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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41~52 예수의 어린시절, 성전중심의 삶신약 강해/4복음서 2021. 2. 17. 08:02
눅2:41~52 예수의 어린시절, 성전중심의 삶
예수님의 어린이, 그리고 청소년 때에 어떻게 사셨을까?
성경에서의 소개는 오늘 본문에서의 12살때의 모습만 기록되어있습니다. 외경에서는 말도 안되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다는 내용이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내용과 유대인의 삶의 모습을 보면 어렴풋이 유추할 수가 있습니다. 눅2:22절,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7절,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41절, 그의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올라갔다가...이모습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유대인의 율법의식을 충실하게 준수합니다. 유대인들은 쉐마교육이라고해서 3~5살때부터 모세오경을 암송시키고 말씀강론과 토론을 성경을 통해서 가르칩니다. 하루 세번씩 성구를 넣은 작은 상자인 테필린을 펴놓고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유대인의 가정은 철저한 홈스쿨인것이지요.
13살이 되면 성인식을 치르게 되는데 이때까지 모세오경을 통채로 암송해야하고 그 내용을 숙지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이 교육에서 예외가 아니었을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12살때의 일화를 보여주면서 예수님 어린시절 어떤 마음을 가지고 보내었는지 보여줍니다. 예수님가정의 모습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 어떠해야할것인지 깨닫는 귀한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부모와 자녀의 간격이 없고, 같은 마인드를 품는 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입니다.
예수님의 어린시절 12살때의 일화입니다. 유월절은 우리나라의 설날 추석처럼 대 명절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성전으로 모입니다. 그리고 유월절 풍습, 무교병과 쓴나물을 먹고 어린양을 드리는 제사를 드립니다. 이 예식을 마치고 또 머나먼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의 가정을 생각해보십시오.
요셉 마리아, 그리고 예수,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 가족이 움직입니다. 돌아갈때의 모습, 43절인데요. 그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했다...어떻게 아들을 잃어버릴수 있을까?
요셉은 마리아하고 가고 있겠지, 마리아는 아빠 요셉하고 오겠지...그러면서 내려가다가 어느순간에 보니 없는거...
아들을 잃어버린 이 충격...처절함입니다. 경찰청 통계에 8살 미만 실종아동이 1년에2000건, 하루에 5~6명이 실종된다는 겁니다. 부모의 마음, 자책과 후회와 미안함과 가슴아픔...잠을 잘수가 있나요? 무슨 일을 할 수가 있나요? 지나다니는 그 또래의 아이들만 봐도 생각이 날겁니다. 타인에 의해 실종된 유괴가 있고, 스스로 자의에 의해서 도망간 가출도 있는데...가출 같은 경우, 자녀들이 어디에 갔을까?를 알고 있으면 그곳에 가면 만날수 있지요. 그런데 대부분, 부모와 자녀간에 이런 소통이 없습니다. 부모는 강압적으로 끌고가려고 하고, 자녀는 부모의 간섭이 싫고 그러다 보니 부모와 자녀간에 장벽이 쌓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정은 어땠을까요?
아들 예수를 잃어버렸습니다. 찾는 과정을 보면 부모와 소년 예수와의 장벽이 느껴집니다. 하룻길을 간 후 잃어버린것을 알고 46절에 보면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납니다. 이틀을 찾아 헤멘것인데요. 아들 예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를 안다면,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 성전에 있겠지!!
제일 먼저 성전을 찾았더라면 더 빨리 찾지 않았을까요?
요셉은 꿈에 약혼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아들을 잉태한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를 통해서 아들을 낳을 것을 듣고 잉태하여 낳았습니다. 엘리사벳, 사가랴, 안나, 목동들을 통하여 아기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메시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아들 예수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꿈이 있는지, 어디에 있을것인지...금방 유추할 수 있는데, 요셉과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 일반부모들처럼 허둥대는 모습같습니다.
아들 예수를 만나서 한 말을 보세요.
