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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8:1~8 유비무환신약 강해/4복음서 2021. 9. 12. 16:52
눅18:1~8 유비무환(신앙점검)
성경을 구원의 안내서라고도 하고, 구원받은 자의 삶의 지침서라고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믿음을 배우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지침서를 잘못해석한다든지, 왜곡한다든지, 모른체한다든지 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제대로 잘 가고 있는지…내가 잘 믿고 있는지 한번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목적지를 향하여 바로가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과정이 없으면 너무 멀리 간 다음에, 돌이키려면 너무 힘이 듭니다. 장기나 바둑에 복기라는 말이 있는데요. 바둑의 경기가 끝난다음 처음부터 다시 그대로 두어보는겁니다. 여기가 패착이었다. 여기가 승부수였다. 그러면서 다음엔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뒤돌아보고 결단하는거죠. 인생을 돌아보면 때로는 어이없는 행동으로 창피한 일도 부끄러운 일도, 어떤 것은 일생일대에 잘했다는 것도 있습니다. 또,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나라는 말이 있잖아요. 미리 점검해보는 겁니다. 유비무환처럼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대비하는것이지요. 오늘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등을 통하여 신앙을 점검해보고, 우리가 가는 인생의 방향이 잘 설정되어 있는지 …바둑에서 복기하듯이 인생을 점검해보는 귀한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간청하는 과부를 통하여 간청, 기도에도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방편, 은혜를 깨닫는 통로가 말씀, 성례, 그리고 기도인데 오늘 기도에 대한 부분입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 일반적으로 불의한 재판장이 있는데… 한 과부가 원한을 풀어달라고 계속 두드렸더니 이 불의한 재판장이 그 원한을 풀어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를 기도에 대한 비유, 끈질기게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받는다는 기도로 이해하면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될 수 있다는것입니다. 1절 항상 기도하고, 3절, 자주그에게 가서, 5절 번거롭게 하니, 7절 밤낮 부르짖는…그래서 쉬지말고 계속 끈질기게 기도하면 응답받는다는데 초점을 두면 어떤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조카가 선반위에 있는 위험한 칼을 내려달라고 달라고 달라고요~ 하면서 계속 두드릴때, 번거롭지요? 그렇다고 조카의 요구를 들어줍니까? 더군다나 불의한 재판장이 과부의 요구를 들어주겠어요?
이 본문에서 우리는 과부의 원한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과부, 세리, 여자, 아이들, 사마리아사람들은 당시대 사회적 통념상 약자입니다. 원한을 가졌다는 것은 약자이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디가서 하소연할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불의한 재판장임에도 불구하고 하소연할데가 거기밖에 없는겁니다. 이 여인의 원한, 억울한 일은 어떤 전제를 가지고 있는가 하면 내가 아무잘못도 안했는데 당하는 일이지요. 얼마전에 시험에서 부정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했다고 해서 자살한 학생이 있었는데,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한 이유가 그런 손가락질을 당할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모함을 당해서, 억울해서 그런거잖아요. 이처럼 부르짖는데는 나의 잘못이 아닌 억울한 일이라는 정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제목이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내 욕심을 위하여 물질적인것을 밤낮 부르짖으면 응답이 올까요? 아무리 끈질기게 쉬지않고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 기도제목은 정당한가, 합당한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2. 정당성이 부여된 기도는 속히 풀어주신다는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불의한 재판장도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구절이 눅11:10~13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좋은 것)을 주시기 않겠느냐? 눅18:7절,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우리주님께서 속히 응답이 있을것을 말씀하시는데 의미심장한 구절이 있습니다. 8절 후반절인데요.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오래참으시겠느냐? 속히 응답, 원한을 풀어주시겠다는 말씀이시지만…믿음을 보겠느냐? 는 말은 응답이 올 때까지 낙망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겠느냐? 이 의미는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응답받고 해결받으면 좋겠지만, 그러나, 살아생전 응답받지 못할수도 있는데 그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기도하는자가 있겠느냐? 더군다나 불의한 과부의 이야기는 17:20절에 시작해서 18:8절에 끝나는 이야기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나라가 언제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에 대한 이야기의 결론부분이지요. 17:22절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인자가 등장하잖아요. 18:8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인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말하는데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재림이잖아요. 이때가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날이잖아요. 이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며 기도하는자가 얼마나 있겠느냐? 우리 살아 생전에 이 날이 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나니…기도하면서 낙심, 낙망, 좌절, 포기하지 말아라! 18:1절 말씀이 그런겁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그럼 정당성이 확실히 부여된 기도제목이 무엇일까?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나라, 하나님나라의 모형인 교회, 하나님나라의 백성인 공동체인 믿는 자 한 사람 한사람…의 기도가 먼저인 다음, 정당성을 확보한 후 그 다음 기도가 시작되면 주님께서 주님의 때에 이루어주십니다.
