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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1:1~2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신약 강해/바울서신 2020. 12. 20. 14:49

    빌1:1~2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구약이사야서를 끝내고, 오늘부터 10월까지 빌립보서를 강해하려고 합니다. 빌립보서의 핵심및주제는 4:4절의 말
    씀처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기쁨입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와 집중호우로 웃음
    을 잃어버린 오늘날 주님은 빌립보서를 통하여 기쁨을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빌립보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마게
    도니아, 그리스반도의 도시입니다. 유럽여행은 안갔다왔어도 지도를 생각해보세요. 성경에 소아시아일곱교회를 아
    시지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이탈리아 로마의 가운데 지역이 마게도니아
    아시아와 유럽 가운데 지역이 그리스반도 마게도니아인데 마게도니아 첫 성이 바로 빌립보인것입니다.
    빌1:1절에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립보서의 기록자는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이고, 수신자는 빌립보교회입니다. 성도, 감독, 집사가 있는 곳이 교회잖아요. 바울에게 빌립보교회는
    가슴설레고, 가슴떨리고, 행복하고, 눈물나는 그런 교회입니다. 
    사도행전16장에 1차 전도여행을 끝내고 2차 전도여행을 떠나는데, 참 가슴아픈 분열을 겪었지요. 1차전도여행때
    팀이었던 바나바와 다툰후 실라와 팀을 꾸려서 1차전도여행지를 방문하면서 교회에 힘을 불어넣어줍니다. 
    더베-루스드라-갈라디아-무시아앞에 이르러 아시아북쪽으로 가려고 애쓰는데...성령께서 길을 막습니다. 
    행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7절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는지라. ..길이 계속 막히면 무슨 생각이 들어요? 바나바와 다퉈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나보다. 포기할까?
    그러나 주의 일은 과거에 메이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를 딛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그럴때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게 된것이지요. 주의 인도는 두드림과 기도와 기다림이 복합적으
    로 믹서될때...길이 보이게 된것입니다. 그래서 건너가서 안식일이 되어 기도할곳을 찾아헤메이다가...기도하는 무리
    를 만나고 복음을 전하게 된것입니다. 여기에 그 유명한 자색옷감장사를 하는 루디아를 만났는데...이 여인의 고향이
    어디인가? 바울이 그렇게 가려고 가려고 힘썼던 아시아 두아디라 도시의 여인인거죠. 
    하나님은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그리고 유럽의 첫 믿는자가 되어 빌립보 교회를 이루게 된것입니다. 빌립
    보에서 첫번째 사건이 루디아를 만난사건이라면, 두번째 사건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불쌍히 여겨 행16:18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선포했더니 귀신이 떠나가고 정신이 온전케 된것
    ..문제는 이 점치는 여인을 통해 돈벌이해왔던 주인이 미풍양속을 헤친다고 고발하여 감옥에 갇히게 된 신세가 되었
    습니다. 세번째사건은 빌립보 감옥에 착고에 채워 갇혀있을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할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
    나고, 이에 간수가 자결하려고 할때 우리가 도망가지 않았다..간수의 유명한 질문 행16:30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렇게 루디아, 귀신
    들린 여종, 간수의 가족이 모여서 빌립보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베로아
    아덴 고린도로 옮겨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세워진 미약한 빌립보 교회가...50~52년
    10년후인 60-62년도 감옥에서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는데, 감독이 있고, 집사가 있고 성도가 있는 규모를
     다 갖춘 교회를 성장해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복음서를 빼고는 대부분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등...교회에 문제가 생겨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권면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쓰게 된 이유
    가 있겠지요. 
    첫 번째 이유는 빌립보 교회가 로마의 옥에 갇힌 바울을 위로하려고 ‘에바브로 디도’를 선교헌금과 함께 보냅니다. 
    그런데 에바브로 디도가 로마의 옥중에 있던 바울과 같이 있는 동안 심한 병을 얻게 되어 죽을 지경까지 이르게 되고 
    빌립보로 돌아가는 일이 지연되므로 에바브로 디도를 통해 바울의 소식을 듣고자 했던 빌립보 교회가 귀환이 늦어진 
    에바브로 디도를 비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두 번째 이유는 바울의 모든 선교 사역에서 그 어떤 교회보다도 빌립보 교회가 앞장서서 바울을 도와주었기 때문(빌1:5,
    4:15, 고후8:1)에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세 번째 이유는 빌립보 교회에 “유오디아와 순두게”(빌4:2)라는 중요한 여인들이 있었는데, 이들로 인한 교회의 분
    열을 막고(빌4:2), 거짓교사들(빌3:2)로 인한 교회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 빌립보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울이 옥중에 갇힌 것은 복음의 진보를 위한 것(빌1:25)이므로 걱정하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
    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1절에서 바울에게서 배우는 첫번째 메세지...우리는 누구의 종인가? 신앙은 주도권싸움이라고 했는데 누구의 종인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의 진정한 고백입니다. 우리 역시 날마다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그리
    스도의 종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종으로서 당연히, 마땅히, 해야할 일..복음전하는 종
    바울에게 배우는 두번째 메세지...우리는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과 디모데
    디모데가 누구입니까? 아들과 같은 어린 제자입니다. 신앙도 어리고, 나이도 어리고...그런데, 자신과 똑같이 공동발
    신인으로 높이고 있잖아요. 자신과 같은 동급동역자로 인정하고 있잖아요. 어떤 사람보고 믿음이 있고, 믿음이 강하
    다고 할까요?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이 많이 보여지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예수그리스도...사랑, 겸손이잖아요.