48절,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염려 근심 불안의 모습입니다. 이에 대한 아들 예수의 말은 49절,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부모와 아들 예수간에 코드가 맞지 않잖아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부모와 자녀간에 대화가 필요하고, 서로의 비전을 공유하고, 지금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아야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알게 되는겁니다
우리도 아들 딸이 서울가서 살고 있다 보니, 어떻게 사는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잘 몰라요. 하나님께서 각 가정을 세우시고 자녀들을 주신 이유는 부모 자녀가 가장 가까이에서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교제의 장인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고, 또 다른 가정과 연결이 되어지고 그래서 온 세상이 하나가 되어지는 것, 하나님나라의 첫 출발선은 가정임을 깨닫고 신앙의 귀한 가정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 기도회 16일째 강사는 박위형제였었는데요. 2층정도의 높이에서 낙상사고로 목이 완전히 부러져 전신마비가 되었답니다. 손가락하나 움직일 수 없었던 그를 케어하는데, 간병인을 쓰지 않고 남동생이 휴학을 하고 그리고 식구들 가족이 붙어서 휠체어에 타고 다닐정도까지 된 겁니다. 온 가족이 한마음 한뜻이 되니까 위라클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처럼 가정에서부터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그런 가정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전중심의 삶을 살 때, 그 인생을 주님이 복되게 하십니다.
성전중심의 삶을 산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 하면 구약에 사무엘과 다윗, 신약은 오늘 본문의 예수님입니다.
사무엘상2:18, 사무엘은 어렸을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3:1, 아이 사무엘이 엘리앞에서 여호와를 섬길때에...3절,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사무엘아 사무엘아~~처음에는 엘리제사장이 부르는 소리인줄 알았지만, 이내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을 깨닫고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엘리가정에 일어날 장차 일을 듣게 되더라...사무엘이 이처럼 성전에서 자라면서 하나님을 섬기니,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주시던가요? 2:26절,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다윗은 어떻습니까? 삼하 6장에 보면 오벧에돔의 집에 있었던 여호와의 궤,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6:12절,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더라...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표현이 어느정도인지 알수있잖아요.
시119편에 보면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주님을 찾고 구하는 모습 그리고 성전을 지어드리려는 마음, 이것이 바로 성전중심의 삶입니다. 이런 다윗에게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주시던가요? 왕이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시더라. 승리의 기쁨을 주시고 다윗의 위, 곧 자손에게 왕을 이어주고, 후손에게 메시야 그리스도를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눅2:49, 내가 내 아버지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 성전을 내 아버지집이라고 선언하는 모습속에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알고 내 집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성전을 내 아버지집이라고 하시면서 성전중심의 신앙을 분명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런 예수님에게 52절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성전중심의 삶을 산 구약의 사무엘과 신약의 예수님에게 동일한 복을 약속하십니다. 이 복이 바로 우리의 거울입니다. 오늘날도 성전중심의 삶을 사는 자에게 약속하신 동일한 복, 하나님과 사람앞에 사랑받는 자 되게 하십니다.
3. 오늘날 우리에게 성전은 어디인가?
눈에 보이는 성전은 모세시대 광야에서 성막이 시작입니다. 성막이 솔로몬성전으로 그리고 오늘날 교회당으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성전인데, 그럼 눈에 보이는 건물같은 성전이 있기 전에는 하나님이 계시지않았는가? 그래서 최초의 성전은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눈에 보이는 건물의 성전, 예루살렘성전이 무너졌습니다. 그럼 성전이 없어졌습니까? 에스겔서에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가운데에서부터 올라가 성읍 동쪽 산에 머무르고...그러면서 예루살렘을 떠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럼 어디로 가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끌려간 바벨론으로 주님도 가신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며,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곳에 함께 하십니다.
신약의 성전은 더 분명합니다. 빌레몬2절에 보면 우리와 함께 병사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딤후4:19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브로의 집에 문안하라 이 말은 집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빌립보교회도 루디아의 집이 교회였습니다.
교회론이라고도 하는 에베소서에는 온통 그리스도안에서 라는 말이 수없이 등장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입니다.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품안에 하나님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동일하게 하나님품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품, 성전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예수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성전이며, 이들이 있는 처소가 교회이며, 이들의 삶의 자리 일터가 하나님이 계신곳입니다. 성전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사는 자, 곧 코람데오의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굽어살피시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고 계시는데, 어떻게 내가 주인되어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수 있단 말입니까? 전국 그리고 세계에서 다니엘기도회를 하고 있는데요. 코로나 19시대 마음대로 모일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서 각 가정에서 드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다니엘 기도회의 핵심은 가정이 교회다!라고 합니다. 오히려 코로나가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을 꼽으라하면 모이는 교회, 건물의 교회가 중심이 아니라, 삶의 자리가 교회이며, 가정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예배하십시오. 맞습니다. 가정에서, 삶의 자리에서 여러분이 있는 곳이 성전이며 교회이며 하나님이 계시니...항상 예배자로 살아가십시오. 그럴때, 사무엘에게 다윗에게 주셨던 놀라운 복이 가정에 흘러갈 것입니다.
여호와삼마...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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