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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49:1~7 종의 노래구약 강해/대선지서 2021. 2. 3. 08:26
사49:1~7 종의 노래
이사야서 후반부에 종의 노래가 4군데 나옵니다. 42:1~4, 49:1~6, 50:4~9, 52:13~53:12...그런데 여러분, 노래
는 누가, 언제 부르나요? 가수만 부릅니까? 좋은 일 있을때만 부르나요? 슬픈일이 있을때는, 힘든일이 있을때는...
사람이란 존재는 노래로 시작했다가 노래로 끝나는 것 같습니다. 태어날때...울음의 노래, 인생 마지막때, 마지막 호흡을
몰아서 노래...한숨도 노래고, 탄식도 노래고, 웃음도 노래입니다. 여호와의 종의 노래를 살펴보면서, 누가 종인가?
주인인 여호와는 어떤 분인가? 살펴보면서 유명한 구절 1234 사43: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태어난 목적, 지명받은자의 사명을 깨닫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1. 누가 여호와의 종인가?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다윗, 히스기야 그리고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선지자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등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 주의 일꾼들이 바로 여호와의 종입니다. 이들을 부르실때 특별하게 부르셨잖아요.
또, 여호와의 종은 이스라엘 유다 민족 전체를 말하기도 합니다. 44:1~2 나의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44:2 나의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48:20 여호와께서 그의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세번째, 여호와의종은, 특이하면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사람입니다.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45:1절,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이방인인 고레스가
여호와의 종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종, 구약에 특히 이사야서에 나타난 여호와의 종은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종은 광범위합니다. 누가 여호와의 종인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받은 민족 나라, 택함받은 사람
선택받은 사람이 바로 여호와의 종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자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은...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예수그리스도의 종=구약적 관점에서는 여호와의 종, 노예라는 뜻입니다. 크게는 메시야 예수그리스도가 여호와의
종이며, 작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쓰임받는 도구들, 바로 우리모두가 여호와의 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신분이 작아 보입니까? 비천해보입니까? 여호와의종 하면 고난받는 종, 핍박받는 이미지여서 싫습니까?
나를 부르시고, 나를 바라보시는 그 하나님을 잘 몰라서 그런겁니다. 오늘 나를 부르신 분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
어떤 상황에서도 자부심과 긍지와 기쁨이 넘치는 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아버지 같으신 분, 어머니같으신 분, 용사같으신 분이십니다.
1)49:15~16,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성경은 하나님의 부성을 강조하지만, 또한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모성”의 면도 있다는
것입니다. 안상홍증인회..하나님 어머니교회, 통일교에서는 아버지라는 문선명이 죽고 나니까 이제 하늘부모님 교단
으로 명칭을 바꾸어 어머니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단들이 쓰고 있다고 우리가 사용못할 이유가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어머니가 자기 자녀들을 위로하듯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위로하십니다. 이사야선지자는 이스라엘
을 결코 잊어버리시거나 혹은 내버리지 않으실 여호와께 전적으로 의존된 젖먹이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하면...무섭고 엄한 아버지의 이미지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어린아
기의 이미지,,,그리고 독수리날개로 업어주시듯, 엄마닭이 병아를 품어주시듯 하는 어머니의 이미지 반드시 필요합
니다. 젖먹는 자식을 어찌 잊겠느냐? 손바닥에 새긴 자녀의 이름을 어찌 잊겠느냐? 여기 새기다라는 의미는 요~~
하키크...파다 칼로 파다란 의미로 영원하다는 뜻을 이런 이미지로 표현한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 이스라엘을
결코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한 동일하게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아멘~~~
2)49:24 용사가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
25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바벨론에 포로되어 그들에게 끌려간 이스라엘에게, 바벨론을 정복하여 멸할것이며, 그곳에 포로로 잡힌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 낼 것이다. 이 하나님의 이미지는 특공대, 전사, 용사의 이미지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뽑아내오실때의 당당한 이미지, 애굽을 굴복시키고 초토화시켜 재기 하기 힘들정도로 손을 보시고 자기 백성을
뽑아내시는 용사의 하나님, 바벨론을 정복하시고 종 고레스를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을 평안히 돌아가게 하시는
모습은 강한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이 하나님이 잠잠히 계시는 것 같아 번민이 되고, 실망이 되십니까?