3. 바리새인과 세리 두 사람을 통해서 타인을 볼 때 색안경을 쓰듯 선입견과 비교의식을 가지면 안된다.
9절을 보면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하시면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교해주십니다. 의롭다고 하시는 이는 주님이신데, 이 사람은 자칭 자기가 의롭다고 합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교만입니다. 예수님시대 이런 사람을 대표적으로 바리새인이라. 율법학자들과 서기관들입니다. 율법에 능통한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과신하고 자신과 같지 아니한 사람들 대표적으로 세리를 멸시하고 천대하고 비교했습니다. 당시대 사회통념상 세리는 죄인이라고 통칭을 했지요. 더군다나 허가받은 강도라고 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기도하던가요?
예수님의 비유 13절, 세리는 멀리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다른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받은 과부와 같이 멸시를 받은 자이지만 그래서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고 하나님만 붙잡는 모습…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나라를 이어받을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더군다나 18절 이하에 나오는 큰 부자…겉으로는 성공한것같지만, 율법을 거룩하게 다 지켰다고 자신하지만 정작 율법의 가장 큰 정신인 이웃사랑앞에 예수님을 등지고 가는 안타까운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리새인 기도하는 겉모습과 사람들이 바라보는 관점으로는 성공한 사람같습니다. 큰 부자 역시 사회통념상 하나님을 잘 믿으므로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성공했다고 믿음이 좋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육적인 성공을 신앙의 성공으로 바라보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폄하하고 비난하고 멸시했습니다. 이들의 판단근거는 겉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시대는 어떻습니까? 겉모습, 사회적인 명성과 지위, 자녀성공…이런 것들이 잘되면 신앙도 믿음도 좋은줄 착각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는 일이 잘 되지 않고, 부족하면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 내 믿음이 없어서 기도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세리가 하나님앞에 의롭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누가복음 15장의 실패해서 돌아온 둘째아들 탕자를 아버지가 품어주시지 않던가요? 19장의 세리장 삭개오가 19:8절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적이나 갚겠나이다. 주겠다 갚겠다 이 단어가 주어왔고 갚아왔다는 것입니다. 원문의 미래시제가 아니라 습관적 현재시제라는 것입니다. 당시대 손가락질 받은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음의 행동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제 마치려고 합니다. 열심히 앞만보고 잘 달려온 신앙생활을 잠시 멈추고 진단해봐야 합니다. 나는 혹시 겉모습으로 타인의 신앙을 정죄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의 기도제목이 나의 의를 나타내는 형식적인 모습은 없는가? 아니면 정당성없이 내 욕심을 놓고 기도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게 기도해도 응답이 되지 않아 멈췄는가 아니면 믿음을 보리라 하는 주님의 말씀앞에 낙심하지 않고 계속 바라고 기도하는가? 이런 믿음의 기도와 복음의 행동앞에 주님은 반드시 은혜를 주실것입니다. 주님이 하신다는 것이 주께 대한 믿음의 기도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는 자를 주님은 주님의 방법으로 치유해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응답을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다 받아 누리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신약 강해 > 4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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