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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8:22~39 광야를 찾아가시는 주님신약 강해/4복음서 2021. 3. 21. 22:26
눅8:22~39 광야를 찾아가시는 주님(하나님나라의 비밀이 드러나다!)
가끔보면 힘든지역을 스스로 찾아가서 헌신봉사하시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대구지역에 코로나 확진자가 수백명이 나타나 의료진이 부족할 때, 의사 간호사들이 자원하여 봉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정치인들도 당선되기 힘든 지역에 뛰어들어가는 모습을 보는데 이럴때 보통 험지에 들어갔다는 표현을 하곤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 주님께서 아무도 찾지 않는 광야같은 험지를 향하여 나아가시는 모습을 봅니다. 26절에 보니까 갈릴리 바다를 건너 거라사지역으로 가십니다. 이 거라사 지역이 바로 광야같은 곳이며, 요즘으로 말하는 험지입니다. 이곳에 누가 있기에 이렇게 풍랑이는 바다를 건너 손수 찾아가셨을까? 고통받고 소외받는 비참한 사람에게 복음, 하나님의 기쁜소식,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풍랑과 가시밭길을 헤치고 고통당한 한 영혼을 찾으시는, 잃은 양 한마리를 찾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이 찾아주시지 않으셨다면, 영원히 악한 귀신에 사로잡혀 죽을 인생이었다는 것을 바라보고, 주의 은혜를 깨닫는 복된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영혼 살리는 일에 장애물이 항상 있다!
22절,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시면서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하시고 얼마나 곤하신지 잠이 드셨습니다. 이때,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하게 되었을때, 놀란 제자들의 모습을 보니까 죽게 될 정도로 힘든상황입니다. 성경에 다음 내용, 26절 이하에 나오면 왜 이곳에 가는지에 대한 목적이 드러나지만, 이것을 모르는 제자들 입장에서 보면 왜 이렇게 힘든 여정길을 가시나? 이해되지 않을겁니다. 주님이 가시는 길에는 항상 이런 장애물이 있어왔습니다. 그래서 주님 가신 길, 고난 가시밭길이요 십자가의 길입니다. 왜 이런 고난, 광풍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주님이 가신 목적이 영혼구원, 하나님나라소식, 복음을 전해주러 가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악한 영, 대적 마귀는 집요할 정도로 복음을 훼방하기 위해서 몸부림친다는 것입니다. 거라사인의 귀신 들린 자를 황폐화 시키고, 영혼을 살리러 가는 복음 전도대를 막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가장 영세소상공인들이 큰 피해를 입은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큰 피해는 교회입니다. 여론이 교회가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처럼 집요할정도로 공격하여 교회, 목사, 크리스찬이 혐오대상처럼 여기게 만들어가고 있잖아요. 우리 주님을 방해하고 공격했던 것처럼 오늘날도 영혼구원, 복음을 외치는 곳에는 모든 수단방법을 동원해서 이렇게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공격에 대한 주님의 모습과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죽음의 공포속에서 주무시는 주님을 깨웁니다. 24절,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이에 일어나셔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고, 그 다음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하시면서 책망하십니다. 어려움을 만났을때 주님을 깨우는 제자들의 모습이 믿음이 있는것 처럼 보이는데 주님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셨어요.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하기를 원하셨을까요?
주의 길, 선교의 길, 사명의 길...가는데 어려움을 만났다! 이 길은 주님과 함께 가는 길, 이 길은 성령님과 동행하는 길이라는 확신이 오면...잠잠히 가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보지 않고, 주님을 보고 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저편으로 건너가자!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 길 가는 길 막힘이 없다! 주님이 약속하셨으니 열릴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주님 여기 계시니 그 누가 막을 수가 있으랴! 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첫번째 원하시는 것은 이런 믿음이었을 것입니다.
