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가장 유명한 스포츠 가운데 하나가 레슬링이었는데, 김일 선수의 박치기, 역도산, 이왕표등의 선수가 생각납니다. 2:2 태그매치 경기를 보면, 한 선수가 계속 당할 때 다른 선수와 교체를 하는거죠. 교체한 선수가 대신 갚아줄 때 지친 백성들이 환호하고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약하고 억울한 사람이 강한 사람과 바톤터치해서 대신 싸워주는 듯한 모습이 오늘 말씀 가운데 있습니다. 힘들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어디에 하소연하며 어떻게 이 위기를 헤처나가야 할 것인지를 말씀을 통해서 배우는 귀한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35편 다윗의 상황을 살펴보면서 이런 배신과 모함과 아픔이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34편은 사울의 집요한 공격에 이스라엘땅에는 피할 곳, 안전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 다윗이 원수의 땅 블레셋 아비멜렉에게 피하였다가 오히려 더 무서운 위기를 만나고…결국 미친체하는 행동으로 간신히 살아나온곳이 배경이라면, 35편은 정확한 표제는 없지만 사울왕에게 쫓겨다니던 때로 보입니다. 왕권을 유지에 급급한 사울왕과 그 추종자들이 다윗을 반역자이며 패역무도한 범죄자라고 누명을 씌워 현상수배한 때입니다. 결국, 산으로, 광야로 심지어 이방 땅으로 까지 도망을 가야 하는 비참한 처지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다윗의 심리적인 모습은 혼돈의 상태, 불안과 초조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각 구절마다 격앙된 모습이 표현되기도 합니다. 왜 이런 분노, 비참, 격앙된 모습이 비추어집니까? 1절, 나와 다투는 자, 3절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 4절 내 생명을 찾고 상해하려는 자들 7절 까닭없이 잡으려고 웅덩이 함정을 만드는 자, 11절 불의한 증인들 16절 조롱하는 자들, 15절 내가 넘어질 때 박수치는 자들, 26절 나의 재난을 기뻐하는 자들…이런 일을 당하면 살아가겠어요? 분이나고 화가 나고 결국 속이 터져 살 희망까지 사라질 것입니다. 엎친데 덮친다는 말이 있는데 연속해서 끊임없이 좋지 않는 일들이 연달아 터지는 것입니다. 그것도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모함과 조롱, 믿을 사람 아무도 없을 때 많은 사람들은 살 희망의 끈을 놓아버립니다. 그리고 신앙 믿음도 의지도 다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각자가 당하는 아픔과 조롱과 멸시가 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누구나가 다 가지고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늘 꽃길만, 장미빛 인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태원참사로 희생당한 꽃다운 아이들, 그리고 그 가정들…속이 터져서 미쳐버릴것같은 그리고 그곳에서 밀어부쳤던 인파들, 또 이런 일이 충분히 예상되는데도 미리 막지 못한 지자체 경찰 정부에 뭐라고 쏟아붓고 싶은데도 어디 하소연할데가 없고 그저 가슴치며 장례를 치려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분들을 향하여 왜 이태원 가는 것을 막지 못했느냐는 비아냥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현실이지 않습니까? 이런 아픈 일들은 예고없이 누구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생이거든요. 35편의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을 공격, 모함, 비난한 사람들이 자신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울왕=장인입니다. 아히도벨=자신의 최측근 지략가 였습니다. 요압=자신을 지킨 최고의 장군이었고, 압살롬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아들입니다. 다윗을 지치게 하고 무기력하게 하고 낙심케 하고 다윗에게 함정과 모함을 가지고 다가오는 자들이 멀리 있는 전혀 모르는 이방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아끼는 가족과 친구였더라. 욥을 가장 힘들게 한 사람 역시 자신을 위로하러온 친구들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어때요? 가장 가까운 제자가 부인하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배신자가 되더라. 이런 것이 인생인 것을 먼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을 알면 세상을 그리고 가까이 있는 친구들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정말 우리의 의지의 대상, 믿음의 대상은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밖에 없으며 하나님 아버지 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분은 없습니다!
