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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1:22~30 복음에 어울리는 삶, 복음에 합당한 삶, 이렇게 살라!신약 강해/바울서신 2020. 12. 21. 11:55
빌1:22~30 복음에 어울리는 삶, 복음에 합당한 삶, 이렇게 살라!
코로나19를 퍼트리는 주 온상지가 교회라는 좋지 못한 인식을 사회에 심어주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대통령과 종교
대표들과의 면담에서 교회를 사업장취급 하지 말라, 우리는 예배를 위해서 생명도 걸 수 있다는 강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여러가지 말들이 분분하지만, 지금은 교회의 입장을 내세울 위치가 아닙니다. 어찌되었던 한기
총대표가 대통령 탄핵, 하야집회를 주도하고, 방역에 협조하지 않고, 교회에서 무더기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
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에게 강하게 주문할 것이 아니라, 잘못하고 있는 교회지도자들에게 강하게 이야기하
는 것이 맞습니다. 오히려 종교지도자들이 교회가 잘못해왔음을, 목사 장로들이 주도한 반정부집회와 교회에세
무더기 확진자가 나와 사회에 불안을 주고 사업장을 문닫게 한 원인제공자로서 무릎을 꿇고 사죄함이 마땅한데도
이런 반성은 커녕 큰소리쳤다고 박수받고 있으니 참 기가막힐뿐입니다. 대면예배가 그렇게 소중하면, 먼저 사회에
용서를 구하고, 방역을 철저히 하는 사회적 책임을 먼저 이행한다음에 하나님과의 대면예배에 집중해야 하지 않겠
습니까? 오늘 말씀의 요지가 이렇습니다. 복음안에 있는가? 크리스찬인가? 그렇다면 어떤 선택의 기로에 직면할
때, 어디를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답을 주고 있습니다. 복음안에 있는 자...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우리에게 제시
하신 것 처럼, 바울 역시 복음에 합당한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지 제시해주십니다. 사회에 머리를 들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것인지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복음의 빛을 밝히는 우리가 되어 캄캄한 이
세상을 밝히는 도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복음의 사람은 복음만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만 나타내야 합니다.
20절, 후반절...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현재 바울은 차디찬 캄캄한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습니다
이 상황은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암울한 현실입니다. 복음에 장애를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복음전도의 실패인지
도 모릅니다. 그런데 보세요.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 소망이며, 꿈입니다.
존귀하게 된다는 것은 크게 만들고 높인다는 말입니다. 죽든지 살든지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만 높아지시고, 크게
되시며, 그리스도의 영광만이 화려하게 빛나기를 소망하고 기대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높아지는데 있어
나는 죽든지 살든지 별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지도자들이 왜 질타를 받고 있습니까? 자기를 드러
내는것이 목적이요, 자기가 박수받기 위해서 남을 짓밟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23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눅5장에 중풍병자를 고치는 사건이 나옵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언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
로 돌아가니,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셔서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날때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잖아요. 아버지만 나타내잖아요. 나는 상관없어요. 복음의 사람은 주님을 그 안에 모시고 사는
사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세상사람눈에서 교인이라고 하지요. 그럼 누구만 내세우고 누구만
존귀하게 나타내야 합니까? 사도바울처럼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만 존귀하게드러내는 것이 소망이라고 한것처럼
그리스도만 나타내야 되요. 그런데 요즘 세상사람들 눈에는 그리스도는 안보이고 교회의 탐욕만 보이니까 교회에
돌을 던지고, 사회악처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무엇을 해도 욕을 먹는시대입니다. 이럴때 일수록 내 안에
계신 주님, 그 주님과 더 교제하면서 주님만 존귀하면 나는 상관없어요 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렇게 살면 조금씩 빛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2.복음의 사람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교회의 유익을 우선으로 선택합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무심코 가는 길 같아도 보이지 않는 선택을 하니까 그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
도 선택의 고민에 빠졌습니다. 빌1:22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사느냐 죽느냐의 둘 사이에 끼었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지 모르겠다
고 말합니다. 바울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까...23절,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일이
라...자신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훨씬 더 좋은 일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품에 가는 것입니다. 그곳에 가고 싶어요...
죽음을 맞이하는 바울의 자세...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바라보는 죽음이 이렇습니다. 이세상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렇게 하고 싶다....바울자신의 유익을 생각하면 이래요
또하나의 생각이 있습니다. 내 입장을내려놓고, 너희를 위하면, 교회의 유익을 생각하면...교회입장입니다.
교회공동체를 생각해보면, 이렇게 힘들고 어렵지만, 내가 사는것이 유익인갑다 그럽니다. 24절,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내가 이렇게라도 있어서 너희들과 교제함으로 나로 말미암아 믿음의 진보가 나타
나고 믿음의 열매가 더 풍성하게 된다면야 나의 유익을 내려놓고 너희들과 같이 있어야겠구나...
