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강해(12) 막3:7~19 기적을 넘어 말씀으로, 무리를 넘어 제자로, 무리인가?제자인가?
미국에즈베리대학교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이 강하다고 하면서 이 성령님의 운동이 널리 퍼지고,예배당에 들어가려면 6시간 줄을 서서 들어가는 기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강한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고 전적으로 회개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영적갈급함을 가지고 성령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 수만명이 다녀갔고 그들을 통하여 이 불이 퍼져나가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 시대를 생각해보십시오. 오늘날처럼 sns도 없는 시대에 오직 입소문을 통해서 몰려든 무리들 보십시오. 7절, 갈릴리의 큰 무리가 따르며, 8절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만 먹으시면 순식간에 수만명의 성도를 둔 대형교회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여기에 마음을 두시지 않고, 오직 12명의 제자를 택하시고 이들에게 마음을 쏟아놓으십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 주변에 있는 무리와 예수님 가까이에 있는 제자들을 통해서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 우리 자신을 보는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기적을 보고 예수를 찾는 무리들입니다. 이 무리들의 특징은 8절 후반절 말씀처럼 예수님이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온 자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찾는 이유는 치유의 기적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자신의 병고침을 받기 위해 몰려온것입니다. 9절,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몰려왔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10절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몰려온 이 말씀이 개역한글성경에서는 핍근히 함이다인데 덮치다, 밀어닥치다, 몸을 던지며 달려든다는 의미입니다. 병고침받기 위해 얼마나 간절한지, 자신을 내어던지는듯한 그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등장하는 무리가 있는데, 11절 아이러니 하게도 더러운 귀신들입니다. 더러운 귀신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하는 행동을 보십시오.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기를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어찌보면 믿음의 고백같아 보입니다. 어찌보면 예수님을 잘 아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앙고백이라기보다 영적인 귀신이 예수님을 아는 것 자체입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압니다. 그러나 이 아는 것은 구원의 고백이 아닙니다. 중풍병자치유의 사건 때 말씀드린 바가 있는데, 누구의 믿음으로 치유를 받았습니까? 친구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백부장의 종은 누구의 믿음으로 치유받았다고요? 아픈 종이 아니라 주인 백부장의 믿음, 곧 타인의 믿음으로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을 구원과 관련한 것이 아니라, 치유 기적과 관련된 믿음이었습니다. 이 기적을 경험한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도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구나, 예수님은 죽었다가 살아나셨고, 부활승천하셨으며 다시 오실 분이시구나. 나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고 고백해야겠구나 이런 믿음의 고백을 구원의 믿음이라고 합니다.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이 예수님의 놀라운 치유, 큰 일, 대사를 듣고 달려와 예수님께 치유해달라고 자신을 내어던지는 이것은 구원의 믿음이 아니라 치유받기 위한 믿음,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달라는 기도일뿐입니다. 이런 믿음을 누구와 비슷하다고 하는가? 귀신들도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지 않더냐? 야고보서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큰 무리들의 특징은 내면에 자신의 욕구, 자신의 기도제목, 질병치유, 예수님의 기적에만 관심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한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바다로 밀어버리는 행위가 되는 것이며, 여기에 무슨 질서가 있습니까? 나만 치유받고 나만 기적을 경험하면 된다는 자기 신앙이므로 다른 사람보다 먼저 몸을 던지는 겁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복신앙은 다른 사람에게 오히려 피해를 주는 것이구나, 하나님과의 관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그러므로 기적을 붙잡으려고 혈안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붙잡으려고 몸부림쳐야겠구나! 나는 어디에 초점을 두고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살펴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이 지명하시고, 선택한 제자그룹입니다. 13절, 또 산에 오르사...무리들과 있는 지역적 배경은 바다인데, 제자와 관련되어서는 산입니다. 산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밀접한 곳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 호렙산이잖아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모세와 엘리야를 만난 곳 변화산입니다. 어찌보면 덮치고 붙잡고 따라오는 큰 무리를 거부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13절,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부르셨다=소환하다, 초대하다입니다. 여기에 무슨 조건 자격이 없어요. 아,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원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자격, 조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해 뽑힌 것입니다. 