2.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화를 풀어낼 곳이 있어야 삽니다. 믿는 사람이 화를 폭발하고 분노하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믿는 사람이 왜 그래? 기도하는 사람이 왜 그래? 하면서 지적하시겠습니까? 1절 보십시오.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워주세요! 어린이가 맞고 와서 형에게 가서 형 쟤 좀 때려줘요 나 3대 맞았어 10대 때려줘!!! 4절 내 인생을 찾는 자 수치를 당하게 낭패를 당하게 하소서! 나를 쫓아오는 저들 박살내주시고 속된말로 쪽팔리게 해주세요! 5절, 그들을 바람앞에 겨와 같게 하소서…바람앞에 겨처럼 날려보내주세요! 6절 그들의 길을 어둡고 미끄럽게…날 따라오다 미끄러져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든지 뇌진탕 당하게 해주세요! 이런 마음을 품는 것이 믿음없는 행동처럼 보입니까? 남을 저주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해석해보니까 쫌 속이 시원하지 않습니까? 왜 그런줄 아세요? 우리의 마음과 통하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쏟아내는 분노의 말들이 우리와 원천적으로 다른 것이 있습니다. 다윗이 이 분노를 어디에서 누구에게 쏟아내고 있는가 보세요. 우리는 친한 사람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또는 세상에 이 분노를 다 쏟아버려 또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심어줍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분노와 화를 감정을 이 문제를 하나님께 쏟아붓습니다. 자신을 공격하는 나쁜 사람들…그들과 직접 맞닥뜨리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화를 쏟아붓지 않습니다. 1절 여호와여! 17절 주여 어느때까지 관망하시려하나이까 언제까지 보고만 계시렵니까? 22절 여호와여 23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 주여 나를 위해 다투어 주십시오! 처음에 2:2 레슬링테그매치게임을 이야기했잖아요? 바톤터치를 하는겁니다. 하나님과 바톤터치하면서 주여 이제 주님 차례입니다. 제 대신 싸워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와 다른 점입니다. 화가 나고 분노가 차오를 때 이것을 하나님께 다 쏟아붓더라. 이것이 다윗의 믿음이며 우리가 배워야할 믿음입니다. 원치 않는 아픔,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의 공격과 배신 모함,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헤쳐나가는 비결, 속마음을 하나님께 풀어놓고, 그 문제를 대신 싸워 주시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신 이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 말인줄 아세요? 싸움도 대신, 문제도 대신, 그리고 죄의 문제도 우리 주님이 대신 갚아주셨지 않습니까? 우리위해 대신 맡아주실 예수그리스도가 계시다!
3. 싸움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 다음 악을 선으로 갚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 차원 높은 신앙을 다윗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3절,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영혼을 괴롭게 하였다! 14절 내가 나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함같이…가식없이 진실로 그들에게 행하기를 어머니를 곡함같이 슬퍼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다윗을 괴롭힌 원수들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들에게 악으로 갚지 않고 선을 베풀고 있는 겁니다. 이들은 세상은 12절, 내게 선을 악으로 갚는데, 나를 더 힘들게 하는데…반대로 선을 베푸는 반대의 삶을 사는 겁니다. 이것이 기독교이고 그리스도인입니다. 구약율법가운데 동해보복법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갚는 원리이지만, 우리 주님이 가려춰주신 원칙이 있습니다. 눅6:27~28 너의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태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그리고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사도바울은 로마서12:19~20 내 사람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게 하라…다윗이 이렇게 했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시35:13 후반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이것이 바로 사랑과 기도의 부메랑 원리입니다. 부메랑이 무엇입니까? 던지면 다시 돌아오는 거잖아요? 메아리 원리가 이루어지는겁니다. 다윗은 이 원리 법칙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모함과 원수의 비방과 공격과 조롱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믿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일을 만났을 때 오히려 사랑으로 갚고, 하나님께 풀어내어 이 절망과 어둠을 이겨냈던 것입니다. 아뇨 오히려 9절,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설령 이 절망과 어둠이 여기에서 끝나도! 내 인생 끝나도 주님이 구원해주시는 영혼구원에 흔들임이 없으니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워하며 기뻐할 수 있더라. 이 믿음을 가슴에 새기시고 이 험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