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의 핵심은 예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우리 주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태어나신 예수님에 대한 핵심은 신성과 인성을 가지셨으며, 동정녀에게서 잉태됨과 성령의 보호로 인하여 죄의 오염, 부패, 침임을 완벽하게 막으셔서 예수님은 흠이 없으시다. 이렇게 완전한 인성과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 죄와 흠이 없으신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고백하기를 본디오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고난, 왜 고난을 당하셨는가? 누구를 위한 고난이었는가? 의 말씀을 통하여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귀한 시간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의 일생은 고난의 인생이었다! 예수님의 일생을 한번 묵상해보십시오. 성령으로 잉태하셨다! 하늘보좌에서의 영원히 누리셔야할 특권을 내려놓으시고 피조물과 같은 모습으로 잉태된 것, 고난의 시작입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때, 아무도 반기지 않고 맞아주는 이가 없습니다. 결국 마굿간의 구유가 첫 잠자리였습니다. 공생애,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청년가장으로 생계를 꾸려야하는 것 역시 고난이요,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려고 세상에 드러내실 때 먼저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란 죄씻음의 상징인데,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처럼 세례를 받는다! 고난이요, 사역 첫 출발…광야로 이끌려 광야에서 사탄으로부터 당하는 시험, 역시 고난입니다. 그리고 복음, 하나님나라를 전하면서 멸시천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공회의 재판과 빌라도앞에서의 재판으로 사형언도를 받고 십자가에서 처절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사되심까지 고난의 정점을 찍으셨습니다. 고난의 일생입니다. 다니엘기도회가 시작되어 비대면 인터넷으로 은혜를 받고 있는데요, 강사들 보십시오. 참 고난없이 그 자리까지 오른사람 아무도 없더라고요. 둘째날 강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죽어야 천국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고 보고싶은 주님을 만날수 있잖아요? 그러므로 죽음은 오히려 축복입니다. 여러분, 참 감당할 수 없는 고난속에 있으십니까? 주님앞으로 가는 코스입니다. 주님도 이 과정을 거치신 후에 부활과 승천의 바톤을 받으셨습니다. 구약의 요셉? 노예와 모함과 감옥에 갇힌 죄인의 자리까지의 고난 후에 총리가 되었지요.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욥도 그래요? 온통 고난의 압축인생이잖아요? 그러나 마지막 장에 갑절의 복을 받습니다. 고난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건강과 복과 영원의 바톤을 이어주시더라. 그러므로, 지금 너무나 힘이 드세요? 내일이 보이지 않습니까? 바톤이 눈앞에 와 있음을 보시고, 조금 더 조금 더 한밤중에 주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의 수많은 고난 가운데 세 부류의 고난을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1) 가룟유다의 배신과 수제자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떠나간 아픔,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의 외면,고난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간 가장 큰 힘을 쏟은것은 제자훈련이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12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사역을 친히 보여주시면서 믿음에 믿음을 키웠지요. 그런데 정말 결정적일때 이들이 돌아섭니다. 예수님을 종교지도자들에게 팔아넘긴 사람이 가룟유다입니다. 붙잡혀 제사장 집으로 끌려갈때 세번이나 부인한 사람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입니다. 정말 십자가에서 마지막 신음하실 때, 제자들은 뿔뿔이 다 흩어지고 없습니다. 가장 힘이 되어주고 함께 해줄 줄 알았던 사람들로부터의 배신, 씁쓸하면서도 가슴을 아프게 하는 고난입니다. 세상이 그렇지 않습니까? 가장 가까이 있는 친지, 친구, 동료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사기를 당합니다. 믿고 맡겼는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은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는 시대, 돌다리도 두드려봐야한다고 사람과의 관계, 믿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사람의 관계 믿을 대상이 아니다. 믿을 대상은 오직 주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기, 아픔, 고난을 피할 수 있는 비결은 다른 것 아닙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이도 여호와시다 하는 믿음이 이런 고난을 이길 수 있으며, 나를 연단하신 후에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욥의 신앙으로 무장되어질 때 이길 수 있습니다.
