자 무신론자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우리를 향해서 조롱 멸시하는 자들 그것도 하나님은 다 아시지만, 우리가 고난 당할 때, 무시당할 때, 주님을 향한 믿음과 어떻게든 신앙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들을 다 보시고 아신다는 겁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또 일어나게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잘 걸을 수 있을때까지 얼마나 많이 넘어질까요? 미국 뉴욕 대학 연구팀은 130명의 아기들의 움직임을 비디오를 찍어서 조사를 했는데 만 12개월에서 19개월 사이의 아기는 하루 평균 4km를 걷고, 하루 120회 정도 넘어진다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넘어질 때, 부모님들이 매 순간마다 일으켜주던가요? 보고있잖아요. 이런것처럼 우리 하나님 멀리 계시고 방관자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 보고 계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믿음이 고난을 당할 때 아주 넘어지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겁니다.

    3. 믿음의 사람, 하나님께서 결국 세워주시고 일으켜 주십니다. 이기게 하십니다.
    14절 주께서 보시고, 수수방관하시지 않으시고…후반절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다! 그리고 악인의 팔을 꺽으신다. 18절, 고아와 압제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신다! 결국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세워주십니다. 할렐루야~ 우리 주님 보십시오.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망하고 실패한 줄 알았습니다. 그것을 끝난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망을 이기고 무덤을 헤치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이며 생명이며 승리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렇게 살아계시며, 우리가 믿는 주 예수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셔서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이 주님을 믿는 자, 사망이 두렵지 않으며, 죽음후 부활이 있다는 믿음과 영생이 있음을 믿기에 이제 그 어떤 죽음의 권세가 누른다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을 믿는 신앙입니다. 부활, 믿음의 꽃, 최고의 경지 죽어도 다시 산다는 이 믿음을 다시 세우셔서 이해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할 때 이 신앙으로 맞서고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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