개인적인 관점은 주님품에 안식하는 것이지만, 내가 너희에게 조금이라도 유익이 된다면 너희들때문에 교회공동체가
유익한 것을 선택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이 참그리스도인입니다. 요즘 세상에 비치는 교회는 어떤
모습입니까? 극단 이기주의모습아닙니까 자기살겠다고 사업장을 다 문닫게 하고, 반정부 행위를 마음대로 저지르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하셨는데, 세상을 섬기라고 하셨는데...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있으니 참 통탄할 일입니다. 바울은 어떤 선택을 할때에, 자기유익인가? 교회공동체 유익인가?
내가 드러나는일인가? 주님이 드러나는일인가? 가 기준인것처럼, 우리 역시 선택의 기로에서 이 질문을 반드시 하시기
바랍니다. 내 중심이냐? 그리스도중심이냐? 그러면 어떤 선택을 하든지간에 후회가 없으며, 이 선택에 주님은 복을
주실것입니다. 3. 구체적인 삶의 지침을 주시는데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합니다.
27절,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생활하라=폴리튜오마이/시민으로 생활하거나 행동하다
정치에 참여하다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시민권과 같은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민권자로서의 삶을 살고, 시민
권자로서 바른정치를 하라는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시민권자란...세상의 민증이 아닙니다. 천국시민으로서의
권리, 의무를 말하는 것이고, 바른정치란 복음의 정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정치는 먼저 교회공동체에서 시작되
어 이웃과 사회에 영향력을 주어야 합니다. 요즘 교회정치가 복음에 합당한 정치를 하고 있습니까? 교회정치가 사회
에 지탄을 받고, 이런 사고를 가지고 사회에 막무가내식 막가파식으로 군중을 선동하는 이런 모습은 복음은 없고
욕심만 가득찬 모습입니다. 바울이 외치고 있는 합당하게 생활하고, 복음의 신앙을 위하고가 변질되고 삭제되어있는
모습입니다.
그럼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27절 후반절,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팀웍을 말합니다. 왜 이런말을 할까요? 2:3 다툼과 허영, 2:14 원망과 시비...공동체 안에 이런 마음으로 갈등하고
다투고 부딪치는 일이 빌립보교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공동체의 삶에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 협력하는
것이 합당한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합당한, 생활...이런 단어는 군사적인단어입니다. 적군과의 싸움에서 이런 틈이
생기면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한마음, 한뜻...그것은 서로가 복음이 중심이며, 내 선택이 우선이 아니라 공동체
가 유익한 일의 우선순위가 분명하고, 복음의 신앙이 목적이면 한마음 한뜻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욕이 스며들어오니까 아간같고, 가룟유다같은 자가 나와 평안의 공동체가 아골골짜기가 되는 것입니다.
2)두려워하면 안됩니다. 두려움은 주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28절,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
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대적하는 자들이란 복음의 반대편에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에 대하여 절대
두려워하지 말라! 오히려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이 능력이지만, 대적자들을 이기는 비결의 첫번째는
말씀, 능력보다 먼저인것이 있습니다. 한마음 한뜻의 신앙공동체입니다. 서로의 믿음이 조금 작아보일지라도
촛불이 모여서 큰 횃불이 되는 것입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가 해변의 모래처럼 수많은
미디안 군대를 대할 때 보십시오. 군인은 300명, 무기는 횃불과 항아리와 나팔...이들에게 담대함과 용기를 준것은
서로입니다. 이 서로 합심이 거대할 불길과 엄청난 소리를 일으킨 것이지요. 신앙의 싸움은 나 혼자싸움이 아니다.
나와 함께 하는 공동체가 있다. 그 안에서 주님이 강력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두려워하면 다른사람도
두려워합니다. 신앙은 뒷걸음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이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복음의 합당한 생활 세번째는 빌1:29 고난도 받게 하려 함이라. 필수과목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라보는 바울...복음전하다 저렇게 감옥에 가는 고난을 받으면 실패한것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럽니다. 은혜와 함께 같이 따라오는 것이 고난이라. 복음안에서 따라오는 어려움, 고난, 고통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신앙이 잘못되었다는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자로서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30절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빌립보교회에도 바울처럼 고난 어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때 참 고민이 많잖아요. 갈등이 생기잖아요. 이런 어려움에 흔들리지 말라.
1:6절,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주님 나라갈때
까지 우리는 흔들릴수없으며 그누구도 우리를 막아설 자가 없으리라 는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 ,예기치 않는 일들, 황당한 일들, 고난들...이런것들을 만날때, 세상의 기준으로
평가하지 마시고, 복음으로 해석하십시오. 복음에서 떠나지만 않았다면, 복음이 목적이었다면,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일을 하다가 그런일을 만났다면 그것이 바로 은혜요, 그것이 바로 복음의 증인들이 받는 고난이요. 그것이 바로
복음에 합당할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런것이 바로 예수의 흔적입니다. 흔적을 많이 가지고 주님앞에 서는 우리모두가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신약 강해 > 바울서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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