제자를 뽑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홀로 하시고자 하시는 모든 일들을 다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굳이 제자를 둘 이유가 없으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를 뽑으신 이유, 14절 너무도 좋은 말씀입니다.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함께 있게 하시려고 12명의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인가?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과 늘 함께 동행하고 있는가를 점검하면 됩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예수의 영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우리는 주님 안에 있는 것 이것이 주님과 연합 결합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하고 싶어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뽑은 겁니다. 제자를 세우신 이유, 14절 전도도 하며, 각 지역에 하나님왕국,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맡겨주시기 위함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보십시오. 행2장 오순절 성령으로 가득 채워지니까 이들이 가만히 앉아 있을수가 없었습니다. 나가서 오직 예수를 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5절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라,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셔서 죄에 눌리고 악한 영에 눌린 자를 자유케 하기 위해서 제자를 삼은 것입니다. 그럼 12제자들만 이런 권능을 행하던가요? 빌립집사도, 스데반집사도 제자들과 동일하게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는 놀라운 일을 행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이런 일들이 동일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의 역사, 가까이에는 에즈베리대학교의 놀라운 일...이 나타나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함께 함이 복이고, 주님과 함께 하면 그것이 바로 능력이며, 주님과 함께 하면 주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제자 공동체를 바라보면서 이런 공동체를 꿈꾸시기를 바랍니다. 16절부터 12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 가운데 특이한 제자들을 꼽아보면, 예수님께서 새 이름을 주거나 별명을 지어준 제자가 있습니다. 16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시몬=시므온이었는데, 야곱의 아들 가운데 시므온은 좋은 이미지가 아닙니다. 시몬을 베드로라...요1:42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시몬 베드로의 특징은 예수님이 질문을 하면 제일 먼저 나서서 대답하기 좋아하는 사람, 십자가에서 죽는다고 말씀할 때에는 제일먼저 절대 안된다고 나서는 사람, 앞뒤 제지 않고 자기생각만 표출하는 다혈질의 소유자라고 말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베드로가 믿음이 특출해서 수제자가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하기 때문에 가까이에서 품어주셨다고 합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지만 더 연약한 자식을 부모가 더 챙겨주듯이 말입니다. 17절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다고 합니다. 일종의 별명인데요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이라...어떤 이들은 성질이 더러워서 그랬다고도 하는데, 설마 예수님이 선택한 제자들에게 좋지 않는 별명을 지어줬겠습니까? 보아너게 부를때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고, 수치스러울텐데 말입니다. 긍정적으로 바라볼 때, 우뢰의 상징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우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바로 우뢰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바라볼때마다 무슨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보이는거죠. 그리고 제자들 이름 가운데 18절, 바돌로매가 나옵니다. 유대인 이름 가운데 앞에 바=아들이라 뜻입니다. 맹인 바디메오, 디메오의 아들/ 바돌로매=돌로매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자기의 이름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도 주님이 택하셨습니다. 12제자가 등장할 때 빌립과 바돌로매 항상 같이 따라다니는 것을 볼 때, 요1장에 빌립이 와보라 하면서 예수님을 소개했던 그 친구가 나다나엘인데 바돌로매가 나다나엘이 아닐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튼 12제자 이름이 나올 때 자신의 이름이 없는 바돌로매도 선택되었더라. 또 우리가 유심히 볼 사람이 있는데요. 가나나 가나안인시몬입니다. 이 시몬을 표현할 때 동행구절인 누가복음6:15 셀롯이라는 시몬입니다. 셀롯=열심당원, 한마디로 로마의 압제로부터 로마와 로마앞잡이를 물리치고 독립군과 같은 어찌보면 테러리스트같은 사람이 시몬입니다. 열심당원 시몬이 제일 혐오하고 죽이고 싶은 그룹이 있다면 친로마주의자인 세리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자 가운데 누가 있어요? 세리 마태가 있는 겁니다. 마태는 저놈이 언제 자기를 죽일지 불안하고, 시몬은 마태를 향해서 나라를 팔아먹고 좀먹는 친일파같은 친로마파 제거하고 싶은 사람...그런데 이런 사람을 한 그룹, 한공동체로 묶어놓으셨다는 겁니다. 12제자 특별한 부자도 없고, 특출나게 잘난사람도 없고, 스카이나온 학식있는 이도 없습니다. 세상적으로 쫌 잘났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마지막에 나온 가룟유다인데 이는 예수를 판 자잖아요? 평범한 이들, 서로 원수관계같은 이들, 그렇지만 여기에서 뚜닥거리는 싸움 다툼의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이후에는 더 끈끈한 기도공동체가되고 복음증거에 앞장서는 선교공동체가 되어 손에 손을 잡고 죽어가는 순교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들을 통하여 로마가 변하고 세계가 변하고 세대가 변하여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오게 된겁니다. 이렇게 하나되고 제자된 가장 큰 능력의 근원은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함이었고, 예수님의 가르침 곧 복음, 말씀이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붙잡는 것보다 말씀을 붙잡아 주님의 제자로 세워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