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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2:12~18 구원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의 삶, 구원받은 자 말씀의 횃불을 들어라!신약 강해/바울서신 2020. 12. 22. 13:51
빌2:12~18 구원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의 삶, 구원받은 자 말씀의 횃불을 들어라!
알미니안적 구원과 칼빈주의적 믿음의 조화 쉽게 말하면 구원받은 자는 감리교적 신앙과 장로교적 믿음의 조화
여러분~운전중에 라디오 채널을 변경할 때가 있는데요. 운전을 하면서 채널변경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주파수가
맞을때까지 한참을 가야하는데 이때 얼마나 시끄러운지...즈즈즈지지직, 이런것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있는
데 알지 못하고 열심히 섬기고, 헌신하고, 봉사한다고 하면...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처럼 시끄러운 소리가 끊이지
않는것입니다. 자신은 열심히 하면서 자부심이 있는데 타인이 생각하면 불편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린다고 하는데
미련한 다섯처녀의 모습처럼.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 있어서 오늘 말씀이 얼마
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소테리아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구원에는 세가지의 시제가 있는데요.
과거원료형으로 예수님을 믿을 때 이미 구원받았다!,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는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현재 진행형-이미 받은 구원을 지켜나가야 하는
긴장의 삶이죠. 오늘 말씀에 있는 빌2:12절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미래 완료형-이미 구원을 받았지
만 아직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다.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성경은 이 세가지 시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기쁨이 있고, 구원받은자의
삶 현재의 삶이 있고, 미래에 그 나라에 갈 약속을 가진 기대감이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또 개인적인 구원이 있는가
하면 공동체적인 구원도 있습니다. 나 혼자만 구원받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 우리 교회 모두가 구원
받아야 하고, 더 넓게 말하면 내가 속한 가정, 사회가 구원받아야하는 공동체적인 삶이지요. 그래서 나의 행위 삶이
중요한것입니다. 또한 감리교, 장로교 신앙관의 대립이 심했었는데요. 구원을 이루는데 내가 뭘 해야할것이 있다는
의지 즉 감리교적인 신앙, 장로교는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는 능력도 주셨다는
전적 주권의 믿음...이 둘이 상충대고 대립되는 것 같지만 조화와 균형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느하나를 강조하면 신앙의 불균형을 초래하여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오늘날 교회가 시끄럽고, 교회가 사회
에 필요악이라는 말을 듣는 이유가 바로 신앙이 한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
여 분명한 신앙관이 세워져서 믿는자, 구원받은자의 삶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
구원에 있어 반드시 세워져야할 진리의 기둥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화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는 이신칭의를
믿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과거완료입니다. 그래서 빌립보교인
들은 성도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원받지 않은것처럼 12절 후반절,너희 구원을 이루어가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의 첫번째 의미:우리는 호흡이 끝나는 날까지 성화의 과정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표현하면 이렇습
니다. 수년동안 거지로 떠돌아 다니는 청년이 어느날 지나가던 왕에게 발견되었습니다. 옛날 전쟁터에서 죽은 아들과
닮아 보여서 양아들로 삼고 왕궁으로 데려왔습니다. 이제 신분은 양자, 양아들, 왕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거지였던
이 아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옛날 거지처럼 이집 저집 구걸하며 먹고 살아야 합니까? 아뇨!!
왕자의 신분에 맞춰 살고, 왕궁의 법도를 따라야죠. 왕자다운 생각과 성품 의식을 품어야죠. 이런 실천을 성화의 작업
이라...구원을 완성하는 날까지 이루어가야 합니다.
너희구원을 이루라는 두번째 의미는 개인구원보다 교회공동체 사회공동체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12절 보십시
오. 나 있을때뿐 아니라 나 없을때에도 항상 복종하라 지도자가 있을때만 순종하는 척 하고, 지도자가 없을때는 나 몰
라라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사람은 속일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느니라. 복종하는 어떤 마음일까?
2:8절, 예수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이 마음을 품으라고 했잖아요? 이 복종의 마음으로 순종의 마음으
로 교회공동체의 안녕을 위해서 교회공동체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서 구원을 이루라,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진리가 마음에 없으니까 성도들을 위험한 곳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한명이라도 낙오자가 없게 하기 위하여,
공동체의 안녕을 위하여, 코로나의 확산과 방지를 위하여 비대면으로 예배하고 성도를 공동체를 지키는데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곧 구원을 이루는 것,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인데 구체적으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
1. 개인적으로—소원을 두고 행해야 합니다.