두번째 방법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일인데요. 24절,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다! 29절, 더러운 귀신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령하신것처럼 예수님께서 주신 권능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쫓고 병든자를 일으키시는 사역을 계속 보아왔잖아요. 그럼 하는 겁니다. 주님은 이것을 기대하셨는데 제자들은 당황하고 그저 예수님을 깨우는 것에 그치더라. 주님이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믿음을 책망하십니다. 바로 전에 4가지 밭의 비유와 하나님나라의 가족에 대하여 설명해주셨었는데, 제자들은 이런 감각과 의식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길가나 바위위나 가시떨기처럼 환난이 오니까 밑천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믿음없이 가는 사명의 길은 이처럼 순식간에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며, 주님 가신 길 마저 평탄치 않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 가는 길,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한번 믿음을 점검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광야에서 고통당하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한 영혼,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시는 우리 주님을 보십시오. 풍랑이는 바다를 건너 오셔서 거라사지역으로 오셨잖아요? 가버나움, 갈릴리 서편에 계셨던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 호수를 건너 오신곳 거라사인데 이곳은 갈릴리 바다 동쪽입니다. 서편에서 동편으로 오셨다! 갈릴리바다를 기점으로 사해바다로 흐르는 천을 요단강이라 부르는데 요단 동편으로 가신 것입니다. 여러분! 머리를 스치는 뭔가가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를 지나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올때,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를 통하여 들어왔잖아요. 요단강을 기준으로 요단서편은 약속의 땅, 요단동편은 세상의 땅 또는 광야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이방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유대백성이 혐오스럽게 여기는 돼지들을 치는 곳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이곳을 방문하셨다는 것은, 복음은,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나라의 가족은 남녀노소, 빈부, 학력, 경력, 지역에 차별이 없으며, 특히 세상깊이 살고 있는 영혼도, 이방인도, 귀신들린 자도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주고 계신것입니다. 출애굽하여 홍해바다를 건너 요단강을 건넜던 이스라엘백성들의 행군처럼, 이제는 약속의 땅,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세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손수 보여주고 계십니다. 거라사지역에 누가 있습니까? 27절, 귀신 들린 자입니다. 이 사람의 모습을 보십시오. 오래 옷을 입지 아니했다! 집에 거하지도 않았다! 무덤사이에 살고 있다! 한마디로 소외받고 고통받고 천대받는 사람입니다. 유대적관점으로 바라보면 사마리아여인처럼, 막달라마리아처럼, 이방인, 세리처럼 버림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런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며 고통에서, 눌린것으로부터 자유를 주셨습니다. 메시야, 그리스도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선포하셨잖아요! 눅4:18절,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이 사명을 손수 감당하시고 계십니다. 더러운 귀신을 명한즉 돼지 떼에 들어가고, 귀신 들렸던 그 사람은 35절,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고,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다...섬기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요, 하나님 나라가 임한 모습이요, 하나님의 가족으로의 돌아옴입니다. 우리가 귀신들렸던 자 처럼 살아온 자 였잖아요? 아흔아홉마리를 들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오신 예수님, 영혼의 목자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자리에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이 사랑을 조금이라도 기억한다면, 세상에 눌려있는 영혼, 갈바를 모르고 방황하는 영혼, 사단에 매여 죽어가는 영혼...그들을 주님의 심정으로 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아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믿는 데까지 나아가자! 아뇨, 선포하여 뜻을 이루는데까지 나아갑시다!
24절,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광풍을 향하여 명령하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선포하매 잔잔하여졌다! 이런 모습을 바라본 제자들의 반응...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그가 누구이기에? 주님이시잖아요!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이시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명령앞에 악한 영 귀신들도 두려워하며 떠나가는 것이고, 창조주이시니 피조물인 바람과 파도도 잔잔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가 누구이기에...놀라지만 말고, 믿고 선포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있느냐?
아담아 너 지금 어디있느냐? 떨어진 믿음 다시 회복하십시오. 이런것은 안된다 지레 포기하지 말고, 선포하십시오.
피조물에도, 자연에도, 짐승에도 선포하십시다. 주님이 하십니다.!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렀을때, 28절, 귀신이 먼저 소리칩니다. 예수님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귀신이 외치는 이 소리...맞는 말 아닙니까? 제자들은 그가 누구이기에? 이러고 있는데, 귀신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고 주님께서 잘했다 칭찬하시던가요? 시끄럽다~~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축사하셨습니다.
여러분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귀신은 알긴 알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알고, 성경을 아는 자들 많습니다. 그러나 믿는데 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요17: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는 것은 믿는 것과 하나된 단어입니다. 이 믿는 것은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영접하는 것입니다. 안다. 믿는다. 영접한다 다 같은 의미이며, 하나입니다. 귀신이 아는 것처럼 지식적 앎은 믿음에 아무 감동을 주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에게의 앎은 능력이요 권세요 힘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아는 자리에서 믿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귀신, 악한 자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것처럼 무서운 존재가 아니요, 29절 처럼 더러운 존재입니다. 무서운것과 더러운 것은 차이가 큽니다. 무서운 이미지는 상대하기가 두렵지요. 그러나 더럽다는 이미지는 도망갈 정도는 아니잖아요. 주님이 보여주신것처럼 예수이름으로 선포하면 누가 책임져요? 예수님이 책임지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계십니다. 영혼을 찾는 사랑의 마음, 선교, 전도의 마음을 품어라는 것이며, 아는 자리에게 믿는 자리에까지 그리고 선포하는 자리까지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더군다나 이제는 예수님 발치에서 엎드려 있는 자리에서 39절,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에 반응하므로 온 성내에 전파했다고 한 것 처럼 입을 잠잠하지 말고 열라고 하십니다. 참 힘든 세상 가운데, 모두가 힘들다는 것은 모두가 위로의 주, 치유의 주, 회복의 주, 능력의 주,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신약 강해 > 4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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