49:23절 후반절 보십시오.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주님을 앙망하는자에게 실망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독수리 날개치듯 새 힘을 주시는 분이시며, 독수리 날개에 얹어 좋은곳으로 이동시켜 주시는 분
우리의 하나님 이십니다. 아멘
3)50:1~3절입니다. 이 말씀이 나오게 된 이유,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고 잊으셨다고 생각하는 백성들에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이스라엘 택한 나의 백성들아 내가 너희를 떠났더냐? 너희가 죄와 허물에 빠져 너의 패역과 배악으로
팔렸고 너희가 나를 떠난것이 아니더냐, 내가 손이 짧아 구속하지 못하겠느냐? 내가 어찌 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이 말씀은 모든 것을 덮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을 떠나서 하나님이 멀리 계신것같지, 여전히 우리를 덮고 계시다, 함께 계시다는 뜻이며, 우리르 버리지 않고
끝까지 계속 사랑하신다는 표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르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버리시지도 않습니다.
이 하나님의 이미지가 바로 42:2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모습입니다.
끝까지 붙들어 주십니다. 여러분 종이를 생각해보세요. 강한 판자나 벽에 붙어 있는 종이를 때려서 꺽을 수 찢을수
있습니까? 그러나 벽에서 떼어지면, 벽과 공간, 틈이 생기면 쉽게 찢어집니다. 주님께 더 밀착하십시오. 주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떨어진다는 것은, 마음이 나누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주님께 집중!
앙망!하면 그때에 나를 품어주시는 하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부르셨을까요?
3. 선택 지명받은 것에 대한 분명한 고백이 필요합니다.
1)49:1절,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미니의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태’에서부터 여호와가 자기를 부르셨다는 말은 물론 문학적인 수사입니다. 그렇다고 없는 걸 그럴 듯하게 말한 건
아닙니다. 이사야가 여호와와의 관계를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운명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도대체 무슨 경험을 했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사6:1절이하에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는 하나님의 탄식을 들은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경험이며, 주님과의 숙명, 운명 같은
거룩한 경험이 ... 나를 부르신 것은, 태에서부터라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예레미야선지자에게는 렘1:4 여호와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는 말씀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이런 전후 선지자들의 고백을 통해서 보면, 모태신앙이다. 아니면 나이 먹어서 부름을 깨달았다는 이런 시간적인 경험
이 문제가 아니다. 늦게 주님을 알았다 해고,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경험이 되어지면 이사야의 고백처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라는 고백이 터져나올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태신앙이 아니잖아요. 세상맛을
다 경험하고 세상속에서 허우적되다가 주안으로 돌아왔잖아요. 그래서 모태신앙이 부럽다고 하잖아요. 아닙니다.
이젠 우리도 태에서 부터 주님이 불러주시고 도우시고 함께 하신 것을 믿습니다. 이런 고백을 소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꼭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고 그래야 소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고백은 기독교인들에겐 필수이다.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다! 바울의 고백, 엡1: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
2)49:3절 너는 나의 종이요, 5절 종, 6절 나의 종...종으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종=에베드, 신약 둘로스, 노예입니다.
노예는 주인에게 절대 복종, 절대 순종, 절대 헌신, 절대 의존, 절대 신뢰해야 합니다. 이것이 되어지지 않으면 주님과의
관계에서 틈이 생기는 것입니다. 옛날 시골에는 문종이를 바른 문이었습니다. 겨울에 손가락만한 구멍이 생기면 세찬
바람이 들어오고 조금씩 구멍이 커지고, 또 바람에 찢어진 종이가 소리를 요란하게 내는 겁니다.
이처럼 주인과의 관계에 틈이 생기고,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소리가 요란하고, 결국엔 무너지게 되는 겁니다.
이 틈이 생기지 않고, 주님과의 관계가 더 신뢰되고, 날마다 노래하는 종이 되려면 기억해야 합니다.
49:3절,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주의 영광을 우리 속에 두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영광의 광채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믿어지고, 이것이 실제가 되어지면, 이 영광을 가릴 수
없으며, 이 영광을 꺼뜨릴수 없습니다. 아!~ 내가 죽으면 죽을수록, 고난을 감당하면 감당할 수록, 주님을 더 신뢰하면
할수록 ... 이영광의 광채가 빛나고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또하나, 49:5절, 후반절,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었습니다.
시18:1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사49장의 종의 노래 2절,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한마디로 힘이요 능력이요 권세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예, 종에게 무기도 없이 그저 가라고 사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49:7절 후반절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이은혜를 아는 종은 어떤 상황에서도
할렐루야~ㅡ 어떤 환경 어려움,고난속에서도 할렐루야~~~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구약 강해 > 대선지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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