13절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내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우리는 이것을 비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엄청난 비전, 미래, 꿈을 주셨는데 주여 믿습니다 미씁니다만 외치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그 꿈은 허상, 물거품, 16절 헛되지 아니하고 헛된다..공허 텅비게 됩니다. 꿈을 소원을 뜻을 알고 품었는가? 그러면
하나님이 행하시니, 하나님이 인도하시니...우리의 말과 행동을 이끄시나니...행하라, 행동하라고 하십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주님만나고 싶어요, 눈을 뜨고 싶어요 이것이 비전이요 소원입니다. 어떤 행동을 했어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부를짖는 행동/ 혈루증을 앓던 여인-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믿음의 행동...
모세가 홍해바다를 향하여 지팡이를 드는 행동, 반석을 치는 행동...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맛보았습
니다. 너희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행하게 하시나니...행하여라—이말씀은 주권적 하나님의 역사인
칼빈주의적 장로교의 믿음과 행하는 알미니안적 감리교의 신앙이 같이 어우러져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없는 행함은
인본주의요,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믿음입니다. 내 소원이 아닌, 하나님의 소원을 삶에서 이루어 내시기를 축원...
2.공동체에서—수고하고 일할때,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하십니다.
14절 말씀인데요.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원망이란 ‘공귀모스’ 불평, 속삭임, 밀담, 수근거림입니다.
불만스러워 수근거리는 것...시비는 생각, 의견, 추론, 논의, 회의, 의심, 걱정인데 이 밑바탕이 악한생각이라는 것입
니다. 원망과 시비가 잘 나타난 곳이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서 보입니다. 출15장, 홍해바다를 기적적
으로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사흘길을 걷는데 물이 없어요. 그러다 나타난 곳이 마라, 급히 가서 물을 먹는데
먹을 수 없는 쓴물...백성들의 반응...출15:24, 모세에게 원망하여...원망/ 불평과 수근거림이잖아요...삼일길을 걸으
면서 수근거린겁니다. 그러니까 당장 쏟아져 나오잖아요. 물론 하나님께서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셨지만, 8키로
정도 조금만 더 걸어가면 물샘열둘과 종려나무 일흔그루가 있는 엘림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조금만 더 걷든지...
마라의 물이 나타날때 감사하며 기도하며 먹든지...이 기다림이 없이 조급함과 불평이 공동체를 힘들게 합니다.
고전10:10, 저희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빌립보교회에 사도바울은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공동체를 해하는 누룩과 같은 독소가 무엇인줄 아느냐? 하나님이 주
신 소원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무엇인줄 아느냐? 보이지 않는 원망과 시비이며 이 근원은 악한 생각이니라....!
3. 전제로 드리는 삶을 살자고 하십니다.
17절 말씀에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
하리니...나를 전제로 드리겠다! 관제 붓다, 바치다는 뜻인데 마지막 남은 피한방울 땀한방울 마지막 호흡을 여기에
더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의미는 빌립보 교인들의 제물위에 자신의 생명의 피를 그위에 뿌리고 싶다는 순교의 각오
입니다. 빌립보교회공동체의 제물과 섬김이 무엇일까요? 자신의 생명을 더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요?
16절 보세요. 생명의 말씀을 밝혀입니다. 바울이 생명의 말씀을 밝혔습니다. 이 생명의 말씀을 이어받은 빌립보교회
공동체가 말씀의 횃불을 높이 드는 것입니다. 밝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주님앞에서 자랑할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자랑,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 하나님의 비전...바로 생명의 말씀의 햇불을 높이 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며, 이것을 우리가 행할 때,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것을 높이 자랑하고 드는 것 아닙니다. 생명의 말씀을 높이 들때, 공동체가 튼튼해지는 것이고, 사회정의
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칼빈주의적 신앙 곧 정치가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광화문정치보다 먼저인것은 교회공동체의
바른 정치..그것은 생명의 말씀이 불타오르는 공동체가 되면 당연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이미 구원받은자이며, 앞으로 주님앞에 설 하나님의 자녀들이 반드시 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원 비전,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할 때, 12절, 두렵고 떨림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경외입니다. 이것이 없으니까 막사는 것입니다. 반대로 품지 말아야 할 것, 독소, 누룩...그것은 원망과
시비이며, 15절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상의 생각입니다. 사단의 생각입니다. 이것이 나를 이끌지 못하게 하는 최
선의 방법은 공격입니다. 주님이 행하신다는 주께대한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이며, 생명의 말씀의 횃불을 높이 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한생각과 원망과 시비와 불평을 불태우는 지름길인줄 알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내는
우리모두가 될 수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신약 강해 > 바울서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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