    세번째 메세지...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나오는 책망 권고, 권면, 칭찬, 모든 말은 주님이 말씀인줄 알고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말하는 것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이치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받아야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첫번째 메세지...축복의 선포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1. 은혜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읿반적으로 ‘은혜, 호의, 친절’이란 뜻/  이 단어가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적용이 될 때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어진 선물’이란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부어 주시는 
    도우심’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대로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리로 넘어 가려는 교만함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
    그래서 은혜는 하나님의 긍휼로 그냥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 누가복음 19장에 등장하는 삭개오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가 왜 구원받았습니까? 예수님을 보려고 돌 무화과나무
    (개역-뽕나무)에 올라갔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삭개오가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을 보려고 할 때에, 삭개오
    만 올라갔을까요? 성경은 다른 이들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을 보려고 한 것이 삭개
    오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19:3을 보면 예수님을 보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예수님이 만나 주셨고, 그에게 전적인 구원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삭개오 집에 가신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
    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9)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네가 나를 보려고 창피함을 무릅쓰고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간 수고를 가상히 여겨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나무에 올라간 것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전적인 은혜로 삭개오를 만나 주셨고, 구원이 삭개오에게 베풀어 진 것입니다.
    역으로 만일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려고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래도 그는 예수님의 
    은혜가 주어졌을 겁니다.
    ▶ 민수기 11장에 가면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70명의 장로로 세우십니다. 그 때 부르심을 받
    고도 나가지 않고 여전히 장막에 머물러 있던 ‘엘닷과 메닷’이라는 인물에게도 하나님이 70명의 장로로 세우신 증거인 
    예언의 영이 임하여 엘닷과 메닷도 예언을 하게 됩니다. ‘24. 모세가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알리고 백성의 
    장로 칠십 인을 모아 장막에 둘러 세우매, 2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영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26. 그 기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영에 머물고 장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영이 
    임하였으므로 진영에서 예언한지라.’(민11:25-26)
    ▶ 바울은 본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겨 성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고 교회를 잔멸하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런 바울이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갈 때에 예수님의 전적인 은혜가 부어져 구원을 받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바울과 함께 다메섹으로 가던 사람이 바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에서 예수님 
    만난 것은 오직 바울뿐이었습니다. 그 구원의 은혜가 바울의 모든 삶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옥중에서 죄인의 신분으로 
    빌립보서를 쓰는 처지 속에서도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은혜는 이렇게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십니다.
    ● 우리는
    우리가 바울처럼 예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기 때문일 겁니다.
    먹고 사는데 너무 바빠서, 먹고 사는 일이 우리에게 너무 중요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고 삽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 우리에게 없는 것, 우리에게 모자라는 것에 마음을 쏟다보니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예수를 믿고 
    살아도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값없이 부어지는 은혜의 주소가 어디예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그리스도로부터...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
    수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주시기 때문에 은혜입니다. 사람은 댓가를 바라지만, 하나님은 댓가를 바라지 않으십니
    2.  평강
     평강의 주소 역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그리스도입니다. 평강은 우리가 너무도 잘아는 단어인데요 히)샬롬
    헬)에이레네입니다. 평강, 평안, 평화, 화평이 다 샬롬입니다.
    이 평강은 은혜의 산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
    음14:27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평안이 무엇입니까? 평강, 평안이라고 해서 단순히 마음의 안정, 마음의 고요, 마음의 편안함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샬롬’에는 전제하는 것이 있는데, ‘전쟁’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가나안 땅은 오늘날 팔레스타인으로 불리는데,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대륙을 연결하는 곳에 위치합니다. 유럽과 아시
    아와 아프리카 세 대륙을 연결하는 허브 같은 곳이 가나안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강대국들의 침략 속에 전쟁이 끝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배경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는 것이 ‘샬롬’입니다. ‘샬롬’은 소극적 의미로는 전쟁이 끝난 
    상태를 말하고, 적극적 의미로는 상대방과 화해하고 하나가 된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화평의 대사입니다. 우리가 있는 공동체가 이래야지...피하는 존재, 부담스런존재, 문제를 일
    으키는 존재라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없는 사람입니다. 
     ▶ ‘느부갓네살이 다스린 지 이 년이 되는 해에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단2:1)
     반면에 사도행전 12장에 가면 너무나 깊은 잠을 자는 베드로를 보게 됩니다. 헤롯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참수합니다(행12:1-2). 그것을 기뻐하는 유대인들을 보고 이번에는 
    베드로를 잡아 죽이려하지만 무교절 기간이라 옥에 가두고 절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립니다. 
    절기가 끝나고 헤롯이 베드로를 죽이려하는 전날 밤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행12:6) 
     아침이면 베드로는 야고보처럼 칼에 죽임을 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데, 잠을 잡니다. 얼마나 평안하게 잠을 
    자는지 천사가 와서 옆구리를 쳐서 깨울 정도로 깊은 잠을 잡니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행12:7) 죽음을 앞두고 
    베드로가 이렇게 평강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 ‘평강’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평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옥중에 있으면서도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편지하며,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으로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으로 
    기뻐하라고 합니다. 빌립보서에서 이 은혜와 평강이 실제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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