2) 종교지도자들 산헤드린 공의회로부터의 외면,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로부터의 손가락질, 고난입니다. 예수님을 아프게 한 사람들 성경 율법을 가장 잘 안다고 하는 종교지도자들로부터의 공격, 핍박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려한 본질적인 이유, 속마음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시기와 질투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아야하는데 이 관심이 다 예수님에게로 옮겨가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을 모함하고 죽이려한 것입니다. 같은 마음, 같은 뜻을 품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나아가야할 이들이 자신의 기득권, 이권을 위해서 예수님을 공격하더라. 이런 모습이 오늘날 교회에서도 나타납니다. 교회가 서로 한마음이 되어 같이 나아가야하는데, 자기들보다 더 잘되는 여러 모습을 비교하면서 끌어내리는 것이지요. 은사 능력이 있으면 비판을 받고, 부흥하면 공격하는 이런 예들이 많습니다. 이단들과 세상과 같이 싸워야할 판에 같은 편끼리 공격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이런 어려움 고난을 만나거든…예수님처럼 같이 싸우기보다 그저 감수하는 것, 하나님이 세워주실때까지 기다리는 것…이것이 믿는자의 도리입니다.
3) 본디오 빌라도, 곧 세상으로부터의 핍박, 고난입니다. 세상은 마귀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왜 본디오빌라도를 내세웠을까? 본디오 빌라도는 주후 26년~37년까지 약11년 동안 로마황제의 영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총독이었습니다. 빌라도의 실명을 정확하게 명시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은 신화나 거짓이 아니라 인류의 분명한 역사 속에,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발생하였던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당시 로마의 황제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유대인들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통치하고 있던 시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본디오 빌라도는 사형판결을 내리기 전에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는 죄를 발견하지 못하겠노라 때려서 놓겠다 그러나 군중들의 함성에 진리가 묻혀버리게 된 것이지요. 아무리 세상의 소리가 요란해도 타협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진리는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수님, 하나님 나라는 타협의 대상으로 포기하고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것이잖아요. 그러므로, 복음…생명처럼 붙들어야할것이지 이것이 타협의 대상이 되는 순간 우리 역시 본디오빌라도처럼 천추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고백하는 주 예수그리스도 그 분은 본디오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 고백은 우리 주님이 이땅에서 당한 수많은 고난, 수난, 핍박, 아픔, 죽음까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은 믿고 안믿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 아는 것이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 채찍에 맞으시고 징계를 당하시고 찔림을 당하시고 결국에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 처절한 고난 고통을 아는 것, 믿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누가 예수님을 이 고난으로 밀어넣으셨는가? 가룟유다, 종교지도자들, 본디오빌라도 로마군인들…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스스로 당하신 것, 취하신 것입니다. 피할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스스로 당하신 고난, 스스로 순종하신 십자가입니다. 오늘 본문 사53장을 보십시오. 4절 질고를 지고, 찔림을 받은것은, 그가 상함은 다 우리 위함이었다. 이 메시야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스스로 당하셨으며,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죄를 완벽히 해결하시고 우리의 질고를 우리의 통증을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멸시와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다. 우리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아는 자, 믿는 자…나를 위해서 당하신 고난, 나를 위해서 나의 질병을 짊어지시고 해결해주신 주님 이런 고난과 질병을 만날 때, 이미 해결해주신 주님을 바라보며 맡길때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본디오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를 고백하는 우리는 이제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주님도 당하신 고난 우리도 동일하게 당하는 것이 믿는 자의 도리입니다. 이때 낙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때는 반드시 지나감이러라. 또하나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 아픔, 질병, 문제 우리 주님이 다 짊어지셨다. 그러므로 이거 내것 아니다. 우리 주님이 찔림을 당하셨고, 상함을 받으셨고 째찍질을 당하셨다. 댓가지불 이미 끝났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자유다. 자유선포하는 믿음, 고난을 뚦고 나오는 믿음의 선포, 그럴때 어느순간 눈이 봄햇살에 다 녹듯이, 아침안개 햇빛에 사라지듯이 그렇게 될것입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믿음으로 고백하는 자에게 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가이 뛰리라! 벧전2:24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노라! 이 말씀이 실제가 되시기를 주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